당신의 작품을 보는 눈 '머리에서 가슴' 까지
[사진/도판]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 아트뮤지엄
선생님들 오랜만입니다. 십여 년 전 〈전북회화〉에 졸문을 쓴 기억이 나는군요. 무지하면 용감하다고 덥석 청탁을 받아들인 뒤 조심스러웠죠. 나이 들며 현명해진다는 건 성현의 말씀이고, 저 같은 범인은 멍청이 짓을 반복하는 법이라 다시 이 글을 쓰기로 합니다.
미술, 그것도 그림에의 대중적 관심은 특별했다고 생각합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회화는 미술의 근간이고 인간에게 가장 친근한 분야니까요. 조선 사대부의 문인화가 아니어도 우리 눈을 사로잡은 그림은 아주 많았어요. 문득 꼬마 때 보았던 민화가 떠오릅니다. 갈대밭의 기러기 물고기와 게, 소나무와 까치 호랑이, 기암괴석에 꽃과 나비가 있는 그림. 병풍에 읽기 어려운 한시漢詩가 나올수록 뼈대 있는 집안인 양 자랑삼던 시절. 우리 집에도 색깔이 화려한 문자화文字圖 한 점이 있었어요.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을 쓴 혁필화입니다. 할머니 따라갔던 익산장터에서 직접 제작 과정을 보았으니 1960년대까지 무명화가가 존재했단 증거입니다. 시집오는 새색시의 혼수 보따리에 서양화 액자가 들어있었죠. 조잡한 인쇄물이었지만 풍경화나 밀레의 〈만종〉 〈이삭줍기〉가 사랑받았어요. 이처럼 우리 생활과 가까웠던 회화는 너무 멀어졌습니다. 보는 이의 편에선 의미와 가치를 부여할수록 접근하기 어렵습니다. 미술관 수장고나 개인의 손에 들어간 걸작, 대도시에 집중된 공공미술관, 접근을 제한하는 문턱 높은 사립미술관, 누가 결정하는지 잘 모르는 작품가격 등등 걸림돌이 많습니다. 그 결과 보통사람이 작품을 직접보고 가슴 뛰는 걸 경험하기 어렵다는 겁니다. 신선한 자극으로 눈과 머리가 바빠지고 자극받을 기회가 줄었지요. 그것이 사회 제도의 허점이든 문화의 차이든 경제문제든 고민거리가 분명합니다. 중고등학교의 미술 시간 축소는 하나의 예죠. 어느 순간 순수예술은 우리 삶과 관계없는 분야로 소외된 거예요. 비밀작전에 쥐도 새도 모르게 희생된 중요인물처럼.
[사진/도판] 시애틀 아트뮤지엄
이와는 반대로 미술계 인구는 늘었다죠. 그러니까 작가 지망생이 아주 많아진 상황에서 당연히 작품도 쏟아져나옵니다. 유년기에 벌써 전문교육을 받기 시작한 그들은 맹활약하지요. 그룹전 졸업전시 공모전에서 상을 받으며 어느새 이름을 달기 시작합니다. 작가와 작품의 산사태라고나 할까요? 그래서 대중은 혼란에 빠지고 말았어요. 작가는 누구인가? 무엇이 작품인가? 게다가 경제난을 겪으며 먹고사니즘을 핑계로 전시장 가는 걸 포기했죠. 학생들은 성적 올리기에, 젊은이는 취업준비에, 어른은 밥벌이에 몰두하는 동안 미술계도 그들만의 리그로 굳어지고 있다는 걸 짐작하게 됩니다. 체험학습으로 미술관에 온 아이들 태도는 상징적입니다. 그림 감상은 저리 가라, 주마간산에 썰물처럼 달아나는 꼴을 자주 보거든요. (유명전시에 유모차 끌고 오는 젊은 부부가 많은 서울과 딴판이라 속이 아프죠)
가끔 전시오프닝을 다녀오면 생각에 빠집니다. 관행으로 굳어진 틀에 박힌 축하 잔치에 혼이 빠질 지경입니다. 작가의 가족과 친구들, 스승과 선후배 동료들로 북적이고 화기애애하죠. 어찌나 흥겨운지 모릅니다. 그러나 지루하고 시끄러운 오프닝은 질문이 남더군요. 한 시간여 진행되는 식순 중 늘어지는 덕담은 민망합니다. 1. 무엇을 그렸는가? 2. 왜 그려야 했는가? 3. 전시는 무엇 때문에 하는지? 관람자는 궁금한 게 많습니다. 특히 이 작가는 어디까지 밀어붙일지 알고 싶어요. 그래서 작업의 소회를 듣거나 작업 노트를 읽고 싶지요. 당신에게 그림은 무엇입니까? '저자의 죽음'을 선언한 롤랑 바르트는 책이 출판되는 순간 저자는 사라진다고 말합니다. 이 말을 그림에 적용하면 '화가의 죽음' 도 가능합니다. 물리적 죽음이 아니라 작품이 갤러리에 걸리는 그 순간, 주체가 바뀐다는 역설이죠. 작품은 이제 작가를 떠나 관람자에게 속한다는 겁니다. 관람자는 오프닝의 덕담보다 자신이 생각하고 느낀 것을 우선합니다. 첫눈에 반하거나 볼수록 좋아지면 행운입니다. 거기에 차분한 작가의 의도를 눈치라도 챈다면 더욱 좋아지겠지요. 아무리 작가를 제치고 작품만으로 말해도 말입니다. 작가와 아무런 연고가 없는 관람자의 시선이 궁금하지 않나요? 지나가는 시선이 꼭 필요한 어떤 것일 수 있습니다. 듣기 좋은 말만 하는 친지 말고 작품만 보는 낯선 자의 시선 말입니다. 날려놓고 하는 싸움판에서는 구경꾼이 가장 확실한 심판이지요.
이런 판에서 서로가 갖춰야 할 게 있는 것 같아요. '당신의 작품을 보는 눈' - 두 개의 시선-이죠. 먼저 화가의 눈입니다. 화가는 자기 작품에 절대적인 애정을 갖죠. 위험에서 지키고자 최선을 다합니다. 그 결과 스스로 엄격할지언정 타인의 비판에는 극도로 예민하지요. 잘못하면 십 년 우정이 날아갑니다. 스승과 제자의 관계도 틀어지죠. 말은 칼이 되어 상처를 남기니 대부분 입조심이 심합니다. 함부로 속내를 드러내지 않아요. (아이고! 그럼 소는 누가 키우나요?) 그러니 당신의 작품을 평가하는 눈은 당신이 키워야 합니다. 묻고 답하고 토론을 겁내지 말아야죠. 만약 누군가 비평을 한다면 비난으로 받지 말아야 합니다. (외양간보다 벌판에서 자란 소가 더 튼튼합니다.) 프란시스 베이컨은 제 작품을 가장 많이 파기한 화가라네요. 미술사를 읽다 보면 놀라운 걸 발견하지요. 어느 시대나 작가들의 난상토론(수 싸움)이 치열하더군요. 미학 이론, 작업 태도, 소재와 주제, 형태와 색채, 재현과 표현, 재료의 문제, 실내와 야외, 고향과 탈 고향, 계승과 혁신, 과거와 미래 사이에서 다투더군요. 이합집산은 정치권보다 더 심하고 고집들이 대단해요. 이것이 작품을 살아남게 한 동력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화가는 창조하는 사람이니까요. (창조 : 1. 전에 없던 것을 처음으로 만듦. 2. 신이 우주 만물을 처음으로 만듦. 3. 새로운 성과나 가치 따위를 이룩함.) 당신은 작품을 창조합니까?
더불어 관람자의 눈입니다. 머리에서 가슴까지, 그 사이를 꽉 채워줄 좋은 작품을 알아보는 눈이지요. 어쩌면 이런 말은 공허한 수식어일 수 있습니다. 창작의 어려움이나 고통에 대해 네가 뭘 아냐 반격도 가능하지요. 이상과 낮은 현실 사이에서 나를 갈아 넣는 시간에 대해 쥐뿔도 모른다면서. 그러나 그림의 그자도 모르던 초짜가 작품 앞에서 뭔가 느꼈다면 그것은 거짓일까요? 순간의 헛된 감상입니까? 오래 전시장을 드나든 그러니까 그림 보는 일에 시간과 애정을 바친 이의 생각은 화가에게 무익할까요? 왜 이렇게 변화가 없을까? 데뷔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네. 이 작가의 정체성은 뭐지? 누구 작품의 아류인가 진짜로 비슷하네. 동인전이라는데 관통하는 핵심은 다른 거 같군. 이 그룹은 한결같은 게 장점인가? 아이고! 점점 후퇴하는 거 아냐? 어디 다른 문제가 있나?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이 많아도 화가에게 대놓고 묻기란 쉬운 일이 아니죠. 일단 예의에 어긋날까 조심합니다. 이러구러 낯이 익으면 더러 묻기도 하지만 속 시원한 답은 없습니다. 원래 예술론은 백인백색이니 어쩔 수 없다고 단념하는 게 맞을까요?
요즘 관람자들은 공부를 많이 합니다. 매월 전문지를 받아 읽고, 전시장을 뻔질나게 드나들며 도록도 사지요. 국내전시는 물론 해외전시를 보려 적금을 깨고, 서슴없이 낯선 도시에서 미술관 순례자가 됩니다. 순례자의 가슴은 존경과 애정으로 가득 차 있죠. 그들은 훌륭한 작가와 좋은 작품에 경배할 자세가 된 사람입니다.
[사진/도판] 시애틀 아트뮤지엄
흔히 '그림처럼 아름답다.'이 말은 최고의 찬사입니다. 산에 올라 눈 아래 펼쳐진 놀라운 풍경에, 야구장의 빨랫줄 같이 뻗어 나가는 홈런볼에, 상상하지 못한 어떤 신비로운 관계에, 상식적인 입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벅찬 것에 보내는 수식어죠. 이 관용구의 주어는 그림' 입니다. 그림은 '아름답고 감동을 주고 진실한 거' 란 의미를 담고 있지요. 아름다움은 흥분과 감동을 몰고 옵니다. 문제는 아름다움에 대한 개념과 철학이죠. 눈이 번쩍 뜨이는 작품에는 공통점이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너무 새로워 뒤로 넘어가죠. 발상과 표현이 놀라워요. 기존의 관념을 한 방에 무너뜨리고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게 만듭니다. 아니면 재미나서 하하 웃음이 빵 터집니다. 교실에서 배운 질서와 상식을 뛰어넘은 본질을 보여줍니다. 저도 낮에 본 그림 때문에 밤에 엉엉 울었던 일이 있어요. 차오르던 감정이 몇 시간 뒤 폭발한 건데 그땐 잘 몰랐답니다. 그것이 스탕달 증후군인걸. 관람자의 눈과 감각은 최고치로 작동합니다. 전시장에 처음 온 사람, 명품은 사도 그림은 절대 안 샀던, 그림을 외면했던 사람을 변화시키는 끌림과 울림! 그 힘은 작가와 작품에 있다고 믿어요. 첫발을 들여놓은 전시장에서 고가의 작품을 망설이지 않고 선택하는 이를 목격합니다. 그것도 두 점이나. (그 사람 작품에 미친 거 맞죠!?) 평소에 지독한 심사숙고형인데 말입니다. 소비에 대한 그의 근검절약을 익히 아는 저는 뻥 했어요.
재작년 전 시애틀에서 〈쿠사마 야요이 특별전〉을 봤습니다. 거의 마지막 주에 기회를 잡았는데 사람이 많아 첫날은 후퇴했죠. 다음 날 아침 7시부터 줄을 섰어요. 새벽부터 설쳤는데 저보다 극성맞은 1등이 한 명 있더군요. 그 전시 때문에 하룻밤 묵었단 나이든 그 여성은 다른 주에서 전날 도착했대요. 친척 집에서 자고 서둘러 나오느라 밥도 굶은 채. 우리 가족 역시 커피와 도넛으로 아침을 때우며 줄을 지켰답니다. 한 번 나가면 순서가 바뀌니 주변에 얼굴도장을 찍고, 화장실은 눈치껏 다녀오는 잔꾀도 부리면서요. 그동안 미술관 주변의 사방 도로는 관람객들로 넘쳐 인간 울타리가 생깁니다. 들고 온 간이 의자에 앉은 노인들, 무릎 위 노트북에 코 박은 젊은이들, 어찌나 열기가 대단하던지 시애틀 시민이 전부 나온 줄 알았어요. 그래서 어땠냐고요? 만족! 아니 대만족입니다. 입장료와 도록 값이 아깝지 않았어요. 장장 세 시간의 줄서기를 견딘 보람이 있었죠. (정확히 10시에 문을 열고 5분 후 입장) 기획력이 돋보인 전시입니다. 영상 속 붉은 가발을 쓰고 웅얼웅얼하는 할머니작가는 명성에 걸맞게 기발했고 의외성이 놀라워 재미있었죠. 노작가는 작품으로 관객을 압도합니다. 초기작부터 젊은 시절의 도발과 저항의 몸짓들, 개인의 기질이 낳은 강박과 편집증, 환상과 꿈으로 가득한 작가의 세계, 이제 노년의 원숙미와 자유로움은 아름다움의 극에 달한 것 같았어요. 설치작품은 관람자의 감각을 최대치로 끌어 올렸죠. 관람자를 작품 속 등장인물로 만들고 새로운 세계로 유도했어요. 그 순간은 관람자도 작가입니다. 더불어 한 장면을 만들어냈거든요.
덧붙여 작년 인천 파라다이스 시티 아트홀 전시도 말하고 싶군요. 제프 쿤스, 데미안 허스트 등 세계적으로 소문난 작가의 작품들이 많았어요. 거대함, 의외의 것, 고정관념을 깨는 뜻밖의 작품이 흥미진진했죠. 저는 특별전에 나온 김호득 작가의 먹물 가득한 설치작품에 감동했습니다. 호수에 햇빛이 그림자를 남기듯 먹물은 넓은 공간에서 빛이 났어요. 시커멓고 깜깜한 공간이라 처음엔 보이는 게 없죠. 차차 어둠을 익히면 흐릿한 조명 속 동선에 따라서 달라지는 물그림자가 들어옵니다. 물이 가득한 논에 그믐밤 마지막 달빛이 비치는 것 같았어요. 대단히 인상적이었죠. 작가의 평면작업에 익숙했다가 대담한 설치작업에서 쇄신을 느꼈습니다. 명상과 선의 세계로 이끄는 것 같았거든요. 작품이 달라지니 보는 이의 감각도 일렁입니다. 김호득 작가의 이 작품은 '머리에서 가슴까지' 이어주는 작품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음, 이쯤에서 슬쩍 고백하자면 제 첫 소장품이 한국화였단 사실입니다. 결혼 축의금으로 받은 친구의 정성이 사무쳐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었죠. 신혼 여행비로 날릴 수도 없고, 일용품을 사는 건 더욱 안 될 것 같은 값진 돈이라 믿었어요. 아주 중요한 데 쓰고 싶었답니다. 4년 차 교사 월급의 절반이 넘은 액수니 정말 큰돈이었어요. 그 당시(1978) 전주는 한국화가 중심이었고 거래도 한국화가 앞에 있었죠. 두 번째도 역시 한국화입니다. 첫애 돌 반지 값으로 또 작품을 산 거예요. 작품이 눈에 삼삼하고 잔상이 남아 꿈에도 보일 지경이면 사랑에 빠진 거 아닌가요? 발이 안 떨어져 계속 돌아보게 됩니다.
아쉽게도 쿠사마 야요이와는 인연이 있을 뻔하다 없었죠. 90년대 KIAF에서 경험담입니다. 서울의 한 화랑에서 들고나온 세 개의 호박 그림을 발견했어요. 나란히 걸린 세 점은 노랑 빨강 초록이었다고 기억해요. 검은 선이 뚜렷하고 점들이 찍힌 아름다운 호박이었죠. 값을 물었더니 상대를 안 합니다. 아예 대꾸가 없어요. 어쩌면 촌티 나는 아줌마를 무시한 걸까요? 절대로 못 살 형편은 아니었건만 면전 박대에 속만 아팠답니다. 소품이었고 나중에 들으니 석 달 월급이면 한 점은 살 수 있었더라고요. 인연이 아니었겠죠. 화랑 대표가 좀 더 친절하게 안내해 성사됐더라면 제 소장품이 더 풍성했을 텐데.
그간 전북회화의 끈을 이어온 여러분의 활동이 보람차길 기대합니다. 삼 십 년이면 한 세대를 넘는 긴 시간이군요. 그것은 무언가 남기고 기억될만한 충분한 세월입니다. 부침과 성쇠는 있을지라도 소멸은 없다는 예술세계. 예술은 언젠가 재발견되고 평가되어 부활합니다. 생명이 가진 끈질김으로 여러분의 작품이 어디서나 빛날 것으로 생각합니다. 버티고 우기며 지킨다! 예술가의 3대 조건이라죠? 오늘도 그림이 내 삶을 변화시키는 큰 힘에 의지하며 한 걸음 더 내딛기로 합니다.
'머리에서 가슴까지' 이어주는 작품과 작가들을 만나는 기쁨에 감사하면서.
[사진/도판] 시애틀 아트뮤지엄
원 게재: 특별기고 / 회화지 26호(2019) 22–27쪽 · 원본 PDF 22쪽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