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산 기행
[도판] 마이산 / 116×91 / 천에수묵채색 1996.
음향의 조화가 이루어낸 자연
새벽부터, 가을비가 내렸다.
문화원에서 수몰지역 학생들에게 진안 향토 명승 고적지를 답사시켜 주기로 하여 모두들 잔뜩 기대한 탓인지 가뭄의 단비임에도 반갑게 느껴지기 보다 걱정스러움이 앞섰다. 잔뜩 찌뿌린 날에 아이들을 인솔하고 다니는 일이 걱정도 되었지만, 12월, 테마전에 소재로 남을 계획을 가지고 있어 이번 답사에 기대가 컸던 까닭이다.
비가 내림에도 불구하고 우리 일행은 문화원에서 제공한 관광버스를 타고 첫번째 도착지인 북부 마이산을 향하였다. 내가 진안에 교편을 잡고 이곳에서 생활하지도 여덟해를 맞이하였으니 진안의 명물인 마이산은 너무도 친근하고 다정함을 자아내는 곳이 아닐 수 없다. 마이산은 그 생김새가 기이한 만큼 그 이름도 가지가지이다. 마치 먹물을 찍은 붓 끝 같다 하여 문필봉(文筆峯),바위로만 되어 있는 산이라 하여 개골산(皆骨山),하늘로 우뚝 솟아있는 모양 때문에 돛대봉등등 , 또한 계절별로 봄에는 돛대봉, 여름에는 용각봉(龍角峯), 가을에는 마이산, 겨울에는 문필봉이라 부르기도 한다. 시대별로는, 신라시대에는 서다산(西多山), 고려시대에는 용출산(聳出山), 조선시대 태조때에는 속금산(束金山)이라 했다. 오늘의 마이산(馬耳山) 이라는 이름은 태조 이성계가 고려조 장군이었을때, 마이산을 지나다 이산을 두고 시를 지었다 하는데,
"東으로 달리는 天馬 이미 지쳤는가
갈길은 먼데 그만 쓰러지고 말았구나.
연인(涓人)은 몽통만 가져가고 두귀는 남겼는가.
두 봉우리 이루고 하늘로 솟아있네,"
후일에 태종이 이곳에 왔다가 부왕의 이 시를 보고 "馬耳山"이라 명명하였다 한다.
출발한지 20여분이 지나도록 비는 그치지 않고, 빗 줄기는 더욱 굵어져 걱정스러움에 창 밖만 유심히 바라보았다. 아이들은 그래도 모처럼 나들인지라 마냥 즐거운지 요즘 유행하는 최신가요를 크게 틀고서 신나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들의 천진함에 웃음이 나왔다. 이제 버스는 정천면을 지나 읍내로 들어섰다. 진안읍에 다다르면서 그 자태를 들어내는데 이쪽에서 바라다 보는 마이산의 모습은 멋진 감탄사가 나오지 않을 수가 없다.
진안읍에서 남서쪽 약 4Km, 전주에서는 동쪽으로 약40Km되는 지점에 양산맥이 마주칠 듯 접근하는 좁은 평원에서 양산맥과의 사이에 홀로 돌출한 水成산괴로 마치 달걀을 옆으로 놓은 듯한 타원형 모양으로 東으로는 흔히 말귀처럼 우뚝 솟은 생김새가 '馬耳山'이라는 이름에 고개가 끄덕거려진다. 두 봉오리로 된 표고 673m의 바위산이 있고 남쪽으로는 광대봉 609m의 그로테스크(grotesque)한 모습으로 솟아있다. 이 괴기한 모습의 봉우리에 아득한 옛날 두 남녀의 전설을 떠올려보며 그럴싸한 전설임에 웃음을 자아내는 '멋' 이 있는 산이다.
"아득한 옛날 남녀 두 山神이 이 곳에서 자식을 낳고 살았다 하는데 등천할 때에 이르러 男神이 이르기를 우리가 등천하는 모습을 아무도 봐서는 안되니 밤에 떠납시다. 하였으나 女神은 밤에 떠나는 것은 무서우니 새벽에 떠나자고 했다 한다. 그러나 새벽에 떠날즈음 마침 새벽 일찍 물길러 나왔던 동네 아낙이 등천하는 두 산신을 보고 놀라 소리치는 것을 듣고 등천이 틀린 것을 안 남신이 화가나서 "여편네 말을 듣다 이 꼴이 되었구나,"하고 여신으로 부터 두 자식을 빼앗고서 발로 차버린 그 자리에 '바위산'을 이루고 주저 앉았다 한다". 이것은 구전되어 내려온 전설이지만 이 곳에서 내려다 보이는 모습이 동편의 아빠봉에 새끼봉 둘 붙어있고 서편의 엄마봉은 죄스러워서인지 수치심에서 인지 반대편으로 고개를 떨구고 있는 모습이라 전설의 그럴싸함에 딱 드러맞는 夫婦峯 이다.
출발한 버스는 이제 북부광장에 도착 하였다. 차에서 내린 아이들은 비옷을 하나씩 걸쳐입고 첫번째 답사지인 은수사를 향해 계단을 오르기 시작하였다. 새벽부터 내린비에 축축히 젖은 숲속의 계단을 오르는 재미는 가을의 단풍이 절정에 이른 시기인지라 더욱 멋을 돋구어 주었으며 갑자기 떨어진 기온탓에 일찌기 떨어져 뒹구는 울긋불긋한 낙엽을 밟으니 상쾌함과 호젓함에 젖어 무척이나 기분이 좋아졌다. 콧노래가 절로나와 나의 즐거운 마음을 감추지 못하는 사이에 계단을 다 오르고 왼편으로 꺽어져 운수사에 이르렀다. 이곳 저곳 탐색하는 동안 이 곳의 주지스님이 나오시어 이 절에 대한 설명과 함께 마이산이 조선왕국과의 깊은 함수관계에 놓여있음을 알 수 있는 '몽금척도'(夢金尺圖 )를 보여 주시며 조선기 창업때의 영산으로 대접받았음을 은근히 자랑하시며 이곳 산의 영험함을 말씀하는 스님의 얼굴에서 조선의 건국 태조인 '이성계 '의 얼굴을 떠올려 보았다. 몽금척도에 담긴 뜻을 되새기며 다음 목적지인 탑사를 향해 500m정도 걸었을까? 마이산의 장관인 탑사의 경관이 펼쳐진다.
자연이 만든 최고의 걸작이 마이산이라 한다면, 인간이 만든 다음의 걸작은 역시 마이산 탑군 (塔群) 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거의 90°로 직립한 엄마봉의 남쪽바로 아래에 펼쳐져 있는 탑의 무리는 자연석을 차곡차곡 쌓아 고드름을 세워 놓은 양 날카롭고 정교하며 위엄있게 조화를 이루며 배열되어 있다.
특히 마이산이 부부봉 이라면 이 천지탑이라 불리는 탑모양 또한 부부의 탑인 쌍탑을 이루고 있어 우연인지, 의도적인지는 알수 없지만 기실 음양오행의 조화로 이루어진 명산이요 명탑이 아닐 수 없다.
우뚝 솟은 산아래 잘 빚어 놓은듯한 탑의 무리를 뒤로하고 내려오며 새삼 그 모습에서 지나쳐만 왔던 이웃과 깊은 얘기를 나눈것만 같은 다정함과 따뜻함을 느꼈다. 이러한 아쉬움을 뒤로하고 우리 일행과 함께 부부시비 광장을 거쳐 금당사와 고금당 나옹암, 태자굴과 이산묘를 돌아본 뒤 다음 유적지를 향해 차에 올랐다.
어느덧 시간은 정오를 지나고 있었고 짖궂게 내리던 비도 그쳐 있었다.
진안이라는 곳에 오랜시간을 보내는 동안 타지에서 친•인척이 방문할때면 으례 이곳에 모시고 오곤 하였지만, 그저 이곳이 말귀같다하여 '마이산' 이라부르며 이 탑은 이갑용이라는 분이 이곳에서 도를 닦으며 쌓아올린 신비한 탑사라고 조금은 아는것처럼 나의 귀동냥의 얄팍한 지식을 전하곤 하였다. 그리곤 타포니현상이 많은 그 괴산과 무리지어 놓여있는 탑사를 내려오며 돌을 하나 집어 무심코 올려 놓곤 하였던 나의 모습을 기억하니 괜시리 양쪽 귀가 불그레지는 것만 같았다.
이번 답사를 통해 이곳, 명소들의 이해를 다시 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음에 진안문화원에 다시한번 깊이 감사드린다.
이 글을 읽는 이에게 마이산이 자연이 빚어낸 걸작품인 명산으로서의 가치와 이해를 높힐 수 있었으면 한다.
원 게재: 전북문화 유적을 찾아서 / 회화지 4호(1996) 9쪽 · 원본 PDF 9쪽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