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미현전 : 1993. 8. 17(화) ~ 8. 23(월) 얼화랑 — 시간앞에서
시 간 앞 에 서
[도판] 달 산. / 천 위에 수묵담채. 116×91. '93
시간 앞에서 변하지 않는 것이 없다고 한다. 모든 것은 흘러가 버리고 이내 사라져 버린다. 그 안타까움이란! 그게 인생일까?
아니다. 그게 아니다. 그 강렬한 부정. 정미현의 고집은 바로 그 사라져 버리는 것들에게 갖는 지독한 애정의 다름아니다.
그저 스치듯 지나가는 단순한 일상에서도 그는 놓칠 수 없는 이미지를 표출한다. 그의 눈빛 그물망에 걸린 事象들은 먹물에 풀려, "사라지지 않음"으로 자리한다.
처음에 '나무', '산', '하늘', '물'과 같은 자연과 그리고 인간을 소재로 하여 그의 수묵 작업은 시작되었고, 지칠 줄 모르는 열정은 모든 대상을 복합적으로 뒤섞어, 때론 섬세하게 때론 대담하게 형상화하기까지 그는 속으로만 얼마나 부대꼈을까.
그러나 그는 늘 물같이 살아간다. 아무리 힘든 현실이라도 그에게는 기꺼이 흐르고, 넘어야 할 산일 뿐이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이 산을 오르는 것처럼, 그림이 좋아 그릴 뿐이다. 그럴 때의 산은 이미 산이 아니고 '어찌할 수 없는 내 분신의 속성'이 되어 버리듯, 그에게 있어 그림이란 새삼 정의할 수 없는 '그 운명적인 것'이 되어 있다.
"머덜라고 그린다냐, 아새끼 낳고 키우기도 고단헌디……"
그러나 그는 일상성을 소중히 가꾼다. 흔히 '끼'를 내세우며, 누구나 그럴 수 있다는 식의 평범성은 거부하는 것이 예술 행위의 표본인 양, 은근히 치장하는 역겨움을 그에게는 볼 수 없다. 허나 아무렇지도 않는 특별날 것 없다는 '보통 여자'인 정미현은 꾸준한 작품 활동을 통해 변화와 실험정신을 내보인다. 참으로 쉼없는 갈구이다. 그리고 작품 속으로 들어가 그 자신이 오브제가 된다. 전통적 수묵으로 시작했음에도 그의 기법은 너무 현대적이다. 그럼에도 수묵 고유의 정통성을 이어오고 있다. 그러니까 자연을 그린다든지, 인간의 다양한 이미지를 표현하려는 시도 또한 작품의 외연적 의미와 내포적 특성을 표출하기 위한 그의 '끼'의 발산이다. 그러나 역시 그는 적어도 겉으로는 그저 그런 보통의 그림그리기 좋아하는 여자이다.
이제, 그에게 있어 그림이란 '바로 이순간'의 '살아 있음'에 대한 소중한 느낌이며, 무한한 상상력으로 보는 이의 '일상'을 깨뜨리는 자유스러움이다.
그를 지켜 보는 것은 즐겁다.
전북회화
이 정 애 (전북대 국문과 강사)
원 게재: 전북회화회 : 전시리뷰 / 회화지 2호(1994) 9쪽 · 원본 PDF 9쪽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