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서예비엔날레-가을 묵향의 중심에 서서
가을의 전주가 좋다. 각종 축제와 풍성한 예술행사! 그리고 서예 전주의 문화적 수준이 한 단계 올라가는 계절이다. 그 중 묵향에 빠진 전주의 모습은 언제나 기다려진다. 올해로 다섯 번째를 맞이한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 가을의 아름다운 풍경보다도 가슴 설레는 세계의 문자축제 여행이다 정신없이 바쁜 일상에 잠깐의 예술나들이! 어색하기도 하지만 짐짓 으쓱해지는 마음에 축제기간동안 인상 깊었던 몇 가지 행사를 스케치해본다
첫째는 소리문화전당 전시장을 들어서는 길목에 늘어선 수많은 깃발의 이채로움이다. 이전의 서예비엔날레행사에서는 보지 못했다. 야외마당에서 푸른 가을하늘을 배경으로 펼쳐진 서예깃발의 모습은 축제의 분위기와 신명을 부르고 있다. 전시장에 있는 2005명의 서예가가 참여해 만든 대형작품과 마찬가지로 벽에 걸린 글씨보다 친근감을 준다.
둘째는 탁본체험, 영상서예체험, 나도 서예가, 경품추첨 등의 재미있는 체험활동이다. 어린아이들이 부모님과 함께 와서 직접 탁본해보고 글씨도 쓰고 하는 모습에 서예의 대중화가 보이는 것만 같다. 개인적으로는 은근히 경품추첨에 관심이 있었다. 관람객들에게 유명서예가들의 작품을 1주일에 2작품씩 무작위 추첨을 통해 주는 거였는데 매주 일요일 나는 기대에 부풀곤 했다.
셋째는 유명서예가들과의 만남이다. 개막식후 이루어진 비엔날레공모전수상자들의 시범휘호와 '작가와의 만남' 등의 행사는 내가 가장 기대했던 행사이다. 우리나라, 중국, 일본, 이스라엘, 필리핀 등 세계의 서예인 들이 한자리에서 직접 휘호하는 모습을 보기가 어디 쉬운 일인가? 전주의 한지에 푸른 눈의 외국인이 정성을 다해 휘호하는 모습이 정겹다. 또한 토요일 오후라 참가할 수 있었던 우송 김영삼, 학정 이돈흥 선생과의 만남에서 두 분의 문인화 및 서예에 대한 열정의 모습은 오래도록 가슴에 남았다.
마지막으로 신선한 서예작품과의 만남이다. 서화동행전이나 주제가 있는 병풍전, 기념공모전등의 작품이 보통의 서예전시회에서 보아왔던 작품보다 바라보기가 한결 가볍고 시원하다. 작품규격 및 형식이 다양하고 재미있는 작품이 많아 집 거실에 걸어두고 싶은 작품이 많았다. 세태를 풍자한 메시지도 통쾌하려니와 서예와 회화의 어우러짐 등은 이 시대정신을 살려가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물론 아쉬운 점도 있다. 전시장에 학생과 일반인들의 감상을 도와줄 안내인이 있었으면 한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지 않는가? 전혀 서예에 대해 모르는 사람도 부담감 없이 들러 한 가지라도 얻어가는 행사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에서이다. 탁본이나 글씨 체험장도 더 넓었으면 좋겠다. 대형 스크린을 통해서 유명서예인 들의 작업모습도 마음껏 지켜보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장기적으로는 가족끼리 와서 그냥 놀다 갈 수 있는 편안한 공간, 그리고 늘 서예작품을 대할 수 있는 상설전시장이 있었으면 좋겠다. 우리 스스로가 일상 속의 서예를, 예술을 즐기며 살아가는, 그래서 문화인으로서의 품격이 높아지길 소망한다.
솔직히 지금 세상은 얼마나 빠르게 변하는가? 그러나 세상이 그렇게 지나갈수록 우리는 항상 중요한 무엇인가를 빠뜨리고 사는 법이다. 부족한 무엇인가를 우리는 '느림의 감동'을 주는 서예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질펀한 한마당의 서예잔치, 서예비엔날레는 그것을 충분히 느끼게 해주고 있지 않은가? 아! 나는 묵향 가득한 전주가 좋다.
2005년 10월 30일(일요일) 서예비엔날레전시장에서
원 게재: 전북회화-세계서예비엔날레 / 회화지 13호(2005) 34쪽 · 원본 PDF 35쪽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