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노래, 부활의 이야기
작품

작업노트
생명의 노래, 부활의 이야기 1
어느 해인가 등교 길에서 바위틈에 있는 이름 모를 보라색 들꽃을 보았다. 들꽃을 보는 순간 생명에 대한 감사와 더불어 새롭게 사물을 느끼게 되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조용히 숨쉬며 생명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주변의 모든 것들에 대해서 관심 어린 사랑의 교감이 있었다.
그럴 무렵 나는 모든 생명의 근원이고 요소이며 흐름이신 분을 만나는 영광을 갖게 되었다. 그 이후로 나는, 나의 삶이 기쁜 소식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림을 그리는 일도 그렇다. 이때부터 내머리에 가슴속에 각인 되었던 회화의 모든 이념들을 지워 버리기 시작했다. 추상도, 포스트 모더니즘도, 전통도, 구상도 지워 버렸다. 다만 생명과의 교감을 통해서 그리는 내가 즐겁고, 욕심을 부려 감상자도 수면 속에 잠긴 생명의 이야기들 속에서 평강과 안식을 가질 수 있다면 나는 족하다.
1996.11.29 첫눈 오는 날에 -기석-
생명의 노래, 부활의 이야기 2
담장넘어로 단풍이 지기 시작했다. 새로운 변화의 시작이다. 아이들은 무슨일이 일어났는지 여기가 어느 장소인지도 모르고 소풍온 것처럼 뛰놀며 재잘거린다. 건물 한 켠에선 통곡과 더불어 시신을 태우는 연기가 엷게 퍼진다.
나는 마음 깊은 속에서 성경 한 구절을 되뇌이고 있었다.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라는 구절이다. 가족들의 흐느낌을 뒤로 하고 한줌 재로 변해버린 육체는 항아리에 담아졌다. 노란 은행잎이 더욱 노랗다.
사람의 물질적인 몸 안에서 생물학적 생명〔헬리어 비오스(bios)〕이 있고 혼 안에는 심리학적 생명〔헬리어 수케(psuche)〕이 있다. 거듭났을 때 영안에 또 다른 생명인 영원한 생명〔헬리어 조에(zoe)〕을 소유하게 된다. 영원한 생명인 조에는 피조되지 않고, 파괴되지 않으며, 썩지않는 생명이다. 이 생명은 영존할 뿐 아니라 시간과 성질 모두에서 영원한 생명이다.
사망의 세력이 엄습할 때 아무도 거절할 자가 없다. 사망의 그림자가 지나갈 때 모든것이 정지해 버린다. 사망을 이길 자가 아무도 없다. 그 분의 부활만이 사망을 이기셨다. "사망아 너 쏘는 곳이 어느냐" 그 만이 사망을 비웃고 사망을 떨치며 일어난 분이다. 그러므로 마지막 아담인 예수는 모든 사람에게 생명을 주는 생명을 주는 영이 되셨다. 내가 만난 주검들 앞에서 나는 인생의 공허함을 만진다. 그리고 더불어 참 생명, 영원한 생명에 대한 경외감을 느낀다.
내가 그리는 꽃이 어떤 꽃일까? 어떤 꽃이든 나에겐 중요한 것이 아니다. 가슴속에 간직한 수 많은 들꽃들이 있다. 죽음을 통해서 생성된 생명의 꽃이요, 부활의 꽃이다. 죽음후에 남는 것은 다만 생명을 통한 부활의 이야기다. 나머지는 재다.
오늘 더욱더 진일보한 생명의 교통이 있다면 나는 그림 그리는 일을 멈출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그려야 할 생명의 노래, 부활의 이야기가 남아 있다.
1997.10.28 형수의 죽음을 뒤로하며 -기석-
원 게재: 나의작업노트 / 회화지 5호(1997) 18쪽 · 원본 PDF 20쪽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