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박 19일 긴 여정 짧은 여행
'엄마 나 할말 있는데'
딸아이가 2주간의 유럽여행과 2주간의 폴란드 봉사활동을 마치고 돌아와서 했던 말이다. 그러면서 사진 한 장을 보여준다. 그 속에는 웬 남자와 함께 다정한 모습의 딸이 있다.
'누군데'
'남자 친구'
이렇게 시작된 딸의 국제 연애는 6년 동안 계속되었다. 그동안 한국과 핀란드 그리고 미국과 핀란드를 오가며 어느 누구보다 비싼 사랑을 한 것이다. 딸의 졸업 그리고 취직 이어 작년에 결혼을 했다.
작년에 시부모님의 한국나들이가 있었다. 거기에 대한 답례(?)로 이번에는 우리가 핀란드 여행을 하게 된 셈이다. 마침 남편이 퇴직을 하고 오랜 기간 나들이를 할 수가 있었으니 내인생 최대의 보너스를 탄 기분이다.
'흠흠 이 맑은 공기' 우리 일행은 헬싱키 항구에서 이내 코를 벌름거리면서 숨을 들이마셨다. 불과 일주일 정도 머물다 발틱 3국 여행을 위해서 약 일주일을 떠나있었을 뿐인데.....
구름이 많이 끼었다. 그래도 걱정은 없다. 버스가 공항까지 무사히 데려다 줄 것이고 그 다음은 비행기가 나를 그곳까지 운반 할 테니까. 공항은 언제나 붐빈다. 특히 방학 땐...
딸아이는 언제나 처럼 느긋한 성격대로 늦게 공항에 도착하였다. 출국신고서를 쓰고 화물을 부치고 면세구역을 돌아다니면서 화려하고 많은 상품들에 감탄을 하면서 눈을 즐겁게 하고 있었다. 드디어 10시간에 걸친 비행이 시작되었다. 공항직원의 배려로 팔자에 없는 비즈니스클래스를 타고 가면서 온갖 호사를 누렸다. 푸랑크푸르트에서 다시 비행기를 갈아타고 2시간 30분을 달려 헬싱키공항에 도착하였다.
새벽 1시30분쯤 헬싱키공항에 도착을 하였다. 놀랍게도 어스름한 어둠이 깔렸을 뿐이다. 말로만 듣던 白夜다.
숙소에 도착을 하여 한국에서부터 가지고 온 소주로 여독을 풀고 이내 깊은 잠에 빠졌다.
미리 가 있던 사위와 사돈 내외가 늦은 시간인데도 마중을 나와 있었다. 처음 보는 도시의 야경은 무척 아름다웠다. 숙소에는 사돈내외가 마련한 온갖 먹을 거리들이 냉장고에 가득하였다.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은 모양이다. 사돈이 온다니 마음을 쓴 것이다.
본격적인 헬싱키여행을 시작하였다. 중세를 연상케하는 뽀르보 마을 그리고 그곳에서 꼭 먹어봐야 한다는 키스라는 유명한 초콜렛, 그리고 바다를 바라보면서 마신 맥주, 첫날은 모든 것이 신기하였다. 빙하시대에 만들어졌다는 구멍은 정말 신기했다. 얼음이 떨어지면서 돌과 회오리가 만나 만들어진 것이란다. 작게는 주먹만한 것에서 큰 것은 깊이가 10M나 되는 것도 있었다.
시골의 작은 마을(옛날 전통가옥이 잘 보존된)에 갔는데 우리네 시골마을과는 많은 것이 달랐지만 그래도 시골은 세계 어느 곳이나 같은 것 같다. 농사지을 수 있는 갖가지 물건들 그리고 시골의 살림살이 등등이 그렇다.
밤9시가 훨씬 넘었는데도 해가 하늘에 둥둥 떠있다. 적응이 안된다. 아마 북극에 가까운 곳이어서 일까? 참 신기했다. 늦은 저녁을 먹고 딸 내외와 산책을 나갔다. 헬싱키는 항구이기 때문에 가까운 곳에 바다가 있다. 신기하게도 수많은 요트들이 있다. 그리고 섬 곳곳에는 마치 성과 같은 집들이 있다. 늦은 밤인데도 해가지지 않으니까 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돌아다니고 있다. 그 후로 나는 매일같이 아침 조깅을 이곳에서 했다.
숙소가 시내 중심가 가까운 곳에 있기에 골목골목이 모두 구경거리였다. 돌로 된 포장도로를 걸으면서 노천카페에서 일광욕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도, 거리에서 연주를 하는 그것도 한사람이 아닌 여러 사람이 하는 음악을 듣는 것도, 사위가 다녔다는 그 유명한 헬싱키대학 건물을 보는 것도, 그곳에 세워진 어느 시대인지 모를 러시아 짜르의 동상을 보는 것도, 가장 오래된 도로에 세워진 물을 푸는 기계를 보는 것도, 핀란드의 사업이 최초로 발달된 곳을 견학하는 것도 모두 이방인의 눈을 즐겁게 해준다.
이곳의 날씨는 종잡을 수가 없다. 비가 억수로 퍼붓는다. 그러다가 말짱하게 그친다. 그러다가 또다시 비가 쏟아지고 이렇게 비가 오는 가운데 본 땀미사르(땅끝 마을)에 있는 성은 마치 영화에서나 봄직한 중세시대 성이었다. 정말 견고하게 잘 짜여진 성이고 요새였다. 많은 곳을 관람하면서 한번도 입장료를 낸 적이 없다. 이곳에서 처음으로 입장료를 냈는데 아무곳에도 지키는 사람도 표를 받는 사람도 없다. 그리고 입장권을 사는 곳도 멀리 떨어져있다. 그래도 사람들은 모두 그곳까지 걸어가서 입장권을 사가지고 온다.
직업은 속일 수 없는 듯 암석교회를 가는 거리에서 본 양복 설치미술은 인상적이었다. 이쪽 건물과 길 건너편에 있는 건물에 줄을 걸어서 수십 개의 양복윗저고리를 수십 줄 걸어놓은 것이다. 만국기를 걸어 놓은 것은 본 적이 있지만 이런 작품은 처음 본 것이다.
'알비노성가'가 은은히 울려 퍼지는 암석교회는 그야말로 놀라운 모습이다. 천정을 제외한 모든 곳이 바위로 되어있는 것이다. 천정은 유리로 만들어 놓았다. 이곳 핀란드사람들은 95%가 기독교인이란다. 그리고 핀란드가 자랑하는 음악가인 '시벨리우스 기념관'은 재건축을 했는데 그곳에 쓰였던 벽돌들을 모두 모아서 바로 앞의 공원에 마치 탑처럼 쌓아 놓았다.
교외를 차를 타고 다니면서 우리 일행은 3가지가 없다고 입을 모았다. 첫째 경찰차가 없고, 둘째 무인단속카메라가 없고, 셋째 견인차가 없다. 시내 어디를 가도 사람이 지나가려면 운전자가 손으로 먼저가라고 한다. 이곳 사람들은 오전 8시30분부터 오후 4시30분까지만 근무한단다. 우리나라는 교사들의 이러한 근무시간에 따가운 눈총을 보내는 사람들도 많은데.....
아침에 또 비가 온다. 오늘은 일정을 모두 취소해야 할 것 같다며 잔뜩 실망을 하고 있는데 언제 비가 왔느냐는 듯이 날이 활짝 맑아진다. 항구에 나가서 배를 타고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록이 되어있는 '수오메린나 섬'의 '수오미성'에 갔다. 섬전체가 성으로 되어있다. 1750년에 러시아지배에 있던 핀란드가 요새를 만들고 1805년에 러시아가 침공하고 곧바로 항복을 하고 1917년에 독립을 하였으나 다시 스웨덴의 지배 하에 있었단다. 그때 영국이 터키와 연합으로 헬싱키를 침공을 하자 또 다시 항복을 했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섬이다. 1920년부터 감옥으로 쓰이다가 지금은 국군의 소유로 되어있단다. 우리일행은 이곳을 구경하면서 '이렇게 튼튼한 요새를 가지고도 반복적으로 항복을 했다니 그럴 수가 있느냐 우리나라는 이순신장군의 불과 수십 척의 배로 수백 척의 왜선을 물리쳐서 전쟁에 승리를 했는데' 라고 하자 사위는 처음부터 승산이 없는 싸움은 하지 않는 것이 현명하단다. 그날 오후에 딸아이와 같이 현대미술관에 갔다. 미술관 규모도 엄청나고 전시하고 있는 작품의 규모나 양도 많다.
사부인의 초대로 헬싱키시내에 있는 한국음식점에 갔다. '한국관' 이라는 우리 음식점이다. 비빔밥과 김치찌개를 시키고 주위를 둘러보니 그곳 사람들도 있고 한국인들도 있다. 그중에는 마침 '2005 세계 육상선수권 대회' 가 헬싱키에서 열리고 있는데 우리 선수를 인솔하고 온 듯 한 임원4명이 앉아 있다. 반가운 마음에 한걸음에 달려가 인사를 주고 받았다. 음식점에서 한국인의 대단한 저력을 엿볼 수 있었다. 주인은 약 10여 년간 헬싱키에서 유학생활을 하면서 이곳에서 한국음식점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귀국을 하여 고향에서 10여 년간을 음식점을 경영하면서 자기만의 비법을 터득하여 다시 약 2개월 전에 이곳에 와서 전통한국음식점을 차렸단다. 무려 20년을 준비한 것이다. 잠깐 보았지만 그 주인은 분명 성공한 한국인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섰다.
핀란드의 옛 수도인 뚜르끄를 보기 위해서 기차역에 갔다. 뚜르끄에 불이 나자 그곳을 포기하고 수도를 옮겼단다. 화장실에 가고 싶었는데 가는 곳마다 동전을 내야한다. 갈 때마다 우리가 한말은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 였다. 1280년에 짓기 시작했다는 뚜르끄성은 전쟁중에 폭파 됐으나 내부는 다시 증축을 하여 옛것은 옛것대로 또는 새로운 스타일은 그대로 지은 성이란다. 뚜르끄와 헬싱키는 마치 전라도와 경상도사이와 같단다.
1200년에 지었다는 교회를 구경했다. 그 교회내부의 바닥은 교회의 중요한 인물들의 무덤이 많이 있다. 제단에 계시는 하느님이 내려다보도록 설계되어 있단다.
모처럼 그곳의 결혼식을 볼 수 있었다. 우리네 결혼 풍습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다. 하객들은 물론 결혼식이 끝난 다음에 하객들이 교회의 계단 양편에 서서 신랑 신부를 축복하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어느 나라든 신랑 신부의 모습은 부러울 뿐이다. 교회내부의 모습 중 그림이 많고 장식이 많은 교회는 러시아 종교이고 그렇지 않은 곳은 루터교란다.
뚜루끄에 갈 때 탔던 기차는 요금이 많이 비쌌다. 그러나 올 때는 아주 싼 가격의 기차를 탔다. 기차내부도 더러울뿐더러 기차에 탄 사람들도 다른 사람들의 시선은 아랑곳도 없이 큰소리로 떠들고 아이들도 마구 울어대고 정말 힘들었다. 이곳도 소말리아 보트피플이 많이 있어서 유럽에서는 보기 드물게 흑인들이 많다.
집 떠나면 고생이란 말이 하나도 틀린 것이 없다. 사전 지식을 충분히 얻어서 준비도 철저히 했다고 생각했었는데 변덕스러운 날씨에 견딜 재간이 없다. 100년만의 무더위라는 더위를 견디고 있을 한국을 생각하면 행복한 일이지만 옛날에 월남에서 시집을 온 새댁이 하라는 일은 하지 않고 한여름에도 담요만 둘러쓰고 방안에 앉아있다는 우스갯 소리가 헛소리가 아니다. 견디다 못해 백화점에서 두터운 모자가 달린 셔츠를 사 입었다. 그런데도 이곳 사람들은 끈만 달린 티셔츠와 민소매 옷을 입고 활보를 한다.
헬싱키의 교통망은 부러울 정도로 잘 되어있다. 이번에는 트램을 타고 시내일주를 하기로 했다. 나무가 많고 땅이 넓고 사람은 적은 곳이라서 시내도 공기가 무척 맑고 상쾌하다. 날마다 날마다 가장 부러운 것이 맑은 공기였다. 그리고 화장실에 있는 물도 마실 만큼 깨끗한 물이다.
린다호라는 배를 타고 한 시간 반 정도 가면 에스토니아가 있다. 이곳은 핀란드에 비해 물가가 훨씬 싸기 때문에 이곳 사람들은 곧잘 배를 타고 에스토니아로 가서 쇼핑을 마음껏 하고 온단다. 이 말을 듣는 순간 일본인들이 배를 타고 부산에 와서 실컷 먹고 물건을 사가지고 간다는 말이 생각나서 씁쓸하다. 추운 나라인 핀란드는 추위를 이기려고 술을 무척 많이 마시는 나라이다. 그래서 국가에서 정책적으로 술값을 비싸게 하고 판매도 정해진 곳에서만 할 수가 있단다. 자연 에스토니아에 가서 주로 술을 사가지고 먹는단다. 우리도 그런 일행에 끼어서 에스토니아의 수도인 딸린에 갔다. 간단한 점심을 먹고 old town을 관광했다.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우리들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탄성을 질렀다. 영화였다. 너무 아름답고 고색창연하였다. 더우기 비가 부슬부슬오니 그 정취란 말로 표현이 되질 않는다. 아름다운 시가지를 두루두루 구경하고 시청광장 노천카페에서 먹는 한 잔의 맥주란! 그야말로 영화의 한 장면이다. 백화점에 들러서 며느리와 딸에게 줄 선물을 골랐다. 귀걸이와 목걸이로, 놀라울 정도로 싼 가격에.... 그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우리도 술을 사서 항구로 나가기 위해 택시를 탔다. 문화수준의 차이를 바로 알 수 있었다. 과격한 운전은 물론 요금도 바가지이다. 우리나라의 모습이 떠 오른다.
일행 중 일부가 휴가기간이 짧아서 일찍 한국에 돌아가고 나와 남편, 그리고 동생댁 사위만 남게 되었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여행이 시작되는 것이다. 숙소에서 짐을 챙겨 등에 짊어지고 끌고 하면서 항구에 도착하여 에스토니아의 딸린에 가고 다시 그곳에서 라트비아의 리가를 가기위해 버스를 탔다. 우리와 다른 점이 또 있었다. 일단 버스가 무척 크다. 화물칸도…. 의자에는 간이 식탁이 있고 차내에 화장실이 딸려있다. 예상시간 5시간, 예매가 않된 불안한 상태에서 다행히도 버스를 탈 수가 있었다.
국경이 나오자 수비대원이 차에 오르더니 신분증을 검사한다. EU국가들 간에는 여권이 필요가 없다. 그러나 우리 같은 이방인은 여권심사를 해야 통과를 한다. 꽤 오랜 시간에 걸친 심사가 끝나고 국경을 넘었다. 에스토니아에서 라트비아로 정말 신기했다. 우리나라는 국경을 넘으려면 주로 비행기를 이용하는데 버스로도 국경을 넘다니, 이런 모습이 여행 내내 신기했었다.
자정이 다 되어서 라트비아의 수도인 리가에 도착했다. 어렵게 숙소를 찾아갔는데 완전 중세의 성이다. 계단은 가파르고 좁은 화장실이 객실 두 개에 하나가 있다. 어설픈 잠자리에 모두를 심란해 하고 있다가 피곤한 몸인지라 잠이 들었다.
리가 시내는 정말 예뻤다. 여기저기에서 사진을 찍어대고 시장구경도하고 물론 이곳 물가도 아주 싸다. 발틱 3국 중 가장 크다는 라트비아도 구 소련의 지배를 받았기에 여기저기 스탈린의 흔적이 남아서 이곳 국민들의 아픈 과거를 말해주고 있다. 발품을 열심히 판 결과 많은 곳을 구경할 수 있었다. 저녁에는 한국음식점인 '설악산' 이라는 곳을 찾아서 음식을 먹었으나 헬싱키의 음식과는 비교할 수 없는 형편없는 맛이었다. 물론 서비스도. 그러나 한편 생각하면 이곳에 정착해서 오랜 세월을 살다보면 음식도 자연스럽게 그곳 입맛에 맞게 변하는 것이 당연한 일인 것 같다. 역시 많은 교회건물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리고 곳곳에서 구걸을 하는 걸인의 모습을 보았다.
리가에서 기차를 타고 해변의 길이가 무려 20km나 된다는 유르밀라에 갔다. 과연 그 해변의 길이가 놀라울 정도이다. 전주에서 익산까지 거리이니까. 해변이 너무나 완만하여 전혀 위험해 보이지가 않고 너른 바다인지라 사람들 모습도 띄엄띄엄 한가하다. 나는 계속 저것이 수평선이구나 하면서 감탄을 했다. 정말 바다와 하늘이 딱 닿아있는 것이다. 리가 시장에서 그곳 특산물이라는 여러 가지 훈제 생선을 샀다.
조금 이른 시간에 리투아니아 행 버스를 탔다. 다시 6시간 정도를 가야 한다. 버스 속에서 이탈리아 여인이 두 아들과 여행을 한다며 아는 체를 한다. 짧은 영어로 서로 인사를 하며 헤어졌다. 버스를 타고 숙소를 갔다. 어제 저녁에 너무 좋지 않은 숙소의 기억이 있는지라 잔뜩 긴장을 했다. 다행이 아침밥도 주고 방은 아주 깨끗하고 전기스토브가 있어서 따뜻했다. 짐을 풀고 시가지 구경을 했다. 이곳은 호박이라는 보석이 유명한 곳이란다. 그리고 유리공예품들이 많다. 역시 교회건물이 대부분이고 '아침의 문' 이라는 곳에는 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모여서 마리아상 앞에 경배를 올리고 있었다. 교회 외관은 별로 화려하지 않은데 내부는 정말 화려하고 정교했다. 발틱 3국이 같은 것 같으면서도 각기 다른 특징을 지니고 있어 흥미로웠다.
수도인 빌니우스 거리를 걷고 있는데 보기 힘든 동양인이 길 건너편에 있는 것이다. 우리는 동시에 혹시? 하면서 유심히 보고 있는데 그녀들도 우리와 같이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가 혹시 하면서 서로 말을 주고 받으니 우리의 동포 고려인이다. 몇 마디 나누지 않았음에도 정이 느껴지고 마음으로 안타까움이 넘친다. 헤어지려하자 그만 눈물을 터뜨리고 만다. 반갑고 서러운 마음이 왜 없을까. 서로 얼싸안으면서 건강과 행복을 기원했다. 지금도 그때 만난 두 여인의 얼굴이 떠오르고 눈시울이 붉어진다.
다음날 나도 여자인지라 호박을 샀다. 큰 것은 내 몫이고 또 하나 작은 것은 사위의 체면을 차려주기 위해서 샀다. 한국에 가면 와이프에게 선물하라며... 헬싱키를 가기 위해 왔던 길을 역순으로 돌아온다. 리가에 들려서 유람선을 타고, 딸린에서는 카메라를 잃어버렸지만, 오는 길 내내 내가 언제 이러한 나라에 다시 올 수 있을까 생각하니 서운함이 앞선다.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크루즈여행을 위해서 헬싱키 항에 도착하여 여러가지 수속을 마치고 바이킹라인이라는 배를 탔다. 뱃속에서 하루를 자고 다음날 스웨덴의 수도인 스톡홀름관광을 하고 또다시 배에서 자고 아침에 헬싱키에 내리는 일정이다. 솔직히 15시간을 배를 타야 한다는 말에 '큰일났구나 지루해서' 라고 많은 걱정을 했었다. 그러나 너무 편안한 잠자리와 바다를 보고 즐기는 핀란드식 사우나 그리고 멋있는 레스토랑 일몰과 일출 등은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스톡홀름은 한눈에 보아도 역사가 꽤 깊구나 하는 것을 느낄 수 있는 도시였다. 어디를 가나 구시가지의 아름다움은 비슷했지만 느낌이 또 달랐다. 시청의 종탑에서 바라본 시내는 정말 장관이었다. 이런 것들을 보면서 우리의 관광정책을 생각했다. 새로운 것만을 추구할 것이 아니고 옛것을 되살리는 정책을 쓰면 5000년 역사를 가진 우리나라가 얼마나 많은 관광수입을 올릴 수 있을까. 그리고 우리나라의 옛 왕족들에 대한 생각을 했다.
오전 10시쯤 배에서 내려 중앙역에 임시로 짐을 맡기고 사위는 한국에 가져갈 우리의 가방을 가지러가고 우리들만 덜렁 남았다. 약 3시간 후에 만나기로하고... 백화점 구경을 나섰다. stockman이라는 헬싱키 아니 핀란드 최대의 백화점이란다. 물론 발틱 3국에도 지점이 있었다. 특이한 점은 직원 외에는 수납하는 직원만이 있을 뿐이다. 물건을 살 때나 구경을 할 때 곁에서 일일이 참견(?)해주는 우리나라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오히려 나 같은 경우에는 더 좋았다.
이제 여행이 종반부에 왔다. 헬싱키 교외에 아주 조용하고 좋은 호텔에 투숙을 했다. 저녁에 여독을 풀 겸 다시 한번 핀란드식 사우나를 했다. 여전히 사람은 없고 조용했다. 내일이면 비행기를 타고 집에 간다. 밤에 잠이 오질 않는다. 다시 가방을 꾸렸다. 잘 쌌다고 생각했는데 어쩐지 마음이 놓이질 않는다. 벌써 몇 번째 인지 모른다. 짐을 싸면서 그간 다녔던 곳들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내가 언제 다시 이런 여행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하니 처음으로 나이가 원망스러웠다. 조금만 더 젊었더라면.... 끝내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이다 날이 밝았다. 아침 식사를 위해서 1층 식당에 내려갔다. 여러 가지 음식들을 먹으면서 서운함을 떨칠 수가 없었다. 특히 그날 마신 커피는 이곳에서 먹어본 것 중에 제일이었다.
택시를 타고 공항에 가니 벌써 바깥사돈께서 나오셨다. 여러가지 수속을 밟고 이별인사를 하고 면세구역에 들어갔다. 이것저것 구경하다 꼭 사가고 싶었던 에스프레소 커피잔을 발견하고 이내 구입을 했다. 기분이 마구 들뜬다. 갖고 싶은 것을 가졌다는 충만감에....
두 시간 반 만에 프랑크푸르트에 도착을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유럽여행을 위해서는 이곳을 꼭 거쳐야한다. 그래서인지 정말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안내방송이 한국말로도 나와서 깜짝 놀랐다. 시간을 기다리는 도중에 중학생 또래의 아이들을 만났다. 아마도 어학연수를 다녀왔겠거니 짐작했다. 드디어 비행기에 올랐다. 무려 10시간을 가야한다. 비행기에서 보는 일몰은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예정시간에 인천에 도착하여 간단한 수속을 하고 가방을 찾으러 갔는데 아뿔싸 우리 짐이 오지 않은 것이다. 외인을 샀는데 그것을 포장하면서 몸통부분을 옷으로 감았더니 그것이 위험물건으로 취급이 되어 도착하지 않고 다음날 도착 할 것이란다. 웃어야 할지 화를 내야할지....
시차란 것이 별것 아닐 줄 알았는데 그것이 아니다. 새벽 3시까지 잠이 오질 않는다. 그리곤 낮에는 머리가 아프고 의욕이 없다. 여행지만 머릿속에 빙빙 돌뿐이다. 이것이 후유증일까?
여행 내내 한국에 돌아가면 이런 점들을 아이들에게 수업시간에 꼭 이야기해주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한 줄 서기라든지, 외국인이라도 영어를 유창하게 해서 서로 의사소통을 하는 점이라든지, 어린 나이에도 배낭하나 달랑 메고 여행하는 모습이라든지, 여행 중에 서로에 대한 배려와 양보 이해, 우리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리고 우리나라의 경치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등등 정말 많은 이야기들을 해주고 싶다.
지금도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것은 리투아니아 수도 빌니우스에서 만난 고려인들과 차 속에서 만난 이탈리아 모자의 모습들이다. 또 국경을 넘을 때 EU국가들과 그렇지 않은 국가간의 차별도 기억 속에 남을 것이다. 물론 수많은 경치들도 떠오르지만 그것 보다는 핀란드의 맑고 깨끗한 공기는 오래도록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을 것 같다.
어찌 생각해 보면 긴 여정을 이 나이에 이렇게 건강하게 무사히 다녀온 것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한다. 어디에서나 변함없는 가족의 소중함과 사랑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리라.
원 게재: 전북회화-나의여행기 / 회화지 13호(2005) 37–41쪽 · 원본 PDF 38쪽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