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를 색칠하는 페인트공
우리동네에 페인트공이 한 사람 살고 있었다. 그는 아주 작고 가냘픈 얼굴을 가지고 있어서 처음 보는 사람이면 그가 그렇게 힘든 일을 할 수 있는지 의아심을 품을 정도였다. 짧은 런닝셔츠를 걸치고 땀을 흘리며 일하는 그의 윗몸은 얼굴과는 전혀 다른 억센 근육으로 탄탄하였다. 가냘프고 섬세한 얼굴이 미쳐 표현해 주지 못한, 그의 거친 삶이 온통 근육으로 뭉쳐져 있는 듯하였다.
그는 팔십 연도 초에 해외취업으로 중동에 자녀온 적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지극히 검소하고 절약에 길들여져 있어서 언제나 똑같은 작업복을 입고 페인트가 범벅이 된 모자를 눌러쓰고 원미동 거리를 조용조용 걸어다녔다.
그는 페인트뿐만이 아니라 건축에 관계되는 모든 내용을 훤히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건축공학에서나 다룸직한 최신공법도 그의 머릿속에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어서 집에 하자가 발생할 때는 좋은 의논자가 되었다.
그가 건축공사의 페인트공으로 머무른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동네의 주택 보수공사가 대개 그렇듯 보일러나 수도, 방수에 손을 대면서 페인트를 칠해도 될 터인데 그는 굳이 페인트 한 가지만을 고집하는 사람이었다. 그 이유는 오직 하나, 갈등을 삭힐 수 없어서였다.
갈등에 대하여, 그처럼 많은 시간 생각하는 사람도 없을 것이었다. 외벽의 누수방지를 위해 공사를 하고나면 그것의 완벽성이 입증되기까지 그는 고민하고 갈등하였다.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옥상의 방수공사를 맡게 되었을 때, 그는 사흘간 식음을 전폐하고 일에 매달렸고 그 뒤 장마가 끝나기를 기다리는 한 달 동안 수없이 갈등하며 초조하게 공사 결과를 확인하였다.
보일러도 그런 까닭에 손대지 않았다. 방이 따뜻하지 않다거나 곁불이 새어 화덕만 망가지는 결과가 종종 있었으며 그럴 경우 그는 갈등을 뛰어넘는 자기 불안에 식욕을 잃을 지경이었다.
말하자면, 우리 동네의 그 페인트공을 한 마디로 말하자면 그는 대단히 철학적인 인식구조를 지닌 사람이었다. 그는 자기가 손댄 모든 공사의 내용에 분석과 해석을 거듭하다가 모순에 빠져 회의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종류의 하자 보수공사에 오직 갈등만 익힌 그는 페인트공으로 스스로를 낙착짓고자 하였다. 페인트는, 초조롭게 결과를 기다릴 만큼 노골적인 하자는 없을 분야였다.
게다가 공사를 마쳤을 때 눈앞에 드러나는 신세계가 그는 좋았다. 배합과 착색, 섬세한 붓질, 이 모든 것이 그의 분석력에 걸맞는 듯 싶기도 하였다. 그는 아주 소심한 사람이기도 해서 때때로 배색의 과정에서 갈등을 겪기도 하였지만 그 정도야 참을 만하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그는 가끔씩 문방구에서 한 묶음의 백지를 사가기도 하는 사람이었다. 뭐할 거냐고 물으면 낯을 붉히면서 그냥, 이라고 우물쭈물 대답하였다. 그는 백지 위에 아마도 자기가 원하는 색의 배합 비율을 적는 것인지도 몰랐다. 그는 '양심의 편차'라든가 '인간의 내부구조' 등의 말을 간혹 사용하였고 '사는 것은 백팔번뇌'라는 말을 자주 하였다. 그의 말대로 하면 고민 없는 삶이 없고 한 가지 갈등이 스러지면 이어 다른 갈등이 생겨나는 법이었다.
그의 집은 원래 아주 오래된 기와집이었다. 이 동네의 토박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오랜 세월 그는 그 기와집에서 독실한 불교도인 노모와 함께 살았다. 그리고 그 기와집의 윗방에서 신혼살림도 차렸고 그의 아내는 아들만 둘을 그에게 안겨주었다. 그의 아내는 때때로 페인트를 칠하는 남편 옆에서 붓을 빨아주기도 하고 새 깡통을 갖다주기도 하였다. 그의 아들들은 아주 개구쟁이여서 갈등과 회의로 범벅을 이룬 아비된 자의 얼굴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그 페인트공은 얼마 전부터 동네일에서 손을 떼었다.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고, 그의 헌집을 무너뜨리고 그 자리에 반듯한 이층집을 짓기 위해 공사를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신축공사는 거의 두 달 이상 걸렸다. 그는 완전히 시멘트 범벅이 되어 공사장에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새집을 지으면서 그의 얼굴은 나날이 초췌해 갔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는 거의 병자처럼 가냘퍼졌고, 담장에 기대어 쉬는 때가 잦았다.
집짓기가 원래 고단한 일 아니냐고, 누군가가 위로하면 그는 설레설레 고개를 흔들었다. 건축일에 해박하니 자기 집을 지을 때 얼마나 유용하게 스스로를 바치겠는가, 이 집이야말로 완벽한 집이 될 것이다, 라고 말하면 그는 서글프게 웃었다.
"말도 마세요. 하나에서 열까지 갈등, 갈등 그 자체예요."
그는 실제 모든 일꾼을 사서 부렸고 그 자신은 보조역할만 맡고 있을 뿐인데도 그러했다. 어쨌거나 새집은 나날이 꼴이 갖추어졌고 동네사람들은 이층집의 주인이 된 페인트공의 절약정신을 치하하였다.
그리고 어느날, 다 완성된 집에 페인트칠이 시작되었다. 대문과 난간, 기와를 얹은 옥상, 외벽 등에 일꾼들이 매달려 분주하게 일을 하였다. 그 사람들 중에 페인트공인 집주인은 없었다. 그는 오히려 작업복도 입지 않은 채 동네 골목길에 무심하게 서 있었다.
나는 그에게 물었다.
"페인트가 전문이면서 왜 남들에게 맡기세요?"
페인트공은 쑥스럽게 웃으며 자신의 집을 쳐다보았다.
"직접 하시면 더욱 꼼꼼하게 칠을 할 수 있을 텐데요."
나는 끈질기게 질문을 되풀이하였다. 그가 마지못한 듯 겨우 입을 열었다.
"난 저 집에서 최소한 삼십 년을 살 겁니다. 그런데 어떻게 내가 칠을 할 수 있겠어요?"
그는 오히려 나에게 반문하는 것이었다. 나는 어리둥절하였다.
"그러니까 아저씨가 직접 하셔야지요. 새집에서의 첫 번째 칠 아닙니까."
"그러니까 더욱 그렇지요."
"예?"
내가 계속 말귀를 못 알아듣자 그는 답답한 듯 외쳤다.
"삼십 년짜리라구요. 아시겠어요? 삼십 년 짜리 갈등을 왜 떠맡아요?"
양귀자 (소설가) 1955년 전주에서 태어나 원광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1978년 「문학사상」 신인상을 수상하여 문단에 나온 후, 『귀머거리 새』 『원미동 사람들』 『희망』 『모순』 등 많은 책을 출간하였다. '유주현 문학상' '이상 문학상' 등을 수상하였다.
원 게재: 특별기고 / 회화지 9호(2001) 25–26쪽 · 원본 PDF 27쪽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