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의 감미로움을 담은 고창 선운사
[도판] 고창선운사에서
첫 말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약간은 막연하다. 이미 지나간 여행이지만 누군가 여행의 묘미를 물어보면 나는 서슴없이 고창 선운사에 웅장한 기품을 느껴보라고 말한다. 선운사는 지리적으로 전주와 가깝고 봄에는 동백꽃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이번 여행에서는 보지 못해 아쉬움이 남지만 선운사 동구 길가의 밭 한 모퉁이에 서정주가 미당이었던 시절에 쓴 선운사 동구라는 시의 육필 원고를 그대로 새긴 미당시비가 세워져 있어 동백꽃의 찬란함을 상기 시킬수 있게 해 주었다.
전주에서 선운사까지는 약 2시간 30분쯤 걸리는데 가는 도중 차창가로 보여지는 전원 풍경은 한폭의 산수화 처럼 펼쳐져 있어 고향가는 기분이 든다. 선운사 뒷산 도솔산의 높이는 한라산에 비하면 턱없이 낮지만 지표가 거의 해면과 같기 때문에 산정상까지 올라가야 할 거리는 무시할 수 없다. 도솔산에 오르는 사람들에게 낙조대를 보라고 권하고 싶다. 웅장한 암석들이 한국의 미를 자아내면서도 오르는게 험하지 않는 평온한 풍경이 자랑스럽고 칠산 앞바다의 장관으로 펼쳐지는 석양이나 노을은 아름다움을 표현한다. 선운사로 들어가기전에 그곳의 창시설화를 사적기에서 알아보면 577년에 백제의 검단산사가 신라의 의운조사와 합력하여 신라 진흥왕의 시주를 얻어 개창하였다 한다. 본래 이지역에는 도적이 많아 검단이와서 이지방에 소금 만드는 법을 가르쳐 생업을 삼게 했다는 얘기가 있는데 이것은 설화보다는 사실인 것 같다. 선운사는 검단이 세운 백제의 고찰이다. 스님들의 포교 활동은 현실적 이익을 베풀면서 시작했다 하며 보은염으로 이곳 사람들이 선운사에 소금을 시납했다 하는 사실로 뒷받침 할수 있다. 선운사 중턱 도솔암이 있는 칠송대라는 암봉의 남쪽벼랑에는 거대한 여래상이 새겨져 있다. 깎아지른 암벽에 새겨져 있는 이 암각 여래상은 양식으로 보아 고려시대 불상인 것 같고 그 양옆에는 멋들어진 소나무 한쌍이 있어 암각 여래상의 멋을 한층 돋구어준다.
이것은 원만한 인상이거나 부드러운 미소를 띤 일반상들과 달리 우람하고 우직한 인상에다 젊고 능력있는 남성의 활기를 나타내고 있다. 지금 여래상 위쪽에 누각 모양의 보호각인 달집이 있었던 것은 사라지고 바위구멍에 부러진 나무가 박혀 있는 모습으로 무너진 흔적만을 남기고 있다·
아무런 예비지식없이 선운사를 찾는다면 추사 김정희가 쓴 백파선사의 비문만은 알고 있었음을 안다. 선운사 입구 울창한 전나무 숲속에 자리잡고 있는 부도밭 가운데에 새까만 비석이 바로 이것이다.
여기에는 "화엄종주 백파 대율사 대기대용지비"라 쓰여있는 그 글씨가 힘차고 굵게 새겨놓아 추사 김정희 필체의 굳센 필력을 실감하게 해 주었다.
대웅전 쪽으로 들어가면 왼쪽에 있는 세칸짜리 스님방은 또다른 여행의 감칠맛을 돋구어 준다. 그 조촐하고 조용한 예술미는 어수선해 보이고 무언가 산만한 생활속에 취해 있는 내게 반성의 현장과 건실된 미적 기준치를 말해 주는듯 했다. 조용한 작은집이라는 뜻에 걸맞는 사랑스런 조촐한 건물이 지금은 관음전으로 개수되어 있었다.
우람한 대방의 창방사이에 빼꼼히 끼여 있는 현판 "정와"마치 매미처럼 매달려 있을 뿐이다.
선운사는 그말 자체다. 불교적인 인상과 스님들의 향취가 가득배어 나온다.
1박 2일의 짧은 여정으로 전주에서 오후 1시에 출발해 느즈막이 선운사에 도착하여 그곳의 기풍과 조용한 정서를 느끼며 이튼날을 준비했던 내게 결코 그곳은 실망을 안겨주지 않았다. 옛시인들의 정취와 현대인의 개성을 비교해 볼 수 있었고 내자신의 고찰과 반성을 더불어 알아볼수 있었던 희망찬 곳이었다. 현대사회에 찌들고 물질에 편협한 여행에 지쳤다면 그런 누군가에게 고창선운사를 다녀오라고 전하고 싶다. 그곳을 떠나오며 내뒤로 손을 흔들어주던 선운사의 애정과 가을녘의 넉넉함의 향취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약력
이 환 배
- 동국대학교 예술대학 동양학과 졸업
- 모악산 숨결전 (96, 기린예원)
- 산들바람전 (96, 기린예원)
- 전북회화전( 96, 전북예술회관)
- 現: 전주예고 강사, 동국회화회, 의식의 새물결회
원 게재: 전북문화 유적을 찾아서 / 회화지 4호(1996) 10쪽 · 원본 PDF 10쪽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