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만큼 보인다"의 교만을 경계하며
[사진] 필자 원도연
나는 문화가 가지는 힘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80년대 길거리에 나붙었던 강렬한 판화들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시대정신을 생각하고 또 무엇인가를 향해 의지를 곧추세우곤 했었다. 그러나 한편에서 문화는 한 시대의 권력을 지켜나가는 마지막 보루로 기능하고 있었다. 문화를 저항의 도구로 파악하는 관점은 또 다른 한편에서 권력을 유지시키는 이데올로기로 파악한다는 의미와도 통하고 있었다. 무릇 문화는 저항과 순응의 동학(東學)을 양면적으로 지니고 있는 것이다.
20세기는 인류사에서 가장 격변의 시기로 기록될 것이다. 적 변동이 20세기를 통해서 이루어졌지만 그것은 곧 역사의 진보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 놀라운 발전의 뒤안에는 인류가 차마 감당하지 못할 파괴와 고통이 자리잡고 있다. 1990년대는 그 진보와 파괴의 실상이 낱낱이 드러난 시대였다. 그 90년대를 통해서 우리가 얻어낸 가장 값진 성과는 어쩌면 그 파괴의 실상에 주목하게 되었다는 사실인지 모른다.
내가 알기로 미술은 한 세대의 변화를 가장 빠르게 주목하는 예술장르이다. 작가 개개인의 치열한 작가정신과 한시대에 대한 통찰이 그 속에 배어있는 것이다. 미술장르가 갖는 개별성이라는 특징은 미술을 언제나 열린 세계로 이끌어주는 기본적인 동력이다. 수없이 많은 작가들이 그들의 느낌으로 세계를 표현하고 삶을 형상화 한다. 그러나 그속에서 미술은 한 시대를 관통하는 보편성을 구현한다.
21세기를 몇해 앞둔 지금의 시대를 표상하는 시대적 담론은 혼돈과 무의식적인 무질서속에서 지켜지는 교묘한 균형이다. 새로운 세기를 앞두고 인류가 겪어온 불안과 혼란은 20세기의 끝을 앞두고 있는 지금의 시기에서도 여과없이 드러난다. 그래서 인류가 살아왔던 그 어떤 세기보다도 문화는 더욱 더 강력하게 그 사회적 역할을 함축하고 있다. 격량의 80년대를 거쳐 90년대에 이르면서 미술은 새롭게 해석되기 시작했다. 문화가 가지는 사회적 역할에 주목하면서 미술을 통해서 한 시대를 이해하려는 노력들이 시도되기 시작했다는 것은 어쩌면 무척 고무적인 변화였다. 미술사를 통해 한 시대를 보고자 하는 시도가 붐을 이루었고, 작품하나하나에 나름대로의 의미가 부여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같은 시대적 요구에 반하면서 미술은 급격하게 어려웠다. 대중들이 미술에 좀더 가까이 가려고 할 때 미술은 그만큼의 거리를 유지하면서 대중들로부터 멀어져갔다. 진솔한 일상과 삶의 단면들이 그려지기 보다는 그것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구조들이 내밀하게 관찰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90년대 들어서서 두드러졌던 문화 영역 전반의 변화는 일종의 과도기적 과제를 안고 있었던 것이다. 미술 역시 부분적으로는 자기모순의 함정속에 빠져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90년대를 풍미했던 '아는 만큼 보인다'의 문화담론은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결과를 낳았다. '아는 만큼 보인다'의 언술구조는 '보여주는'쪽의 책임이 완전하게 뒷받침될 때 비로소 생명력을 갖는다.
그것은 모든 문화장르의 작가들이 가지는 상상력의 범주가 시대적인 보편성을 획득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진솔한 삶의 체험들은 대개 보편적이다. 있을 수 있는일, 어쩌면 우리들 가까운 누군가는 꼭 겪었을 법한 이야기들속에서 사람들은 감동을 얻는다. 자신의 삶과 시대에 대한 각별한 애정과 상상력의 범주속에서 작가들의 치열한 창작정신은 대중적인 공감과 감동을 얻는다.
96년 전북미술계는 미술시장의 장기침체와 대형 국제전이 기묘하게 어울렸던 한해였다. 김홍도전이나 여말선초의 미술전, 전라한국화제전 등과 같은 과거로의 여행이 폭넓은 대중적 지지를 받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세계화 시대를 실감케하는 대형 국제조각전과 도예전들이 시선을 모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전북의 땅이 안고 있는 고민과 고통을 주제로 했던 전시나 기획들은 그다지 눈에 띄지 않았다. 오늘 우리가 처해 있는 현실에 대한 일종의 회피심리가 무언의 약속처럼 작가들을 얽매였던 것은 아닌가. 90년대 한국경제의 거품현상은 미술작품 가격의 문제만이 아니라 작품의 소재나 주제에서도 공통적으로 드러나고 있는지 모른다. 무릇 학문의 세계이든 예술의 세계이든 현실에 대한 소극적인 인식은 언제나 상상력을 제한하는 법이고, 그럴수록 남모르는 부끄러움을 감추기 위해서 난해한 필법들과 사술이 등장하는 법이다.
한시대를 보수와 진보로 나누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것은 그 시대대로 가치있는 잣대가 되었다. 그러나 지금 이 혼돈의 시대속에서 진정한 의미에서 참은 무엇인가, 문화는 그리고 미술은 한 시대의 참다움에 다가서야 한다. 20세기가 남긴 인류의 파괴와 고통속에서 우리는 문화가 가지는 힘을 믿는다. 모든 차이를 넘어서 21세기가 가져올 파괴의 실상을 고발하고 인간정신으로 회귀하는 것이 미술의 역할이다. 그러나 한 가지, 부디 우리처럼 평범한 사람들이 조금만 고민하면 같이 이해할 수 있는 방법으로 말해주기를, 감히 명실상부하게 미술의 문외한인 필자가 간혹 어줍짢은 이야기들을 했다손 치더라도 너그럽게 이해해 주시기를.
원 게재: 문화초대석 / 회화지 4호(1996) 3쪽 · 원본 PDF 3쪽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