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명기 한국화 개인전
일시 : 2001. 4. 27 - 5. 3 장소 : 전북예술회관 2층 6실
[도판] (캡션 없음)
어느 개명한 선지식인이라면 이렇게 썼겠지요.
"자, 이제부터 제 그림이야기를 시작할까 합니다." 정도로요.
하지만, 그 마음이 내 마음같아 저 또한 이야기 始初를 이렇게 멋없이 꺼내는 것은 이왕에 유명한 그림이나 전시를 보아 두었던 보람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요즈음 日氣가 어쩌느니 저쩌느니 하고 제대로 받은양 서간체 교육문을 써먹기도 뭐하고, 더더구나 붓가는대로의 두서없는 작업을 顯玄한 顯學의 어휘 잇기로 심오하고 廣大한 지경에까지 끌어 올리기는 더욱 낯 간지러우니 참말로 그림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이 광활한 빈 여백이 원망입니다.
그래서 곰곰한 長考끝에 제 스스로에게 던지는 '왜 그리는 일이 즐거운가' 하는 질문에 대한 熟考에서부터 이야기를 잡도리할까 합니다. 지난 어느때라도 제가 그림그리는 일로써 평생의 業을 삼으리라고는 생각했던 바가 없었는데, 지금 돌이켜보니 지하 작업실을 轉轉한 지도 십수년이 지났습니다. 물론 지금도 여름장마 한철을 습기와 곰팡이를 상대로 애면글면하는 지하 작업실 생활은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그 또한 福된 즐거움입니다.
그림을 그리다 보면 수도시설이 없는 관계로 물을 일주일 가까이 갈지 못하기도 하고, 한 겨울 새벽녘에 난로 기름이 떨어지기도 하지만, 그림 한점을 중간 붓 하나로 완성을 합니다.
이 얼마나 지극히도 즐거운 忘我입니까?
그 즐거움은 곧 제 그림의 대상을 살핌이 제 자신의 그것에 우선하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아무데고 산이 있고, 그 산을 위대해지게 만드는 나무가 있고, 그 나무들을 정겹게 하는 작은 오솔길이 있습니다. 강이 있고, 그 강을 풍요롭게 하는 우거진 수풀이 있고, 그 수풀을 애잔하게 하는 빈 둥지가 있습니다.
또, 둘러보면 사람들이 있고, 그 사람들을 애타게 하는 사연과 기다림이 있습니다. 그 대상들에서 너무나도 고마운 아름다움을 느낍니다. 하지만 그 살핌이 아직도 너무나 미비하고 속되며, 부족한 탓에 군화신고 발바닥 긁는 식으로 그치지 않을까하는 우려와 연민이 떠나지 않음은 어쩐 일입니까.
[도판] (캡션 없음)
사람이 산에 걸려 넘어지는 일은 없지만, 작은 흙무더기에 걸려 넘어지는 일은 숱하고, 멀리있는 별들만을 바라보며 걷다보면 발밑의 수렁에 빠지기 쉽다고 합니다. 무슨 이야긴고 하시겠지만 제가 요즘 그렇다는 이야기입니다. 산만이 의식되고 별만이 보이는 나날들에 문뜩 문뜩 나타나는 흙무더기, 깊은 수렁을 금번 개인전으로 또 한번 피해보고자 하는 간사한 마음이 없지않아 부끄럽습니다.
하지만 태부족인 역량탓에 주변을 보살피기는 아직 힘에 겨워도, 내 평생의 美에서만큼은 살펴 그리는데 있어 충실하고, 지극한 즐거움을 영위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 간절합니다.
그러다 보면 제 주위사람들이 모두 저보다 잘나 보이는 날들이 많겠지요만, 그런 날은 어느 詩人의 말처럼 꽃 한송이 사들고 집에 가 아내와 함께 노는 것도 괜찮은 방법일 것입니다.
[도판] (캡션 없음)
원 게재: 전시리뷰 / 회화지 9호(2001) 20–21쪽 · 원본 PDF 22쪽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