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화의 정착과 세계화를 위하여
이 땅의 젊은 화가들에게
한국화의 정착과 세계화를 위하여
[사진] 필자 송계일 교수
전북대학교 예술대학 송 계 일 교수
요즈음 한국화단의 전반적 풍토가 재검토 되어야 한다는 여론이 적지않다.
말하자면 국적이 없다느니, 너무 식상하다느니, 방향감각이 없다느니, 한국화의 현주소가 불분명하다는 이야기다. 그것은 결코 무리한 지적도 아니며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유도 분명히 있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방관만 할 수도 없다. 그것은 우리 모두의 시대적 사명이요, 작가적 책임이다. 이것은 다같이 풀어야 할 공동의 과제이기에 몇 마디 하고자 한다.
산업사회가 극대화 되면서 그리고 냉전시대가 종식되어 가면서 국제질서가 획기적으로 달라짐에 따라 우리 예술분야 역시 예외가 아닐 수 없다. 드디어는 국제무한 경쟁이라는 무거운 짐을 우리는 극복하기 위하여 범 국가적 차원의 공동노력을 해야하는 책임감을 실감치 않을 수 없다.
특히 국제 개방화 시대를 맞이하여 역사적인 숙명처럼 연관된 중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우리는 밀접한 관계를 맺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그리고 최근 북·미회담의 타결로 인한 남북관계 개선 등 정치적·사회적 관계가 급변하면서 우리 예술문화의 시대적 입장은 참으로 그 위상과 참모습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어느때 보다도 절실한 시점에 와있다. 정치를 비롯한 제반 사회적 환경 조건에 말려들자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우리를 필요로 하고있는 환경에 접해 있다는 뜻이다. 국가간에 이해를 돕고져 서로를 인식하려는 단계적 수준은 문화교류가 그 우선이다. 때문에 우리 한국화의 현 주소가 더욱 분명해져야할 필요성이 강해졌다고 본다. 비단, 이것 때문만은 아니다. 미술사적 순수예술 활동에 있어 작가들의 본연의 몫이 더 문제라는 것과 맞물려 있기에 더욱 강한 인식을 갖는다는 것이다. 한국화의 현대화 작업 원년을 60년대로 본다면 벌써 30여년이 흘렀다. 그 동안 수많은 양식과 표현상의 실험을 거듭해 왔다.
소재중심, 조형중심, 표현중심, 이데올로기 이미지 중심 등 거듭나는 실험을 통한 결과는 종합주의적 양상으로 나타났다 할 수 있다. 서구의 포스트모더니즘 이라는 사회적 새로운 문화의식과 함께 더욱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는 상황을 맞이하게 했다.
때문에 새로운 검증과 비판의 요청을 거부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즉, 외형적 표현상의 잡식성 시식같은것 또는 내부적 갈등과 허공같은 허탈감 같은 것이다. 맹목적 전통의 탈피와 무비판적 서구조형주의 추종같은 실험은 매우 위험스런 모험이 아닐 수 없다. 회화 예술이 순수한 미학적 입장 보다는 거부를 위한 거부나 특정목적에 영합하는 이데오르기적 표현은 자칫 한 시대와 한 민족의 중심문화 즉, 전통의 뿌리를 퇴색케하는 위험이 따를 수도 있다. 그리고 재료와 연장등 표현상의 제반문제를 확대하거나 극대화 시켰다고 새로운 것도 아니요, 양식상의 조형성을 심도있게 추구했다고 해서도 전부는 아니다. 소재의 다양성을 수용해서도 아니다.
도대체 왜 아직도 한국화단이 그 방향감각을 잡지 못할까?
나는 다음과 같은 내용들을 제언코져 한다.
첫째 : 우리것이라는 총체적 개념과 독자적인 자기 문제이다.
지구촌이라 불릴만큼 세계의 문화가 아무리 보편화 됐다 해도 그 속에서 우리 체질에 맞는 사상과 감정, 역사성같은 것이 내재하는 미학의 범주를 찾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총체적 개념 중에서도 '나'라는 자기 의식이 분명해야 할 것이다. 예술은 어느 시대나 그 독자성을 절대 우선 했기 때문이다.
예컨데, 동양의 기(氣) 사상이나 음·양사상, 그리고 민화적 민족의 회화성향 같은 것 이거나 각종의 의식행사에 접하는 문화 유산 속에서 우리 민족에 전통문화의 맥을 살펴 봄으로써 그 가능성을 찾을수 있지 않을까? 한다.
그리고 오늘의 현실속에서도 자기적 식견을 찾을 수도 있다. 말하자면, 냉철한 현실을 직시 함으로써 인간이 택해야할 최선의 문제점 이라든가, 아니면 자기의 체험적 사건을 미화 하려는 노력이다.
이지적 계산과 논리적 근거도 아닌 가슴으로 그리는 생명력 같은 것이다.
이러한 사연들을 작품화하여 세계적 공감대를 갖도록 하는 일이다.
둘째 : 표현적인 제반 문제들이다.
표현이라는 총괄적 범주는 한이 없다. 그러나 그 중심적 내용을 대략한다면 매체요건, 기능적 사항, 그리고 매체와 기능성을 여하히 운영 하느냐 하는 방법론이라 할수 있다. 이것을 전통적으로 계승 한다 든지 새롭게 개발 하거나 확대하여 보다 폭넓은 표현상의 개념을 극대화 하려는 노력이다. 서구적 발상이나 방법에 의존 하거나 추종해서도 안된다. 다만 상호 보완 하거나 필요부분의 적당량의 수용성은 무리가 아니라고 본다. 회화개념의 인식에 있어 서구적 조형론과 동양적 사의론의 맞남은 바람직한 새로운 감각이 되지 않을까? 한다. 그렇다고 동·서의 소속감을 초월하자는 것은 결코 아니다. 자체의 특성을 효과적으로 표현코저 협력관계를 갖거나 동·서의 이해를 돕고저 미학적 공통성을 찾자는 것이다. 그래서 20세기 한국화의 참 모습을 새롭게 창출하여 세계화의 노력에 그 위상을 높이자는 것이다.
셋째 ; 창작의 외적 요건에 관한 사항이다. 지금까지의 작가들은 거의가 자기 작품 제작에 충실하며 그 작품들을 모아 개인전이나 단체전, 초대전 등에 동참하는 일 외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이제는 안된다. 급변하는 사회는 구조적으로 우리의 안일한 생활을 용납치 않는다. 보다 폭넓고 영속적이거나 전문성의 극대화를 요청하고 있다. 궁극적으로 우리의 예술이 이 사회에 긍정적인 보탬이 돼야 한다는 입장에서 본다면 예술과 사회의 만남은 접근할수록 예술의 생명력이 길어 질 것이며, 그것은 예술의 최대 보람이라 할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 현재 우리 화단의 주변을 살핀다면,
① 전시공간의 절대 부족과 전시장 풍경이다.
늘어가는 미술 인구를 다 수용 할수는 없어도 최대한의 전시공간 확보를 위한 관과 민의 적극적인 노력을 해야한다. 그리고 전시장의 써늘한 감상객의 빈곤을 메꾸려는 적극적 홍보를 해야 한다. 집안 식구 끼리의 잔치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대중과의 만남을 위한 적극적 모색을 해야 한다.
② 발표 무대의 극대화
모든 작가가 그런 것은 아니나 대부분의 지역 작가들이나 중앙작가들도 전시지역의 한계가 너무 고정적이다. 전시문화가 발달됐던 아니든 전시지역의 다양성은 작가나 지역을 위해서도 매우 유익한 의미가 있다고 본다. 또한 전시의 전국화는 물론이려니와 세계화에도 적극적인 활동을 감수해야 한다. 국제간의 협회를 결성한다든지 상호교류를 위한 정보를 교환하는등 전시의 극대화를 모색해야 한다.
③ 창작활동을 위한 제도적 관계이다.
이것은 비단 우리 예술 뿐만 아니다. 한 시대가 전반적으로 변하고 모든 변수가 맞지 않는다면 당연히 그에 따른 조처가 당장 시급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현행 우리 미술계와 연관된 법령이나 각종의 제도는 오늘의 현실적 제반 문제를 해결하고 발전적인 모색을 크게 저해 하거나 방치한 상태이다. 미술관법, 미술유통,활동, 관리, 보관, 운영등 많은 분야에서의 점검이 절실하게 요구되는 시점이다. 이는 미술인이나 관계 당국의 비상한 대책이 절실하게 요청된다.
이외에도 많다. 아무튼 젊은 세대는 꿈과 현실을 잘 조화시켜 오늘의 한국화가 전통의 뿌리를 뽑지 말고 잘 가꾸어 세계 속에 그 위상을 높이고 그들의 관심을 끌어 들여 한국화의 진 모습을 보여줘야 할 것이다. 결국 예술가는 끝없는 나그네의 여정 같은 것이다.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 걸어가야 한다.
전북회화
◑ 약 력 ◑
碧耕 宋 桂 一
弘益大學校 美術大學, 建國大學院 卒業 國展 招待作家 國展 國務總理賞 受賞 全北文化賞 受賞 牧汀文化賞 受賞 審査委員(大韓民國 美術大展. 全南北道展. 無等美術大展. 韓國美術大展. 新羅美術大展. 春香美術大展) 韓國 現代美術 招待作家 SEOUL 美術大展 招待作家 韓·中 美術協會員 韓·獨 美術協會員 全北大學校 藝術大學長 歷任
(職)우560-756 全北 全州市 德津區 德津洞 664-14 全北大學校 藝術大學 美術學科 70-3726(科學事務室)
원 게재: 이 땅의 젊은 화가들에게 / 회화지 2호(1994) 10–11쪽 · 원본 PDF 10쪽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