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호 수묵전
일시 : 2001. 7. 20 - 7. 26 장소 : 전북예술회관 5전시실
2001년 7월에 … 김승호
[도판] (캡션 없음)
80년대 후반부터 탈 장르라는 바람이 한국화단에 불기 시작하면서 많은 젊은 작가들이 전통재료인 모필(毛筆)과 수묵(水墨)사용을 진부한 것으로 시대에 뒤 처지는 것으로 간주하여 새로운 재료, 새로운 조형성 탐구라는 미명아래 아래 국적 불명의 작품을 양산해 내고 있다. 이에 염려를 더하는 것은 서양적 사고에 따른 다양한 재료 사용으로 인해 서양화와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그 구분이 모호해졌으며, 한국화가 위기라는 말까지 나오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모필과 묵을 일종의 신념으로 생각하며 꾸준하게 수묵작품을 발표해 오고 있는 김승호는 한국화가 지니는 재료(모필, 먹 등)의 특이성을 개발하고 발전시키려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는 많지 않은 작가중의 하나이다. 다시 말하면 한국화의 전통재료를 사용하면서 전통의 답습에 머무르지 않고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한국화의 자생성과 정체성을 찾아내려는 노력을 하고 있는 작가인 것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볼 때 그는 전북화단에서 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앞으로 한국화가 나아가야 할 방향과 그 발전 가능성을 일부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우진 문화공간에서 지원하는 청년 작가 초대전에 선정 된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번 개인전 작품에 나타나는 개념은 구상성을 배제하지 않으면서 순수 먹으로의 회귀로 설정하여 진지하게 접근하고 있다. 두 번째 개인전까지 간간히 보여주었던 색채사용은 절제되었으며 활달한 필력은 좀 더 치밀하고 정성이 담긴 운필(運筆)로 변모하였다. 이는 젊은 작가들이 단순히 먹으로 접근 과정에서 그 번짐과 스밈, 무한히 확대되면서 수축하는 공간의 변화 등 인위적으로 통제 할 수 없는 먹이라는 재료의 특수성을 추상성이라는 좀더 자유스러운 작업에 대부분 임하고 있는 실정에서 그의 구상적 표현은 신선한 자극제 역할을 해주고 있으며 붓질과 먹을 다루는 기술적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암시해 주고 있다. 2000년도 3회 개인전에서 보여주었던 律-수묵의 노래, 숨쉬는 대지 시리즈는 간략한 선(線)과 발묵(潑墨)의 효과를 사용하여 묵(墨)으로만 향하려는 그 열정과 의지를 보여주었다. 그의 서문에서도 보여주듯 - 지(紙)필(筆)묵(墨)만 가지고 하자! 욕심 내기보다는 열심히 그린다는 데 의미를 두자! 자연의 생명력을 먹(墨)으로 전달하고 싶다! 라는 독백같이 이번 개인전에서도 대자연의 생명력을 묵이라는 재료를 빌어 묵상(墨象)이 수묵의 재료와 정신합일(精神合一)된 경지에서 머리에 떠오르는 형상(특히 자연경관)을 일종의 스케치나 사고없이 순간적으로, 즉발적으로 화면에 표현하여 나타나는 형상을 의미한다. - 김승호의 이러한 묵상의 세계는 작품상으로 일정한 테마를 설정하여 시리즈를 형성하고 있지만 방법적 표현력은 붓과 먹에 대한 남다른 깊은 이해와 기술적 숙달에서 나오는 것이다. 중국의 명말 청초 위대한 화가이자 화론가인 석도(石濤)는 - 먹이 붓을 적시는 데에는 그 영험스러움이 중요하며, 붓이 먹을 움직이는 데는 그 신묘함이 중요하다. 먹이란 화가가 기나긴 수련을 축적하여 몽매함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영험스러울 수 없으며 붓이란 화가 자신의 살아 생동하는 체험의 축적 없이는 신묘할 수 없는 것이다. - 라 하였듯이 김승호 만의 체험과 수련에서 붓과 먹이 하나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서양화에서는 색(色)에 의해 선(線)이 없어지면 결국은 면(面)만 남으며, 동양화는 선(線)에 의해서 색(色)이 없어지며 결국은 묵(墨)만이 남는다고 하였다. 청록산수화로 시작하였던 그의 작품세계는 이번 개인전을 통하여 색이 없어지면서 그 색을 선(線)으로 대신하고 있다. 선은 묵에 의해서만 가능하다고 볼 때 아니 자신의 세계를 갖게 된다고 볼 때 결국 묵만 존재하는 묵상의 세계로 가고 있는 것이다. 동양화의 발전이 색(色)-선(線)-묵(墨)의 과정을 걸쳐 필연적으로 진행되어 왔다는 의미에서도 그도 이러한 과정을 걷고 있는 것이다.
[도판] (캡션 없음)
이번 작품 '그리운 길' 시리즈에서도 이러한 색-선-묵 과정을 볼 수 있다. 온통 묵으로 자연과 하나됨을 표현하고 있다. 운필(運筆)과 묵(墨)의 사용은 요철지(凹凸紙)와 함께 더 한층 심화되어 나타나고 있다. 전북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쉽게 볼 수 있는 적당한 소나무 숲을 가진 야산과 붉은 황토밭, 들 그 사이로 올망졸망하게 나있는 길들을 형상화하고 있는데 평상시 그가 보아왔던 풍경을 충실한 재현보다는 그의 심경(心境)에서 노니는 풍경으로 한번쯤 걸러내어 그 본질만 압축하여 표현하고 있다. 요철지 표면을 페이퍼(연마지)로 문질러 군데군데 보이는 흰 부분을 묵이 사용된 부분과 절묘하게 조화되어 대지가 긴 호흡을 하는 것처럼 숨을 쉬는 느낌을 자아내게 한다. 이러한 느낌은 작가 본인이 마치 그림과 대화를 하고 있는 것처럼 자연에의 끊없는 몰입을 지향하고 있다. - 동양화를 사의(寫意) 예술이라 하는 것도 대상의 충실한 표현보다는 그리는 사람의 심상(心象)의 세계를 표현하는 것으로 자연에의 귀의로 귀착되기 때문인 것이다. - 다시 말하자면 자연의 이미지를 심경(心境)의 세계에서 걸러낸 심상(心象)의 미(美)를 묵으로 표현하는 묵상의 세계를 그는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도판] (캡션 없음)
원 게재: 전시리뷰 / 회화지 9호(2001) 18–19쪽 · 원본 PDF 20쪽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