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그분과 동행하며
작품

작업노트
예수 안에서의 평화는 상대적 기쁨이 아니다.
절대적 만족, 감사이다. 그래도 내가 져보다는 나으니까.
저만큼은 아니니까에서 오는 행복이 아니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아니하실지라도 나는 언제나 기쁠 수 있는
당당하고 여유로운 풍요이다. 느낀자만이 끄덕일 수 있겠지만,
그분은 늘 모자람이 없기에 나는 늘 그분과 동행하며
미소지으며 살아간다. 단, 교만을 물리치면서…
작년, 아빠의 죽음앞에서 나는 많은 것들을
정리해 낼 수 있었다. 해야할 일들에 대해 책임감있게
해내고, 그리고 내가 하고픈 일들을 이루어내리라.
하고 싶은 일들을 해내야지 - 좋은 그림을 그려 내는 것
그려 낼 수 있을까. 그러나 미지수이기에 더욱 희망적이지 않겠는가.
'왜 그리는 것일까?' 왜 위인들은 힘들고 어려운 데도 그렇게 무언가를
이루려는 것일까?-큰 딸아이의 일기장에 적힌 '위인전을 읽고나서'이다.
이유는 자명하다. 헷세가 말했듯이
'강자(強者)라 함은 자기가 이루려고 하는 것을 기필코 이루어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위인이나 강자는 내 안중에 없다. 나는 그림쟁이.
나는 내속의 것들을 그림으로 표현해냈다. 나는 들키기를 원한다.
내 속 삶이 드러나 보여지고 그것도 한 우주요, 한 세계라는 소박한 道.
바꾸어보라고 말하지만 나는 바꿀 수 없는 것들을 그린다고 대답하고 싶다.
늘 내 속에 존재하는 생각들, 가장 인간적인 삶의 도전-사랑과 양심.
내일도 한강의 물줄기를 보러 갈까보다. 묵묵히 도도히 흐르는 강물-
왜 그것이 그냥 흐르겠는가? 저 강물이 흘러내리는 까닭은?
〈작가노트 中에서〉
원 게재: 나의작업노트 / 회화지 5호(1997) 14쪽 · 원본 PDF 16쪽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