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에 도색을 다시 한 2차선의 도로가 겨울을 재촉하는 비에 젖어 무척 깨끗하고 화사해 보인다.
흑(黑). 어린시절 무서움과 어두운 공포가 연상되던 무겁고 불투명하게만 느껴지던 검정색. 그 검정색이 어느새 투명한 빛을 내는 맑은 색으로 내 마음에 들어와 있다. 생각해 보니 벌써 15년째 먹(墨)을 접하고 있다. 지금은 얇고 투명한 화선지를 대할 때나, 가볍고 깨끗한 종이를 만질 때면 붓을 들어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충동을 느낀다.
나는 농묵(濃墨)의 진한 먹 보다는 담묵(淡墨)의 투명한 느낌이 좋다.
그 투명한 먹색을 담은 붓자국이 화선지위에 남아있는 것을 보면, 기분이 좋아져서 어느새 혼자 뿌듯한 마음으로 오랫동안 눈길을 떼지 못하고 있다. 15년이라는 시간 동안, 먹 작업을 해 오면서 순간 순간 스쳐 가는 많은 느낌이 있었지만, 가장 큰 감동은 그 투명한 먹빛을 알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 신비롭고 무한한 먹빛.
단지 내가 알고 있는 몇 가지의 먹빛이 아닌, 아직까지 내가 경험해보지 않은 또 다른 먹의 느낌이 있을 것이다. 그 또다른 먹빛(먹의 느낌)을 알기 위해 나는 또 몇 년의 시간을 보내면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