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순
[도판] (종각 그림 / 캡션 없음)
1.
어린 시절, 가위 눌리던 꿈이 지금도 생생히 기억된다. 나머지 밤을 꼬박 새우고 이불로 눈물을 훔치며 눈이 다시 감길까봐 무서워 진저리치던 그 어린 밤들의 꿈들이 생생하다.
내 어린 시절 서울에도 땅이 땅이었던 시절에 조그마한 웅덩이에 물이 조금 고였을 정도의 웅덩이에 내 던져저 세숫대야로 꾹꾹 누군가 나를 짓누르던 꿈.
가장 크게 소리를 쳐도 그러나 전혀 소리가 나지 않았던 악몽.
다 죽기 바로 전이었을가? 깨어나던 밤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이불속에서 새벽을 기다려 일어난 나는 하루종일 어데고 갈 수 없었다. 온통 무서움에 겁먹고 집 밖을 한번도 나가지 못했다. 학교도 가기전 훨씬 전의 일이었다.
2.
어린시절 나에게는 참 많은 일들이, 어쩔수 없는 일들이, 내 힘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 가정 안팎으로 많이 일어났다. 난 쉽게 체념하는 아이로 자라났던 것 같다.
그래서 더더욱 나는 종교적인 아이로 변해가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곁에서 "니가 순이냐?" 하시던 외할머니가 돌아가셨고,(난 그때 돌아가셨다라는 단어를 한참이나 되뇌었다.) 그 큰 흙무덤에 절을 하였었다. 무언가 알 수 없는 일들이 이해되지 않는 일들이 어떤 알 수 없는 커다란 힘에 의해 움직여지나 보다 하고 생각하며 스스로 하나하나에 신을 만들어 가기도 하였다. 난 3과 9를 가장 좋아했었는데 그 숫자들에게도 신이 있다고 생각하며 셈을 풀기도 하였다.....
삶과 죽음의 저 뒤편에 존재한다고 생각되던 그 큰 힘
3.
나는 기독인이다. 내 주변의 많은 기독인들로 인해 나는 많은 시간을 기독교적 사상과 접하게 된다.
접할수록 강하게 느껴지는 힘. 세상에서 가장 큰 힘. 세상을 움직이는 힘. 나는 사랑의 힘이라 믿는다.
성경 66권이 사랑이라는 사실이 내겐 감격이 된다.
사랑의 역사가 치유의 역사라고 나는 믿는다.
소외가 말끔히 해소되는 절대적인 평안... 나는 늘 감사하며 지낸다.
4.
3번 예수를 모른다고 부인했던 베드로의 양심을 깨우쳐주던 새벽 닭의 울음소리가 여기 이 종의 의미이다. 먼 옛날 시계가 흔치 않았던 시절 예배당의 종소리는 시계이상의 의미를 각 성도들에게 전달하였었다. 시간을 채근하기 보다는 마음을 채근하여 주었으며 심령을 가다듬으며 발걸음을 재촉하였으라. 예수의 사랑의 절대성을 일깨우며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던 말씀들을 들려주기 원하며 달려가고 기다리던 마음들을 일깨워주던 종소리, 예수님의 목소리이다.
5.
1865년에 태어난 전 킨(전위렴)목사는 워싱턴 대학을 거쳐 유니온 신학교를 졸업하고 선교사의 꿈을 한국에서 이룬다. 1892년 서울, 군산, 전주 지방에서 선교하다가 1904년 10월부터 3년간 서문교회 담임 목사로 시무하시던 중 과로로 별세하여 그의 높은 희생적 선교정신은 호남 선교의 귀감이 된다. 이에 1908년 남편의 선교활동을 기념하여 부인인 메리 레이번 여사가 미국에서 제작된 종을 군산항을 통해 들어와 위 종각에 헌납하게 된다.
이 전킨 선교사 기념 종은 직경이 약 90cm나 되는 서양식의 큰 종으로 당시 종이 울리면 그 맑은 소리가 인근 20여리까지 울려 퍼졌다고 한다. 그러나 이 종은 1944년 일제 말기에 군수물자 조달을 위해 일본 경찰이 빼앗아가는 비극을 맞는다. 현재 서문교회에 비치된 종은 1945년 해방후 국내에서 제작된 것으로 다만 종각만은 처음 모습 그대로이며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다.
6.
나는 이 그림에서 의도적으로 종을 그리지 않았다. 일제 수탈의 한 현장을 그대로 보이고 싶어서였다. 그러나 굳굳한 종각은 힘있게 더욱 힘을 주어 그려보고 싶었다. 전주의 대명사격인 모악산을 배경으로 종각밑에 또다시 새순돋듯 피어나는 풀잎들을 그리며, 반달을 벗삼은 종잃은 종각을 의연히 그려보았다.
종이 없어도 깨친 자에게는, 종소리는 분명 울린다.
귀에 울리지 않아도 깨친 자에게는, 양심에 울린다.
울림을 간직하면 존재의 유무는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7.
문화재에 대한 보존의 눈은 모두가 다른가 보다.
비어있는 종각은 우리의 비극의 역사에 대한 그대로의 모습이다.
일제를 쉽게 잊혀지게 만드는 결과를 낳는다.
비극은 비극대로 되씹어 깨어나야 한다고 믿어지는데, 비극의 가치는 더 큰 도전을 생성시키는데.....
필자는 조금은 씁쓸하다.
침묵은 더 큰 소리라 하던데 말이다.
원 게재: 전북문화 유적을 찾아서 / 회화지 4호(1996) 14쪽 · 원본 PDF 14쪽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