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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작업노트

은근하고 소박한 아름다움

이승훈

작품

이승훈
이승훈

작업노트

프랑 까르뗄은 "미술의 목적은 보여진 사물을 캔바스에다 옮기는 것이 아니라 알려진 사물을 표현으로 옮기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리고 '예술의 임무는 인간의 삶을 불타오르게 하며 강렬하게 만드는 것이다.'그림 작업을 해오면서 타인의 많은 작품을 대하게 되었다. 그때마다 '나'와 '작품'과의 관계에서 많은 시간을 교감을 갖게 되었다. 하나의 이미지를 창출하기 위해서 여행을 하고 책을 보며는 도움이 된다. 사실 경험이 큰 도움이 된다고 하지만 미약한 편이다.

부쩍 백제 여행을 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 유산을 화폭에 담고 싶었다. 그 근원은 어린 마음 속 깊은데서부터 시작이 되었던 것이다. 우리 땅은 발길 닿는 곳 어디든지 박물관이 아닌 곳이 없다고 했다. 풍경도 좋고, 그 속에 사는 사람의 마음이 그렇다. 그 마음으로 표현한 인공미는 더 좋다. 그것은 나의 화재요, 소재이다. 그것이 주체이기도 하다.

조용한 시간이면 찾아가는 곳이 있다. 익산 미륵사지다. 무너진 석탑이라고 할까, 깨어진 석탑이라고 할까, 망설이다가, '역사의 마음을 표현한 석탑'이라고 결론지었다. 학창시절에 친구와 찾아간 것이 처음 인연이 되었다. 그 때는 이름 모를 나무에 싸여있었고 탑안에도 들어갈 수 있었다. 탑을 에워싼 논 들이 있었고 우물이 있는 마을이 있었다. 지금은 발굴 작업으로 그런 풍경은 없어졌다. 그 소나무도 없어진 것은 못내 아쉽다.

미륵산 자락의 마을 대신 유물전시관과 길 건너 생두부집 등 먹거리 상점들이 가득하다. 나를 남루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런 중에도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3편에 미륵사지에 대한 설명과 시적 가슴앓이가 펼쳐져 있다. 아름다운 글을보니 안심의 숨을 쉬었다. 따라서 나의 화선지에도 아직은 끝나지 않은 미륵의 역사, 눈부신 아름다운 역사를 표현하려 했다.

탑과 함께 석탑의 네 귀퉁이에는 수호신상이 있는 것인데 지금은 석상이 세 개만 존재한다. 이 석인상은 나를 항상 맞이한다. 가슴에 두손을 얹고 깊은 미소를 보여주다가 세파에 흔적만 남아 있다. 오히려 미더운 석인상인 것이다. 무너져 내린 탑만 애석하게 생각할게 아니다. 모든 두려움과 무서움, 증오와 한스러움을 가슴에 손을 얹고 한 번쯤 깊은 생각에 빠져보자.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도, 모나리자의 미소도, 신라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도 이 석인상보다 더욱 은근하고 소박한 아름다움은 없을 것이다. 정말 때묻지 않은 순수함이다. 결코 추하지 않고 휘황하게 번들거리지도 않는다. 그 모습은 발길을 되돌리지 않게 한다.

금당지에서 출토된 암•수막새가 출토되었는데 그 중 얼굴무늬 기와는 독특한 인물의 얼굴이다. 노인의 모습인데 세상의 어려운 일을 잘 견디고 살아온 우리네 할아버지 할머니의 모습이다. 토속적이며 민중의 모습인 것이다. 기왓장인 그들의 모습을 반추하여 만들거나 부모님을 연상하여 새겨 넣었는지도 모른다.

백제시대 회화를 알아 볼 수 있는 벽화편이 출토 되었다. 그 벽화 편을 보는 순간 찬란한 영화의 나라를 다시 보는 듯 하다. 당초문이 보일 뿐이지만 그 선의 아름다움이 석탑의 반전하는 모습과 같이 화공의 미적 정서를 전해준다.

소재와 표현의 대상은 일치하기도 하며 미궁에서 겉돌기도 한다. 나의 신념은 일치할 뿐만 아니라 작가나 감상자의 커다란 반향을 일으키리라고 본다. 따라서 이번 작품은 간단한 몇점의 소재로 더욱 흡인력있는 대상을 나타낸 것이다. 많은 소재는 수다스럽고 더욱 난감하게 만든다.

화면의 왼쪽은 생이파리가 흘날리는 모습이다. 시간이 다 되어 낙엽으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아직도 새파란 잎사귀가 떨어지는 것은 백제의 최후를 말함과 석탑의 아픈 상처를 고발하는 것이다.화면의 오른쪽은 다시 새롭게 역사가 정립되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다.

바탕은 우리네 마을에서 많이 볼 수 있는 흙담이나 비올 때 볼 수 있는 흙탕물, 가을날 하늘, 도자기 표면에서 볼 수 있는 색들이다. 미륵사지에서 보는 야트막한 산, 넓은 들의 색이기도 하다. 먹색의 검은 선 사이로 오방색이 나타난다. 그것은 우리의 옛 마음의 색이다. 무지개빛 보다도 우리의 마음을 잘 대변해 주었던 색채다. 나의 화면에도 이 오색은 차용된 것이다. 점차로 확대 되기도 하고, 함축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분할된 바탕면은 창문 살이나 조각보에서 흔히 보여지는 비례와 구조 미학을 찾아 볼 수 있다. 그 구성위에 미륵사지 기행에서 얻어진 고미술품이 재현되어 전체적으로는 백제의 가슴앓이를 표현하여 아름다운 미의 경지를 찾아가는 것이다.

올해는 '문화유산의 해'이다. 나의 작업 태도와 문화유산의 해가 어느정도 접근이 있기도 했던 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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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 1

원 게재: 나의작업노트 / 회화지 5호(1997) 19쪽 · 원본 PDF 21쪽 ↗

이 지면의 도판

백제기행 / 56×48.5 / 지본채색, 1997이승훈백제기행 / 56×48.5 / 지본채색,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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