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마음의 예술
[사진] 최경수
우주는 그 자체가 아름다움이요 아름다움의 극치다.
아름다움은 존재의 속성이며,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지성의 표상이다.
아름은 본질이요 다움은 됨이다. 그러므로 아름다움은 알음(씨알)에 도달함이요, 본질에 대한 이해와 깨달음의 감성적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알음(앎)은 지성과 감성을 통한 영적 깨달음이요, 이런 아름다움을 체험할 수 있을 때 우리는 행복한 삶을 영위 할 수 있다.
❶ 예술의 바탕은 마음
진실된 마음에서 진실된 행위가 나오 듯 마음의 여유가 있을때 예술은 아름다운 모습으로 자신의 진실을 나타나게 된다. 그러므로 예술의 바탕은 마음이다. 우리는 깨달음의 경지에서 열린 만큼 볼 수 있으며 보는 만큼 느낄 수 있다. 아름다움은 존재의 본질에 근원을 두고 있기 때문에 아름답게 느낄 수 있는 마음이 있어야만 우리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 수 있고 우리의 삶을 아름답게 가꾸어 나갈 수 있다.
몇 년 전 어느화가 한 분과 점심 식사를 하게 되었다. 이제 연륜도 쌓여가니까 자신의 그림도 바뀌어야 할 텐데 하고 걱정하듯 말하는 그분에게 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마음공부에 관심을 두고 살아가니까 내가 영적으로 성숙하는 만큼 세상이 달라져 보이고 내 마음도 커져가는 것을 뚜렷이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당연히 달라지겠지요."
수년이 지난 지금도 예술품을 감상 할 때마다 그때의 기억이 되살아나고 새로운 창조를 표현한 예술가의 진솔한 마음을 느끼면서 또한 그것을 즐길 수 있는 내 마음의 크기를 바라볼 수 있어서 스스로 든든한 자부심을 갖게 된다.
❷ 우리 문화의 아름다움
문화는 우리가 살아있고 시대적 상황과 환경을 배경으로 독특한 기운을 나타낸다. 나는 우리 조상님들의 문화적 유산을 볼 때 마다 문화적 자긍심을 충분히 가질만 하다고 감탄하게 된다. 문화란 차별이 아닌 개성의 차이라서 우열을 가리거나 비교할 바 아니지만 그래도 우리 문화는 세계 여러나라의 문화에 견주어 결코 손색이 없다.
나는 조상님의 유물들을 보면서 참으로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그들은 지금의 눈으로 보면 (판독불가: 지면 하단 인쇄 결손)면에서 많이 뒤떨어질지도 모르지만 세월의 깊이와 영적인 기운을 담고 있어서 내가 애정의 눈길로 바라 볼 때마다 포근하고 묵묵한 어머님의 가슴으로 나를 감싸주곤 한다.
우리의 문화는 생활이요 역사이며, 민족의 혼(정신)이 담겨 있는 것이기에 아득함과 깊이가 있으며 겉만 화려한 작품들이 따를 수 없는 우수한 기품이 있다. 그리고 그 속에는 피와 땀과 눈물이 담겨 있어서 새로운 생명의 의지를 북돋아 주게 된다.
내가 근무하는 병원의 정문에는 조선시대에 사용하던 한약 절구통의 밑바닥에는 커다란 거북을 조각해 놓고 절구통의 사면에는 두 개의 연꽃과 두 개의 거북을 조각해 놓았다. 사실 편리성만 추구하고 있는 현대 사회 같으면 약을 빻는 빈 공간만 있으면 될텐데 그보다 몇십 배의 공을 들여 하나의 예술품으로 승화시켜 놓은 조상님들의 지혜를 보면서, 나는 결과보다는 삶의 과정이 더 중요하고 아름답다는 깨달음을 주시는 조상님의 가르침에 항상 감사드리고 있다. 그리고 기쁜 마음이 일어나면 내가 대한 사람이라는 뿌듯한 자부심을 갖게 된다.
우리들 자신만이 가지고 고유한 맛과 멋의 예술성은 우리의 정체성을 일깨워주는 동시에 새로운 시대를 향해 창조의 방향을 결정해 나갈 수 있다.
생명의 작품속에는 인간의 지식으로 판단할 수 없는 신비한 기운과 영적인 아름다움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민족예술품을 대할 때마다 겸손한 마음으로 조상님들을 사랑하고 경외하게 된다.
우리의 문화속에 담겨있는 신비와 깊이를 느끼기 위해서 또 문화적 생활인 생활 문화를 통해 새로운 대한 사람으로 거듭 태어나기 위해서 우리는 우선 민족문화에 대한 체험과 애정의 마음을 가져야 하며 우리 삶의 공간에 민속 문화 예술품을 한점이라도 곁에 두고 그 깊이와 향기를 즐길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키워나 가야 한다.
❸ 대한 사람은 큰 마음으로 산다.
예술이란 인간 존재의 아름다움을 깨우는 것이다. 삶의 맛과 멋은 문화적 배경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각 민족마다 저마다의 고유한 문화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민족 고유의 문화를 간직한 채 자긍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민족들은 넉넉한 마음으로 삶을 즐길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 민족 고유의 특성을 지닌 예술 활동을 창조하고 있는가?
나의 것을 등한시 한 채 남의 것만을 무분별하게 받아들이고 문화적 열등감에 빠져 있지는 않는가?
나는 얼마나 우리 민족의 역사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 있으며 오천년을 지탱해 온 생명력을 이어 받으며 기쁘게 살고 있는가?
우리 한민족은 큰 마음을 가지고 하늘을 우러러 신앙하며 투박하면서도 끈질긴 생명력으로 신명(神明)을 받들고 살아 왔다. 한마디로 말하면 경천애인(敬天愛人)이요, 홍익인간(弘益人間) 재세이화(在世理化)의 근본정신으로 하늘을 향해 마음을 열고 이 땅위에 수천년의 뿌리를 내리며 지금도 살아간다. 그래서 나는 대한의 사람이라면 군자의 마음, 선비 정신, 그리고 머슴의 몸으로 살아야 우리 고유의 맛과 멋이 우러나는 인간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한다. 지금은 세상이 혼돈하며 인간의 정신이 사라지고 물질이 인간의 영혼을 지배하는 어둠의 시대가 되고 말았다. 이럴 때일수록 정신을 바짝 차리고 생명이 움을 트면 처음 시작의 자리로 되돌아 가야 한다.
큰사람은 기본이 튼튼해야 하므로 모든 거짓 것들을 털어 내고 초심(初心)으로 돌아가야 한다. 큰사람으로 성숙하려면 삶의 목표가 분명해야 하고 원칙과 기본이 튼튼해야 한다. 근본이 흔들리면 기초가 부실해지고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 처럼 모든 일의 의미가 없어진다.
"훌륭한 골퍼가 되기 위해 가장 훌륭한 조건은 기본기 입니다. 기본을 충실히 연마한 뒤 자기 몸에 맞는 과학적인 기술을 익혀야만 비로소 골퍼로서 대성할 수 있습니다."세계적인 골프 스윙지도 전문가인 리드베처는 자신의 성공 철학을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내적으로 건강해지고 자기 문화와 역사에 대한 자존감이 충분하며 자신에 대한 믿음이 형성되어 있으면 우리는 어느 것에도 매이지 않는 대도무문(大道無門) 의 경지에서 물처럼 자연스럽고 바람처럼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다. 인격이 성숙하고 큰마음으로 살면서 모든 것이 넉넉하면 울타리가 필요 없는 초월의 경지에 이르게 되는데 이 때 문이 무슨 소용 있겠는가? 그래서 큰마음은 대도무문으로 산다.
시류의 변화에 흔들림 없이 눈앞의 작은 이익에 휩싸여 자신의 본분을 잃지 않으면서 하늘 마음으로 영원을 무대로 삼는 큰 마음을 보고싶다. 자기를 희생하면서도 이웃을 품어줄 수 있는 그런 큰 마음으로 살아가는 대인들과 만나고 싶다. 그리하여 먼 옛날 상고의 시대에서부터 잃어버린 전설의 꿈을 찾아내어 오늘의 삶을 기쁘게 살아가고 싶다. 그것이 바로 진정한 예술이요 예술의 혼이 아니겠는가?
❹ 삶은 예술이다
예술이란 인간 존재의 아름다움을 깨우는 것이다.
예술은 진리와 생명의 아름다움을 즐길 줄 아는 마음이다. 아름은(씨알)의 체험이기 때문에 사물의 하나로 이해할 수 있는 깨달음이다. 그러므로 예술적인 삶은 존재의 알음(씨알)을 아름다움으로 느낄 줄 아는 마음이 기본이 된다.
아름다움이란 그것을 인식할 수 있는 주체의 능력과 깊이에 따라서 일도의 방향만 달라져도 외적인 형태와 가치가 완전히 바뀌어 버리는 진리의 차원이다. 그러므로 영혼이 살아 있지 않다면 예술이란 영혼을 혼란시키는 껍데기에 불과하다.
뿌리는 하나지만 줄기와 가지는 수만개이듯 존재의 근본인 마음은 하나 일지라도 그 표현방식은 각자의 개성에 따라서 수천 수만의 색깔과 형태로서 아름답게 나타날 수 있다.
나는 여러개 예술품을 소장하고 있지만 미술 점수는 미(美)밖에 안된다. 초등학교 4학년때 야외 사생을 나가 나무를 그리는데 어찌나 잎이 많던지 한시간 내내 연필로 나뭇잎만 그리다가 그림을 완성하지 못한 채 점심도 먹지 못한 일이 있다. 그래서 미술 점수는 미가 되었나 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아침, 저녁으로 하늘을 보면서 저정도 크기와 수준이면 수억짜리 그림이겠구나 하면서 스스로 마음이 부자인 것을 느끼며 기쁘게 살아간다. 얼마전에는 차를 몰고가다가 여인네들이 밝고환한 웃음으로 대화하는 장면이 영화의 한 대목처럼 기분이 좋아 차를 멈추고 한참동안 지켜보기도 하였다.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은 소유하고자 하는 사람이요 그는 늘상 빈곤함을 가지고 있지만, 가장 넉넉한 사람은 자연을 즐기고 세상의 아름다움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다. 이 넉넉한 마음이 바로 예술의 근본이라 믿으며 그 마음을 키우는 공부야말로 인생을 행복하게 이끌어주는 진정한 예술의 교육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제는 양의 시대가 가고 질의 시대가 오고 있으므로 우리의 마음도 외적인 지향보다는 내적인 관념으로 바꿔져야 한다.
며칠전 재미있는 외국 영화를 보면서 처음으로 서구 문명의 한계를 체험할 수 있었다. 외부지향적이고 감각 자극적이며 크기만을 주장하는 서구 문화는 섹스와 폭력, 그리고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인간의 정신을 혼란시키기 때문에 인간의 구원과 새로운 생명의 부활이 결코 이루어 질 수 없다. 이제는 정적인 깊이의 영성문화로 돌아와야 한다.
우주를 정복할 수는 없지만, 우주를 가슴에 묻고 그 생명의 기운과 질서를 느껴 볼 수 있는 마음의 차원에 도달할 때 우리는 안심하면서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며 위로해 줄 수 있다.
바다를 그리워하면서도 내 삶의 영역 안에서 조그만 옹달샘을 깊숙이 파들어가는 그런 큰마음이 바로 예술의 삶이 아닐까?
어차피 우리의 삶이란 날마다 신(神)을 향해 한 걸음씩 달려 나가는 거룩한 순례의 행진이기 때문에…
원 게재: 문화초대석 / 회화지 5호(1997) 8–9쪽 · 원본 PDF 10쪽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