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중리 소묘
작품

작업노트
아중리 개발지구에 흙바람이 분다. 황량히 펼쳐진 황토벌판 개발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파헤쳐진 산자락 어디까지 개발이고 어디까지가 환경 파괴인지 분간하기 어렵다. 몇 채 남은 집들은 포크레인에 허망히 헐리고 그 잔해만이 어지러이 널려 있는데 어디가 동산이었고 어디가 집터였는지 찾을 길 없다
아이들을 가르치다 문득 창너머로 기린봉을 본다 작년봄 연록의 기억이 생생한데 높이 올라가는 시영아파트에 산중턱 절집은 볼 수 없고, 남포소리와 더불어 산자락은 붉은 파편을 튀기며 잘려 나갔다.
자고나면 길이 바뀌고 변하는 이곳을 아이들은 걸어서 잘도 찾아온다 황토 자갈길, 먼지를 맞으며 학교에 왔다가 뿌연 먼지를 먹으며 집에들 간다
김밥이며 쫄면이랑 팔던 분식집 아줌마, 이사 비용도 받지 못했다고 한참을 버티다 떠난 그 아줌마는 지금쯤 어디에서 또, 삶의 터전을 일구고 있는지… 무진장 산골에서 흘러와 이 아중리에 뿌리박고 살던 끈질긴 생명력의 주인공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3학년 주희의 시〈아중리〉를 실어본다.
아 중 리
한 건물이 헐렸다 내 살던 집이 헐리고 이웃한 용재네 집도 헐렸다 골목길 돌아 잠자리 잡던 언덕이 헐리고 그 언덕 너머 미나리깡도, 그 미나리깡 굽어보던 동산까지도 산이 헐렸다.
이 자리엔 도로가 난다. 굽이돌아 모퉁이, 신작로였던 이 곳에 일직선 4차선의 도로가 이 자리엔 아파트가 선다 풀꽃 떼로 피워 나비날던 이 곳에 20층의 높은 아파트가.
과거와 미래가 교차하는 지금, 아중리는 아무것도 가지지 아니하였다 노오랗게 여기저기 흘날리는 흙먼지와 뚝딱뚝딱 육중한 기계소리 밤이되면 황량함만이 존재할 뿐.
하지만 아침이 땅을 녹이면 98번 버스는, 맑고 깨끗한 숨소리들을 아중리에 배달하였다.
희망에찬 숨소리를 꿈꾸며 아침에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오늘도 98번 버스를 탄다.
「강주희의 아중리 전문」
원 게재: 나의작업노트 / 회화지 5호(1997) 15쪽 · 원본 PDF 17쪽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