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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현의 유럽 배낭 여행기

34살의 여행은 새로운 '삶의 비행'이 되었다.

정미현

7월23일

과연 배낭매고 떠나는 유럽여행은 어떤 느낌인지 호기심 반,모험심 반으로 친구들과 파리를 향해 떠났다.

파리의 새벽은 무척 조용했고 고전의 옛 빛을 잃지 않은 도시였다. 사람들은 다정하고 친절하였으며 눈에 띄게 한적함이 느껴지는 것은 그리 자동차가 많이 다니지 않는 거리의 풍경 탓이리라. 어느곳에서나 휴식을 즐기는 그들의 여유로움에서 문화적 차이를 느낄 수 있었다. 가장 크게 당황하였던 점은 교통 문화였다. 우리 일행은 습관대로 신호대기를 하곤 하였다. 하지만 멈추는 사람은 우리뿐, 그들이 아무거리낌없이 유유히 건너가는 것을 보고 그들의 교통질서 의식을 의심하면서 순간 의아함을 느꼈다. 하지만 몇블럭을 지나면서 의아함은 풀렸다. 그것은 교통의식의 차이였다. 여기는 모든 질서가 사람중심인듯 했다. 어느곳이든 사람이 있는곳엔 자동차는 정지하였고 그러한 그들의 배려는 안심하고 도보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프랑스인의 배려와 여유문화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그들의 거리풍경과 우리가 살던곳의 도심이 클로즈업되면서 한편 화가나는 것은 무엇때문인가? 생각해 보기로하고 우뚝솟은 에펠탑을 향해 걸었다.

우리가 배낭여행을 선택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짧은시간에 전공과 관련있는 것들을 많이 보고자하는 취지였다. 과연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해 나갈 수 있을 것인지의 두려움에 대한 해답은 '된다'였다. 일행의 짧은 언어와 적은 정보는 중요한 시간을 낭비하게 하고 육체의 피로를 가중시켜 오기도 했다. 한가닥 희망인 우리의 자유여행은 스스로의 자신감을 부추기면서 모든 문제에 해결과 결과를 통한 체험의 시간을 접할 수 있었기 때문에 긴장감을 풀지않고 최선을 다할 수 있었다.

특히 나에게 여행의 첫 기쁨을 안겨주었던 오랑쥬리 미술관의 '모네의 방'은 잊을 수 없는 감동이었다. 화집으로만 보던 모네의 '수련'은 가히 대작의 위력과 감흥을 일깨우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다음날에 들렸던 피카소 미술관에서는 크게 숨조차 쉴 수 없는 긴장감에 휩싸였고 그의 생애에 걸친 수많은 작품속에 그가지닌 특별한 영혼의 정열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그의 작업을 통해 끊임없이 열려있는 창작의 분출력은 나의 부족하고 나태한 작업생활의 허를 찌르는듯 했다. 조급한 마음으로 미술관을 빠져 나오다 골목어귀에 쓰러져 있는 남루한 젊은화가를 발견했다. 어찌할바를 몰라 바라만 보는중에 두 중년부인이 다가왔다. 그들은 쓰러진 화가의 모습을 보더니 급히 달려와 부추겨 주었다. 흩어진 그의 그림들을 챙겨주면서 안타까워하는 모습이 역력하였다. 그 여인은 그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지 고심하는 듯 하였다.가난한 화가의 모습을 뒤로하고 골목을 빠져 나오면서 그들의 모습과 파리라는 도시가 엉겨져 하나를 이루는 듯 했다. 많은 미술품과 미술관을 소유하고 있는 이들의 문화는 파리 시민들의 끝없는 애정과 애착에서 비롯된 것임을 인식할 수 있었다.

해질무렵 다른 여행지를 가기위해 야간열차를 타고 국경을 넘으면서 따뜻하고 정겹게만 느껴지는 파리의 매력을 잊을 수가 없었다.

우리 일행은 베를린을 거쳐 인스부르크 프랑크푸르트의 작은도시에서 짧은 시간을 보내고 이어 도착한 로마에서는 고대 문명을 경험할 수 있었다.

옛 로마의 모습을 잃지 않은 거리에서 많은 이들이 로마를 사랑하고 찾는 이유를 실감할

[사진] 베네치아 항

수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우리 여행의 가장 큰 수확은 이 시기에 열리는 베네치아의 '베니스 비엔날레'를 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에 들려 르네상스 미술을 경험할 수 있었음도 이탈리아 여행에서의 큰 수확이었지만 비엔날레의 가장 큰 행사로 자리잡은 베니스 비엔날레를 접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를 흥분시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사진] 피카소 미술관

그곳으로 가기위해 산타루치아항에서 배를 타고 물위에 떠있는 '곤도라'를 바라 보았을때 낭만과 열정이 깃든 이들의 옛 흥을 만끽할 수 있었다. 비엔날레를 본뒤 산마르코 광장에서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해질무렵 돌아가는 배를 타기위해 선착장에 앉아 있었을 때의 일이다. 따뜻한 바람, 출렁이는 물결속에서 학창시절에 배웠던 산타루치아라는 노래가 입가에 배어나왔다.

"창공에 빛난별 물위에 어리어 바람은 고요히 불어오누나 내 배는 달같이 바다를 지난다 산타루치아 - 산타루치아"

나는 점점 흥에겨워 크게 불렀는데 내 옆자리에 앉아있던 한 여인이 이노래에 흥을 돋구며 따라 부르기 시작했고 우린 어디가 끝이라고 할 수 없이 계속 반복하며 산타루치아를 열창했다. 어느새 그 여인은 오래된 친구처럼 나의 손을 꼭잡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배는 서서히 산타루치아항에 도착했고 총총히 걸어가던 그 여인은 우리일행을 향해 "산타루치아"를 크게 외치며 밝게 웃었다. 그 여인과 난 비록 피부색과 언어는 다르지만 그곳에서 나누었던 교감은 자연이 주는 또 하나의 아름다운 풍경이 아닐런지…..

우린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스위스를 들러 알프스 여름날의 하얀 반란을 -온산을 뒤덮어 버린 흰 눈- 만끽한 뒤 다시 파리로 돌아왔다. 20여일간의 짧고도 긴 여행이 계속되는 동안 일행은 여전히 긴장감을 풀지 못했고 남은 이틀동안 무엇을 더 볼것인가 고심하였다. 여행의 흥취를 만끽할 시간을 갖지도 못한 채 마지막 파리의 밤은 깊어만 갔고 우리는 아쉬움에 밤거리를 헤매고 다녔다.

다음날 새벽같이 일어나 비행장을 향해 달려간 우리일행은 비로서 지난 20여일 여행이 바보스러울 정도로 욕심에 찬 것이었음을 깨달았으나 그 미련스러움 마저 소중했다.

34살의 나이에 도전한 배낭여행은 다음의 선택에 중요한 힘을 가져다 주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또한 나의 삶가운데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추억으로 자리매김 하리라.

뜨거운 여름 여행을 준비하며 설레임속에 두려운 마음을 숨기고서 여행정보를 얻기 위해 여기 저기 귀를 기울였던 일들을 떠올리며 이제야 여유있는 웃음을 던져본다.

이글을 쓰기위해 고심하며 무엇을 보았고, 무엇이 있었는가 라는 일상적인 장면들은 서점에 나와있는 여행기를 통해 많이 읽었으리라 생각했다. 또한 다녀온 이들도 많으리라는 생각 끝에 나의 여행기는 그들의 삶의 모습, 이루어놓은 흔적을 보며 느꼈던 감흥을 나의 부족한 언어로 써내려 가기로 하였으나 역시 역부족임을 느낀다.

이 글을 쓰는동안 지난 여름의 흥취와 힘겨운 도전에서 얻은 성취감이 떠올라 즐거운 시간이 될 수 있었다.

새로운 도전은 새로운 시간이 되어 나의 영감을 자극하고, 이렇게 또 다른 '삶의 비행'이 시작될 수 있으리라 생각해 보며 이 글을 마친다.

[사진] 우피치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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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 1지면 2

원 게재: 정미현의 유럽 배낭 여행기 / 회화지 5호(1997) 24–25쪽 · 원본 PDF 26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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