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수화와 풍경화
산수화와 풍경화
산수화는 글자 그대로 산과 물이 주제인 그림을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자연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서양의 풍경화와 같다는 점은 자연 경치를 그린 것을 말한 것이다. 그러나 자연을 대하는 정신성은 다르다. 따라서 동양의 산수화는 '산수'라는 말은 자연과 인간의 합일을 두고 한말이다.
먼저 서양의 풍경화에 대하여 알아보자. 서양의 풍경화는 인간이 자연을 개척하고 정복하려는 의지가 담겨 있다. 풍경을 뜻하는 영어의 '랜드스케이프'(landscape)도 경작되는 토지를 뜻하는 말이다. 인간의 의미가 담겨 있는 자연을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같은 자연을 바라보고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많은 차이점을 가지고 있다. 표현면에서도 다르다. 우선 명암이 서양에서는 빛에 의해 뚜렷하게 나타나는 점이 있다.(서양미술사, 박우찬, 이룸, 2004) 동양에서는 그림자와 빛의 밝은 곳을 처리하는 점이 없다. 음양에 의해 표현 되는 것이다.
17세기 중반 이탈리아 북부 및 북 유럽에서 서민적 사실주의 미술이 나타났다. 풍경화의 최초 전성기는 네덜란드에서부터이다. 자유로운 시민 국가를 수립한 네덜란드가 풍경화를 꽃 피우게 한 것이다. 네덜란드 풍경화가들은 인물이 없이도 만족스러운 그림이 되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최초의 화가들이다. 메인데르트 호베마는 17세기 네덜란드의 대표적인 풍경 화가이다. 그는 시골길, 농가, 물방앗간 등 주로 주변의 풍경을 그렸다. 그의 대표작은 미텔하르니스의 마을길이다. 영국 수집가들에게 애호를 받았으며 영국의 풍경화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두 번째 전성기는 산업혁명을 치른 영국에서 꽃 피운 것이다. 산업화 속에서 시골 인구가 도시로 유입되면서 대자연에서 휴식을 구하고 평안을 찾고자 다시 원초적 자연을 갈망하였다. 영국의 풍경화가는 컨스터블이다. 컨스터블의 최고 걸작은 '건초수레'이다. 베르메르의 델프트 풍경은 직접 현지 장소에 나가서 그림을 그렸다. 광선의 대기 표현의 대가답게 대기가 충만한 델프트 항구의 고요한 모습을 장엄하게 묘사했다. 조금은 이상화하여 카메라 옵스큐라를 사용했을 것이라는 추측을 일으키는 작품이다. 17세기 네덜란드의 풍경화를 깊이 연구한 터너는 '빛과 대기로 가득찬 자연'에 매력을 느꼈고 폭풍우가 몰아치는 바다와 풍경과 안개 낀 템즈강을 주로 그렸다. (미술에 대해 알고 싶은 모든 것들, 이명옥, 다빈치, 2004)
19세기에 접어들면서 영국의 풍경화에 프랑스 화상 로스미스는 그림을 사들이고 파리 살롱전에 출품했다. 프랑스 예술가와 관객은 큰 감동과 충격을 받았다. 화가들이 야외로 나가게 되고 인상파의 태동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모네의 해돋이 인상이 비평가에 의해서 인상파로 명명되면서 순간의 느낌과 감각을 중시했다. 자세한 묘사가 생략 된 것이다. 모네는 정원을 일본식으로 꾸미고 수련 시리즈를 탄생 시켰다. 일본식 정원이 한국과 중국의 정원과 같은 것이다. 모네가 동양정신 같은 이미지를 찾아 나선 것이다. 순간의 감흥을 즉흥적으로 표현 했다.
이후 고갱과 고흐, 세잔 등은 근대의 풍경화의 눈을 제시 제시했다. 20세기는 더 나아가 대지 미술은 캔버스가 자연인 것이다. 사막과 대초원, 바다, 목장 등이 캔버스가 된 것이다.
동양의 산수화는 뜻이 형보다 먼저 인듯하다. 왕유가 저술한 화론으로, 두 편이 현존한다. '산수결'과 '산수론'이다. "대저, 화도 가운데서 수묵을 가장 상품으로 삼은 것은 자연의 성에서 비롯하여 조화의 공을 이룬 때문이다.", "무릇 산수를 그릴 때에는 뜻이 붓보다 먼저 있을 것이다."라고 했다.
이사훈의 산수화는 금벽(金碧)이 휘황찬란한 자수기법으로 청록채색과 세밀한 필조의 산수화법을 전해주었다. (중국 역대 명화가선, 주천추/임홍빈역, 열화당, 1979) 한국에서도 안견의 몽유도원도는 무위자연의 동양사상을 담고 있다. 진경산수화로 불리는 겸재 정선의 '금강전도'와 '인왕제색도'는 실경으로 그려지긴 했지만 그 끝은 자연에 합일하는 뜻이 들어있다. 산수화의 정신은 단순히 자연의 경치를 묘사한 것으로 끝나지 않고 인간과 자연의 합일을 바라는 동양적인 자연관에 의해 표현하였다. 강세황의 '영통동구도'는 이질적 구도와 표현법으로 주목을 받아온 작품이다. 동양과 서양의 이질적인 화법을 한 화면에 접목시켜 표현 했다. 근대에는 소정 변관식, 청전 이상범의 산수화가 실경을 바탕에 두고 있으면서 동양적인 인간과 자연 합일 정신을 가지고 있다. 근대 6대 화가와 현대의 산수화가들이 지향하는 바가 실경을 그린다고 하지만 동양의 세계관을 저버리고 있지 않다.
동양의 산수화에서 중요한 것은 물리적 현상의 재현이 아니라 현상의 경험이다. 오귀스탱 베르크는, 서양화에 있어서의 객관화 작용 그리고 그것을 지배하고 있는 데카르트적인 이원론에 대립하여, 산수화가 경험의 현실성에 입각해 있으면서 동시에 내면 과정을 통해 실현 되는 것임을 다음 과 같이 설명한다.
"여기에는 (산수화), 이원적 분리가 없다. 즉 주관이 객관을 보는, 데카르트적 직관, 보는 눈이 없다. 화가는 풍경을 자신의 마음속에 지닌다."
베르크의 설명으로는 산수화는 시각적 인상을 객관적으로 재생하는 것이 아니라 풍경이 작가의 심리 작용에 개입함에 따라, 말하자면 안으로부터 풍경을 창조해 내는 것이다.(풍경과 마음, 김우창, 생각의 나무, 2005)
5세기 종병은 "방의 벽에 자신의 보다 젊은 시절의 여행에서 기억되는 산수를 그렸는데, 그것은 산하를 방랑하면서 마음에 일었던 정신의 감흥을 다시 체험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또한 곽희도 비슷한 생각을 하였다.
산수화는 객관적 존재보다는 심리적 체험으로서 유토피아와 행복을 추구하였다. 화가나 감상자들은 더욱 적극적으로 상상력을 가지고 산수화에 접근하여야 할 것으로 본다. 심리적 변화 등을 놓친 그림을 변론하기 싫다.
원 게재: 전북회화-서양화와 한국화의 정신 / 회화지 13호(2005) 28쪽 · 원본 PDF 29쪽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