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회화회→회화지 아카이브→2호→이철규전 : 1994. 6. 20(월) ~ 6. 30(목) 우진문화공간
전북회화회 : 전시리뷰

이철규전 : 1994. 6. 20(월) ~ 6. 30(목) 우진문화공간

김재권 (미술이론가/조형예술학박사)

이번 작품에서 괄목할 만한 사실은 종래의 수묵을 배제한 조형작용으로서의 표현에서 다시 민화적 표현으로서의 색채와 부분적표현을 위해 수묵을 재등장 시키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현상은 어쩌면 그가 다시 건너야 할 강가에 도달해 있음을 알려주는 징후학적 반응이라고 볼수 있다. 수묵이나 채색으로 시작한 그의 회화작업이 그동안 서양의 포스트모더니즘 패턴속에서 실험과 모색으로서의 방황을 하다가 이제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을 자신에게 새롭게 던지고 있는 하나의 징후이기도 하다.

[도판] '94 옛날에는… / 100×100. / 장지에. / 수묵채색.

이번 그의 세번째 개인전에 보여주는 작품 역시 이러한 자신의 지각을 반영하는 하나의 방향잡힘이다. 서로 다른 공간의 대질을 통해 종전에 보여주던 도시문화 패턴이 향토문화적인 패턴으로 바뀌면서 동학혁명, 농민, 민화 등 과거의 삶을 바탕으로 잊혀져 가는 전통속에서, 가난한 농촌의 삶을 바탕으로 잊혀져가는 전통속에서, 황폐해가는 자연을 통해서 회화적 메세지를 재생산하고 있는데 이것은 결국 희망과 절망이라는 두가지 인간의 조건으로 귀착되고 있다.

그리고 이번 작품에서 괄목할 만한 사실은 종래의 수묵을 배제한 조형작용으로서의 표현에서 다시 민화적표현으로서의 색채와 부분적표현을 위해 수묵을 재등장 시키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현상은 어쩌면 그가 다시 건너야 할 강가에 도달해 있음을 알려주는 징후학적 반응이라고 볼수 있다. 다시말해서 수묵이나 채색으로 시작한 그의 회화작업이 그동안 서양의 포스트모더니즘 패턴속에서 실험과 모색으로서의 방황을 하다가 이제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자신에게 새롭게 던지고 있는 하나의 징후이기도 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예술을 인간과 세계를 통합하는 하나의 문제제기 기능으로 볼때, 오늘의 국제화, 정보화, 그리고 뉴 미디어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지역성이나 특수성을 지나치게 비대증식 해야할 필요가 있느냐는 사실이다. 왜냐면 새로운 창조는 인위적이거나 방향잡혀진 기존의 질서에 도전하여 얻어지는 자신으로서의 쟁취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폴 바렐리(Poul Vrelly)역시 "예술은 자기부정을 통해 은신처를 마련하고 자기죽음을 통해 영생을 얻는다." 라고 말하지 않던가?

아무튼 젊은작가 이철규의 작업이 지금까지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경직으로 묶여진 우리 동양화단에 새로운 창조적 장(場)으로서의 물꼬를 트는 행위로 지속되기를 기대해 본다.

전북회화

글/김재권 미술이론가/조형예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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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 1

원 게재: 전북회화회 : 전시리뷰 / 회화지 2호(1994) 5쪽 · 원본 PDF 5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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