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전의 하마비와 거북이
이 동 희
[사진] 경기전 하마비
전주는 태조 이성계의 본향으로 그 선대들이 살았던 조선왕조의 발상지, 즉 풍패지향(豊沛之鄕)이다. 그러기에 조선은 건국직후 전주에 태조 어진(영정)을 모시고, 그 건물(眞殿)을 새왕조가 일어난 경사스런 터라는 뜻으로 「경기전(慶基殿)」이라 이름하였다.
경기전에는 어진을 모신 진전과 함께, 그 동편 담 너무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했던 전주 사고가 있으며, 뒤편으로 전주이씨의 시조 이한(李翰)과 시조비 경주김씨 위패를 봉안한 조경묘가 있다. 조경묘에는 조그마한 재실이 딸려 있는데, 이 재실이 조선의 마지막 황녀 이문용 여사가 빨갱이로 몰려 10여년의 옥고를 치른 후 말년을 보낸 곳이다. 경기전 동편 뜰에는 구이에서 옮겨온 예종대왕태실이 있다.
이처럼 경기전에는 우리 역사와 문화를 대표하는 문화유산들이 그득하다. 하지만 경기전에 이같이 널리 알려진 명품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 문화의 묘미를 느낄 수 있는, 숨겨진 것들이 있다. 경기전 입구의 하마비와 진전의 거북이가 그런 것들이다.
경기전 하마비는 정문 밖, 도로가에 있다.(조경묘에는 이와 다른 하마비가 있음) 많은 사람들이 경기전을 찾지만, 대부분이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바로 정문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하마비를 관심 있게 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필자부터도 답사 안내를 하느라 경기전을 여러번 드나들었지만, 하마비를 세심히 살펴본 것은 얼마전이다.
이 하마비가 건립된 해는 왜란 때 소실된 경기전이 중건된 1614년(광해군 6)이다. 이후 1856년(철종 7)에 중각(重刻)되었다. 비석에는 두 줄로 "지차개하마 잡인무득입(至此皆下馬雜人毋得入)"라고 새겨져 있다. 이곳에 이르는 자는 계급의 높고 낮음, 신분의 귀천을 떠나 모두 말에서 내리고, 잡인들은 출입을 금한다는 뜻이다. 경기전이 조선왕조의 상징인 태조어진을 봉안한 곳이고, 그래서 근처에 있던 향교까지도 유생들의 글 읽는 소리가 시끄럽다하여 화산으로 옮긴 것으로 보아 이 하마비, 수문장의 위력은 대단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여느 하마비와 다르게 경기전 하마비는 받침돌이 특이하다. 판석 위에 비를 올리고, 그 판석을 두 마리의 사자가 등으로 받치고 있다. 사자는 맹수의 왕이어서, 불교에서 불법(佛法)의 수호자로 받들어지는 것처럼, 경기전의 수호신으로 누구라도 함부로 범접할 수 없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두 마리 사자의 모습이 다르다. 왼쪽 사자(우리가 바로보아서 오른쪽)는 입을 딱 벌리고 있는 것에 비해, 그 옆의 우측 사자는 입을 다물고 있다. 마치 불교에서 금강역사의 형상과 유사하다. 입을 벌리고 있는 「아금강」과 입을 다물고 있는 「음금강」은 곧 공격과 수비요, 양과 음이요, 따라서 하나의 완성이다. 그렇다 하면 하마비 두 마리 사자의 서로 다른 모습이 어떤 의미인지 짐작이 간다. 입을 벌리고 있는 사자는 수놈이고, 입을 다물고 있는 사자는 암놈이다.
발톱의 모양도 다르다. 입을 벌리고 있는 공격형의 수놈 사자는 발톱을 세우고 있고, 입을 다문 수비형의 암놈 사자는 안으로 오므리고 있다. 그런가 하면 엉덩이의 크기는 암놈 사자가 수놈 사자보다 훨씬 더 크다. 머리크기와 몸의 덩치는 엉덩이와 반대로, 수놈 사자가 더 크다. 눈매도 수놈 사자가 부리부리하니 공격적이다.
결국 맹수의 왕, 암수 사자 한 쌍이 음양의 조화를 이루면서 경기전을 지키는 상이다. 이것이 시대를 관통하여 우리문화의 토대를 이루고 있는 음양오행사상이며, 우리 전통문화의 특질이다.
음양오행사상은 음·양 2기와, 수·화·목·금·토 5행으로 우주의 생성, 변천, 소멸원리를 풀이한 것으로,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을 음양의 조화와 오행의 작용으로 보는 것이다. 그래서 마을을 지키는 장승을 세우더라도 음과 양 한 쌍을 세우고, 북을 만들더라도 한쪽은 암소가죽, 다른 한쪽은 수소가죽으로 한다. 지형상 음기가 강한 곳에 남근석을 세우는 것도 그런 이치다. 우리는 전통적으로 음양의 조화를 통해 자연과 하나가 됨을 추구했던 것이다.
서울의 남대문 「숭례문(崇禮門)」이라 한 것도, 오행설에 의거 남쪽이 「예(禮)」에 해당하기 때문이며, 동쪽은 「인(仁)」이어서 동대문을 「흥인지문(興仁之門)」이라 하였다. 전주의 남문 풍남문의 이전 이름은 명견루(明見褸)였는데 이 또한 오행설과 관련되어 있다. 남쪽은 곧 「밝음(明)」이기 때문이다. 임금이 남향하는 것도 그런 이유다. 궁궐에 있어서, 세자를 동궁이라 하고, 그 거처가 궁의 동쪽에 있는 것 또한 임금은 동쪽에서 나온다는 오행설에 근거한 것이다. 음양오행설에 의하면, 좌측이 양이고, 우측이 음이다.
이런 음양의 법칙이 화엄사 각황전 뒤편의 4사자 석탑에서처럼, 경기전의 하마비에도 반영되어 있다. 사람들의 관심 밖이던 하마비에 이같은 우리문화의 특성이 숨겨져 있었던 것이다.
경기전의 감춰진 또 하나의 포인트는 진전에 붙어 있는 거북이들이다. 경기전 안으로 들어가면 태조어진을 모셔놓은 진전이 있는데, 그 중앙에 「丁」자 형의 돌출된 배향공간이 있다. 진전 앞에서 바라보았을 때, 그 돌출된 지붕측면 널판지가 정면으로 보이는데, 여기에 나무로 된 조각품이 붙어 있다. 형상으로 보아 틀림없는 한 쌍의 거북이다. 한 마리는 목이 잘려나갔지만, 나머지 한 마리는 목이 온전하게 남아있다. 거북은 잘 알다시피 수명장수를 상징한다. 그래서 비석받침들도 거북이 형이다. 물론 불교에서 거북은 용궁 즉 부처의 세계내지 그곳으로 안내하는 인도자이기도 하다.
[사진] 경기전 진전 전경
[사진] 진전 거북이
어느 목공(木工)인가 경기전을 완성하고 그 영원함을 위해 지붕에 암수 두 마리의 거북이를 올려놓았던 것이다. 거북이가 물에서 살고, 진전이 목조건축인 점에서 특히 화재막이용 거북이일 가능성이 크다. 음양의 조화를 이루면서 화마를 피해 진전이 영원하기를 바라는 염원의 발현인 셈이다.
우리 문화는 얼른 보아 아무 것도 아닌 것 같고, 겉보기에 별다르지 않더라도, 자세히 뜯어보면 그 안에 뭔가 의미가 담겨 있고,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 따라서 우리 문화유산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외형도 중요하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를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우리 문화는 육안으로만 보아서는 안된다. 육안(肉眼)과 함께 심안(心眼)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랬을 때 진정한 가치를 느낄 수 있다. 하마비와 거북이는 우리문화의 이런 특질을 간직하고 있는 경기전의 또 다른 매력이다.
이동희 예원대학교 교양학부 교수
원 게재: 역사와 미술 / 회화지 9호(2001) 27–29쪽 · 원본 PDF 29쪽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