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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

전등사와 선운사의 여인상

이승훈(대성중학교 교사)

지난 여름 휴가 차 우리 가족은 강화도 전등사에 가게 되었다. 가뭄에 폭서가 우리를 진땀나게 하고 있었다. 퍽퍽 발길을 막는 시내를 벗어나 전등사 초입에 이르자 좁은 골목길 끝에 나오는 산문 하나가 있었다. 정족산성의 문이다. 남루한 문에 들어서니 시원한 나무숲이 우리를 반겨 주었다. 오솔길은 가꾸지 않고 버려 둔 곳 같다. 비록 가꾸지 않은 길이라 해도 뜨거운 여름날 탓에 신경이 가지 않는다. 시원한 길이면 만족한 것이다.

유명한 시인 고은도 한때 여기서 수행했다한다. 전등사에 들어서자 아늑한 뜰에 빛깔이 퇴색한 채로 법당이 서있다. 보물 제178호인 대웅전은 다른 절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양식이다. 추녀를 받친 네 기둥 위의 여인상은 대웅전을 세울 때의 일화를 갖고 탄생한 여인상이다.

조선 광해군(1621) 때 복원공사를 맡은 도편수와 절 아랫마을 주모와의 사랑이야기가 담긴 여인상이다. 도편수는 공사가 끝나면 함께 살림을 차리자고 주모와 언약을 했고 공사중 품값을 받아서 사랑하는 주모에게 바쳤다. 그러나 공사가 끝나는 전날에 주모는 밤도망을 한 것이다. 도편수는 그 여인을 사랑하던 정열 때문에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고 미움이 복받쳐 저주의 상을 만들어 추녀를 받치고 있게 하였다. 그래서 평생 머리와 두 팔로 쪼그리고 앉아 무거운 추녀를 받치고 있다. 하얀 이를 보이며 웃고 있는 모습이다. 가슴과 몸에는 법륜의 끈 조각 매듭을 가리게 하여 만든 나체 여인상이다. 그의 눈은 힘들고 맘 고생까지 한 사팔뜨기이다.

[도판] (캡션 없음 — 추녀를 받친 여인상 도판)

어느 분의 글에는 '종교적인 승화'로 볼 수 있게 하였다. 저주상이 아니라 오히려 참회하고 다시 중생의 모습으로 돌아간 여인상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절 완공식 전날 찾아간 주막은 흔적도 없으며 귀신에 홀린 기분이다. 빈터에 항아리만 하나 남았고, 그 속에 그 동안 주막을 내어 모아 놓은 돈이 모두 남아 있었다는 것이다. 도편수가 절색의 미인 주모에게 넋을 잃은 건 사실이고 그에게 절이 완성 되어가는 과정을 세세히 말했을 것이며 외로운 산 속에 세월은 그렇게 흘러갔을 것이다. 그래서 더욱 정진해서 절을 완성해 갔는지 모른다. 어쩌면 관음보살의 화신인 것이다. 그래서 밤마다 부처와 함께 한 것을 모르는 무지함에 부끄러워하며 '참회의 여인상'으로 승화시킨 것이 아닌가"라는 것이다.

오욕칠정에 맞물려 살아가는 우리네 사람들이 흔히 겪는 이야기가 서려 있는 것이다. 이야기가 나온 김에 우리 고장의 여인상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고 싶다. 전북 고창 선운사에 가면 천왕문이 있다. 천왕문에는 사천왕에게 잡혀 있는 여인상을 볼 수 있다. 이 음녀라는 여인상은 광목천왕상의 오른쪽 무릎에 깔려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고통의 세월을 보내고 있다. 불가에서 서쪽의 음탕한 기운을 막는 광목천왕은 무서운 큰 눈으로 사악함을 몰아 낸다고 한다. 그래서 악을 물리치는 안악이라 하고 광목이라고도 한다.

고통을 주면서 스스로 깨달음을 느끼게 한다고 하나 이 여인상은 오히려 음탕한 눈빛을 보내면서 추태를 보내고 있다. 참회하는 기색이 보이지 않는다. "나를 바라보는 너 또한 나의 치마폭에 싸이게 될 걸"하고 윙크하면서 음탕한 웃음을 흘리고 있다.

강화도의 대웅전 여인상은 비련이 낳은 여인의 모습이고, 고창 선운사 천왕문의 여인상은 비도덕성이 낳은 여인상이다. 그래서 전등사의 여인상이 천왕문에 잡혀 있지 않은 가 보다.

우리 일행은 식당으로 발길을 옮겨 식사를 하였다. 밴댕이 회 무침을 유별나게 맛있게 먹었다. 여인상의 기억이 가라앉으면서 여름날 별미가 새록새록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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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 1

원 게재: 여행기 / 회화지 9호(2001) 34쪽 · 원본 PDF 36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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