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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화에 대하여

한국화 감상을 위한 一助

이승훈

한국화 감상은 대개 3시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근대 이전과 근대 이후, 현대로 구분해 볼 수 있다. 근대의 시기는 19세기 중엽에서 일제 강점기로 보고, 현대는 새마을 운동이 일어난 1960년대 후반으로 대략 나누어 본다면 감상의 기본이 설 수 있다. 이 3시기는 개인적으로 나눈 것이고 어떤 학설에 따른 것은 아니기 때문에 독선이 있을 수 있다. 다만 공모전의 양상과 의식의 흐름이 다르다고 느끼기 때문에 설정한 것이다.

19세기 중엽에서는 중세 봉건적인 것들이 위기를 맞이했고 자본주의적인 것들이 발달해 나가고 있었다. 정치, 경제적으로도 그렇고 철학과 문화 또한 큰 변화를 맞이하고 있었다. 19세기 중엽 화단을 휩쓴 신감각파 화가들은 모두 1820에서 1830년대에 태어나 서울에서 활동한 세대들이다. 그들의 도전과 모색을 비롯한 여러 가지 변화를 들어 근대 미술의 기점으로 보는 것이다. 게다가 이 무렵엔 미술가들을 포함한 중인 예인들의 전기인 조희룡의 [호산외사]를 비롯해 유재건의 [이향견문록]과 화가의 자서전이랄 수 있는 조희룡의 [석우망년록], 허련의 [소치실록]이 나왔다. 또한 당대를 주름잡던 중인 화가들이 벽오사(碧梧社)와 직하시사(稷下詩社) 그리고 육교시사(六橋詩社)를 조직해 활동하였다. 이 무렵 거장들은 일찍이 습득한 수묵 채색화를 시대의 요구에 알맞게 변화 발전시켜 나갔다. 신감각주의 경향을 밀고 나간 19세기 화가들이 경쾌한 도시감각을 바탕에 깔고 자신의 분방한 개성을 표현하면서 내면의 갈등을 대담하게 드러냈던 것은 수묵 채색화의 기본 원리를 자신의 시대에 알맞게 혁신해 나간 결과이다.

근대 이전의 회화는 감상 작품이 우상에서 좌하로 흘러가게 감상된다는 점이고 근대 이후로는 좌상에서 우하로 감상을 한다는 점이다. 회화의 시점도 1점투시도와 같은 서양식 기법과 혼재하여 나타난다. 현대로 오면 전통의 시방식은 현대서양화에서 나타나는 많은 유파가 나타난다. 재료도 혼합 재료를 사용하기도 하고 시점이 없이 나타나며 역 전통적인 면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근대의 회화는 쉽게 접하기 힘들다. 다만 오세창(吳世昌, 1864~1953년), 전형필(全鎣弼, 1906~1962년) 선생 같은 수집가들의 헌신적인 노력에 의해서 감상의 기회가 있게 되었다. 이를테면 간송 미술관(澗松美術館)이나 호암 미술관(湖巖美術館) 그리고 에밀레 미술관이 모은 그림들이 그것이다. 거기에 총독부 박물관 소장품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국립중앙박물관이 있어서 감상자들이 제법 근대 수묵 채색화들을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밖에 여러가지 국립중앙박물관이 있고 특히 대학박물관에서도 중요한 근대 그림들이 있어 감상의 기회를 마련하곤 한다. 그러나 여전히 국립 근대미술관 또는 국립 근대미술박물관이 없어 흩어져 있는 근대 그림들이 점차 사라져 가고 있다.

우리 옛그림과 근대 회화로서의 한국화, 현대 한국화를 같은 맥락에서 감상한다는 것은 큰 오류에 범하기 쉽다. 서양화도 그렇다. 중세 그림과 서양 근대(19C) 이전 그림, 근대 이후의 그림을 감상할 때, 오늘날 현대 회화를 보는 눈으로 보아서는 안된다. 그림을 읽듯이 보아야 하는 그림이 있고 현대 그림처럼 보아야 되는 현저한 차이점이 있다.

다만 한국화와 서양화의 현저한 차이를 모색해 볼 만한 점들을 살펴보면서 감상의 이해를 돕고자 한다.

한국화의 여백, 한국화의 시점, 한국화의 재료, 한국화의 내용, 한국화의 필묵 등을 통해 이해를 하여보고자 한다.

■ 한국화의 여백

한국화는 그려지지 않는 곳이 있다. 이 빈곳이 여백이라는 것인데, 그려진 형상보다도 중요시 여기는 곳이다.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을 쓴 오주석의 글에 의하면 김홍도의 주상관매도가 대표적으로 감상할 수 있다고 했다. "화폭은 어른의 키만큼이나 커다란데 거기에 그려진 景物은 화면의 1/5도 채 되지가 않는다. 뿌옇게 떠오르는 끝없는 빈 공간, 그 한 중간에 가파른 절벽 위로 몇 그루 꽃나무가 안개 속에 슬쩍 얼비친다. 화면 왼쪽 아래 구석에는 이편 산자락의 끄트머리가 꼬리를 드리웠는데 그 뒤로 잠시 멈춘 조각배 안에는 조촐한 주안상을 앞에 하고 비스듬히 몸을 젖혀 꽃을 치켜다보는 노인과 다소곳이 옹송그린 뱃사공이 보인다.", "여백이 하도 넓다 보니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물인지 가늠을 할 수 없다. 그렇다. 김홍도가 시조에서 읊었듯이 '물 아래가 하늘이고 하늘 위가 물인가' 보다. 또 '봄 물에 배를 띄워 가는 대로 놓았으니' 잎새 같은 조각배는 둥실둥실 흔들리며 기운 없는 노인에게 가벼운 어지럼증을 가져다주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그렇지 않아도 어두운 '늙은 눈에 보이는 저 꽃나무는 아슴프레하니 안개 속에 잠겨 있는 듯하다.' 그림은 시조 그대로이고 시조는 그림을 꼭 빼닮았다. [주상관매도]에서는 그려진 경물보다 에워싼 여백이 전면에 부각된다. 그 보일 듯 말 듯한 느낌은 마치 지금은 들리지 않는 노년의 단원 김홍도. 그분이 소리하는 가녀린 시조창인 듯하다.

景物과 여백이 서로에게 안기고 스며드는 이 작품의 시적인 공간감각은 김홍도의 노년기 산수화에 엿보이는 특징이다. 그런데 우리가 보는 저 언덕의 풍경은 실제의 모습일까? 그렇지 않다. 언덕과 꽃나무는 우리가 바라본 것도, 맞은편에 앉은 뱃사공이 바라본 것도 아니다. 바로 그림 속의 주인공, 주황빛 도포를 걸친 노인의 늙은 눈에 얼비친 풍경이다. 이를테면 그것은 그림 속의 노인이 바라보는 풍경이 그대로 화폭 위로 떠오른 것이다. 참으로 오묘한 우리 옛 그림의 맛이다. 노인은 고개를 들어 저 언덕 위를 치켜다보고 있다. 그러니 아래쪽은 저절로 뿌예질 수밖에 없다. 작가 김홍도는 완전히 저 노인과 한마음이다. 그러므로 화가의 시선 또한 작품의 하변 바닥까지 내려와서 노인이 타고 있는 배를 아래쪽에서 올려다본 것처럼 그리고 있다." 묘사되어 있는 부분과 여백의 전체 관계는 새로운 정신의 눈을 통해 체험되어야만 되고, 그 다음은 주어져 있는 묘사된 부분을 균형 있게 보유하기 위해서 필요한 여백의 정도를 파악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여백(餘白)은 의미가 분명 존재하는 하나의 조형(造形)적 언어로 보고 무한으로부터 묘사되어진 부분을 더욱 만족시키고 암시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아름다움인 것이다.

이렇게 여백은 하늘일 수도 있고 땅일 수도 있고 물일 수도 있다. 대상의 가장 본질적인 주제의 사상을 잘 나타낼 수 있는 부분만을 취하고 없어도 무방한 주제와 관계없는 부분을 모두 화면에서 제거시켜버리기 때문에 여백이 생기는 것이다. 따라서 여백은 화면의 주제를 돋보이게 할 뿐 아니라 동시에 화면의 의경, 즉 이른바 형상의 연속을 확대시킨다.

■ 한국화의 시점

조선 초기 안견의 몽유도원도는 가로로 길게 그려진 그림이다. 이 그림은 한 화면 속에 다양한 시각이 어우러져 완성된 작품이다. 하나의 소실점에 시각을 집중시켜 그 길이나 깊이의 변화를 일정하게 함으로써 평면을 입체적인 공간처럼 보이도록 만드는 서양적 원근법과는 다른 시방식으로 그려진 것이다. 고원법, 평원법, 심원법이 혼재되어 나타난 삼원법이라는 것이다. 깎아 세운 절벽은 아래쪽에서 쳐다보는 느낌을 주고, 넓은 평원은 자신이 그림 속의 높은 곳에 올라서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작품 속에 작품 감상자가 들어가서 보는 느낌이 난다. 실제 산에 들어가서 바람소리, 계곡의 물소리, 바위의 묵직한 명상소리를 듣는 듯하다. 17세기 홉베마의 미텔하르니스의 마을길처럼 일점투시도법으로 그려서 과학적 원근법이라고 으스대고 작품을 사려보면 멀리보이는 교회의 종과 마을 사람을 만나지 못하고 사진기로 촬영한 하나의 사진에 불과하다.

또한 한국화의 역원근법(逆遠近法)을 비합리적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역원근법은 뒤쪽의 사물을 제한하지 않기 때문에 앞쪽의 산뿐만 아니라 첩첩이 쌓인 산과 계곡, 그 사이의 바위까지도 묘사가 가능하다.

따라서 우리가 인식한 실제의 풍경에 더욱 쉽게 다가갈 수 있게 된다.

■ 한국화의 재료

한국화의 재료는 수묵과 채색으로 이끌어 가고 있다. 서양화와는 대조적으로 수성에 의하여 전개되고 있다. 기본적인 도구가 모필이기에 그 특수성이 있다.

수묵과 모필, 한지가 대표적인 재료인데 종이는 부드럽고 유연하며 번지는 습성이 있다. 수성은 성격상 수동적이다. 종이에 스미는 수묵의 농담효과는 은은한 내면의 깊이 까지도 표현되며 밖으로 표출되는 강렬함은 적절치 않은 표현이다. 전반적으로 정적이며 평면성이고 명상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인 것은 일차적으로 재료성에 기인한다.

모필의 필력은 직관적이고 일회적이다. 덧칠하고 긁어내며 오랜 시간 수정해 가는 서양화와는 다르다. 일회적이다는 것은 수정을 가할 수 없고 숙련된 필력을 갖추어야 하며 사물과 내용을 함축하여 완성한다. 서양의 회화가 사실성을 갖는다면 보다 寫的인 것이다. 제스퍼 존스의 지도(1961, 뉴욕근대미술관 소장)나 안젤름 키퍼의 홍해(1984, 뉴욕근대미술관 소장)는 더욱 일회성으로 보이고 있지만 그것은 보편성인 것은 아니다.

■ 한국화의 내용

내용 면에서 산수나 화조 등 주로 자연을 소재로 한다. 산수화는 관념산수와 실경산수로 나뉘고 있다. 관념산수의 경우엔 그 독특한 문화적 배경을 이해해야하고, 실경 산수화도 서양의 풍경화를 보듯이 보아서는 안될 것이다. 산수의 원형 속엔 자연회귀란 동양인의 유토피아적인 관념이 살아 있다. 따라서 우리의 국토를 사랑하고 이상향을 가꾸어 갈 수 있는 새로운 모색이 있어야 한다. 산수를 단순히 풍경의 대체개념으로 감상하고 표현해서는 안될 것이다.

Peter Swann은 정선의 금강산도와 김홍도의 頂, 이인문의 강산무진도 등에서 중국화풍을 받았으나 도처에 독자적인 청아한 마음을 잘 나타내고 있다했다. 한국인은 심지어 중국인보다도 想的인 풍경을 더 잘 구사한다고 했다. 이는 떼느가 지적한 서양남구의 그리스인들이 선을 주조로 삼아 중요한 특색만을 표현하는 경향과도 같이 한국인은 조형미 구성에 있어 사실에서 떠나 "의식적인 과장"과 "환상적인 표현"을 즐겼다는 것이다. 자연환경의 요인에 따라 조형미도 다르다는 관점인데 떼느가 말한 한국의 자연은 유럽 남구와 같다는 점이다. 맑은 공기와 강렬한 태양의 자연에서 한국미술은 자연의 세부를 묘사하느니보다 형을 단순화하고 이상화하는 것이 아닌가하고 말이다. 중국화도 북송의 산수화가 묵의 농담으로써 자연의 모습과 대기의 변화를 섬세히 그려내는데 반하여 남송의 산수화는 대상의 형태를 정밀하게 그리지 않고, 화가의 심정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예술철학, 조요한, 경문사 1980)

서구인들은 동양적 한국적 사고와 양식으로 자기들에게 뭔가 새로운 것을 보여줄 수 있는 창작세계를 원한다. 국제무대로의 진출은 남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남에게 가르쳐 줄 수 있는 고유성이 있어야 구현될 것이다. (유홍준, 정직한 관객, 학고재 1996) 이제 어리석은 행위의 위험한 미학에 빠져서는 안 된다. 쉽게 미술가로서 영화를 누리려다가 백년대계를 그르칠 것이다. 한국적인 내용으로 가득한 회화를 만나기 바라마지 않는다. 그 점을 잘 읽어내야 한다.

■ 한국화의 필묵

필묵은 필법과 묵법을 포괄하는 말이다. 일반적으로 필법은 대상이 되는 사물의 형태와 구조를 표현하는 것이다. 묵법은 이러한 대상의 농담과 허실, 심지어는 양감까지 표현하는 것이다. 그러나 필법과 묵법은 서로 혼용되어 작용한다. 필묵에 의해서 사물의 형태와 질감, 동세 등이 표현되어진다. 문인화와 화조화 등을 보면 거칠고 섬세하며, 진하고 연하며, 부드럽고 강한 여러 가지 다른 필법을 교묘히 사용하여 기운생동이 나타나게 하는 것이다.

필법은 사실상 선을 사용하는 방법이다. 서예의 필법과 동일한 정보를 갖고 있다. 서예의 點(점), 劃(획), 별, 捺(날), 長短(장단), 曲直(곡직), 剛柔(강유), 虛實(허실) 등이 일치된다. 중봉과 측봉을 사용하여 변화가 일어나게 한다.

묵법은 필과 떨어져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묵은 필로 표현된다. 묵은 색채의 기법으로도 받아들이고 있다. 五墨(오묵)과 六彩(육채)가 그것이다. 농담에는 焦(초), 濃(농), 重(중), 淡(담), 淸(청)의 다섯 가지이다. 육채는 묵색의 변화를 말한다. 흑백, 건습, 농담 등이다. 그리고 칠묵법이 있다. 濃墨(농묵)법, 淡墨(담묵)법, 破墨(파묵)법, 潑墨(발묵)법, 積墨(적묵)법, 焦墨(초묵)법, 宿墨(숙묵)법 등이 그것이다.

사실 수묵화에서 물은 중요하다. 먹색이 습윤하고 생기가 있느냐, 혹은 죽어 말라붙은 것 같은가. 혹은 힘이 있거나 유약한가 등은 물과 직접적인 관련을 갖는다.

위와 같이 한국화의 여백, 한국화의 시점, 한국화의 재료, 한국화의 내용, 한국화의 필묵 등을 통해 감상자가 어떤 생각으로 한국화를 이해할 것인가 약술해 보았다. 이외에도 그림과 문학, 역사, 시대상황, 개인적 취미와 작가의 정신을 되짚어 보면서 감상을 한다면 격이 있는 작품 감상이 될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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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게재: 한국화에 대하여 / 회화지 9호(2001) 30–33쪽 · 원본 PDF 32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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