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으로 본 회화의 본성 — 안순금 전
1997.10.23 ▶ 10.29 얼화랑
안 순 금 전
[도판] 生-예감 / 89×65 / 수묵담채, 1997
안순금의 작품들 속에서 우리는 미묘하게 서로 얽혀있는 여러 형상들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들은 때로는 알 수 없는 어떤 부호처럼 다가오기도 하고 또한 알 수 없는 복잡한 추상적 형태로 나타나 있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또한 어느곳에서는 우리와 친근하게 만나게 되는 새나 꽃이나 혹은 산이나 집들이 보이기도 한다. 어떻든 이러한 복잡한 형상들이 때로는 구체적으로 혹은 추상적으로 나타나면서 서로 얽히고 설켜 그의 화면은 매우 흥미로운 그리고 아름다운 질서를 갖는 회화로서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의 화면들은 주로 수묵을 통해 구조를 형성시키지만 때로는 높은 채도를 갖는 색상을 과감하게 도입하기도 하고 혹은 혼합 색채를 구사하면서 수묵에 파격을 가져온다. 이렇게 보면 안순금의 작품은 그 속에 담겨 있는 복잡하고 야릇한 형상들의 다양한 집합들과 함께 먹과 색채의 대담한 구사로 인하여 더욱 미묘한 뉘앙스를 갖게 된다.
안순금의 작품들 속에 등장하는 이렇듯 난해한 형상들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우리는 그의 작품들을 이해하기 위해서 그가 표제를 달고 있는 생(生)을 들여다 볼 필요가 있을것 같다. 특히 생이라는 주제와 함께 붙여진 동심, 혹은 예감 등과 같은 용어들에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을것 같다. 그의 그림들은 언뜻 보기에는 복잡하고 알 수 없는 형태들이 얽혀 있는 것이지만 또한 자세히 관찰하면서 하나의 풍경화로서 다가오는 것을 알 수 있다. 말하자면 안순금의 작품은 그가 바라보고 있는 삶의 객관적 정황들을 그 자신의 독특한 감성의 체계속에서 새로이 재생시켜 보여주는 현대적 풍경화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화가들은 대부분 그들이 보고 있었던 것들을 그린다. 물론 어떤 화가들은 그들의 경험할 수 없었던 수천년 전의 과거를 대상으로 삼거나 혹은 미래의 어느 시대를 바라보기도 한다.그러나 그 사고의 출발은 대부분 그의 경험의 바탕에서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다. 또한 과거의 동양화들의 산수화는 주변의 실제적 풍경을 통해 작가 개인을 넘어서서 인류가 보편적으로 꿈꾸어 왔던 어떤 영원의 세계를 담아냈었다. 안순금의 그림을 통해서 우리는 동양화가 추구했던 전통적인 생각을 읽어 낼 수 있다. 물론 안순금의 그림들은 이전의 풍경, 산수화가들의 그림 속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나무와 산, 집 등등의 물상들과는 다르다. 말하자면 하나 하나의 물상들이 구체적으로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새와 집, 풀, 꽃 등등이 뒤섞여 딱히 구분되지 않는 모습으로 얽혀 있다. 안순금은 이러한 표현을 통해서 동양화의 전통 정신을 이해해 가고 있다.
안순금의 화면은 역시 수묵이 기초가 된다. 그의 수묵의 활용을 통해서도 그가 수묵의 세계를 나름의 독자적 형식으로 천착해 가는 면모를 보여준다. 수묵은 역시 필과 먹으로 요약된다. 말하자면 필묵의 원활한 구사는 수묵화의 본질이라고 볼 수 있다. 안순금은 화면에 등장하는 물상들을 가늘고 날카로운 선으로 결정한다. 그의 이러한 선은 모필만이 가질 수 있는 매우 독특한 것이다. 누구나 상식처럼 알고 있듯이 모필은 선을 표현하기 위한 도구이다. 다시 말하면 모필보다 더 좋은 선을 낼 수 있는 도구는 없다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이해에 도달해 있다. 그의 선은 모필만이 낼 수 있는 매우 날카로운 선을 구사한다. 이것은 지극히 단순해 보이지만 또한 대단히 동양화적인 표현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선묘들을 막막한 허공 속으로 끌어들이는 것은 발묵을 통해 이루어 낸다. 이렇게 해서 그의 작업은 충분히 형성되는 것이지만 화면의 뉘앙스를 위해 색채를 올려 낸다.
오늘날 동양화를 충분히 이해하는 동양화가들은 많지 않다. 또한 현대적인 건물이나 현대 풍경들을 그리는 것이 현대적인 산수 풍경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안순금의 경우는 현대적인 대상들을 그리는 것은 아니다. 단지 그의 주변에서 얻어지는 것들을 대상으로 삼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의 관심은 이들 대상들을 빌미로 하여 어떤 본질의 세계를 더듬어 내는데 있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은 전통 회화에 다가가는 가장 가까운 길이 라는 것이다. 나아가 이러한 전통에 대한 근원적 사고 혹은 자신에 대한 새로운 확인, 이것은 우리 전통 화가들에게서 가장 필요한 현대적 태도가 아닌가 한다. 물론 이러한 태도는 굳이 전통 화가들에게만 요구되는 것은 아니며 동•서를 막론하고 회화의 본질에 접근하는 것이기도 하다. 안순금의 작품에 대한 전통 회화로서의 현대적인 가능성에 대한 믿음이 바로 여기에 있다.
전북대학교 교수, 한국화가 이 철 량
원 게재: 전시리뷰 / 회화지 5호(1997) 4쪽 · 원본 PDF 6쪽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