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와 해바라기
우리 집에는 <바다>와 <해바라기>가 있다.
그 <바다>는 지금까지 보았던 어떤 바다보다도 더 파랗고 넓고 아름답다.
아침에 일어나면 나는무심코 <바다>를 바라본다.
수평선을 헤집고 이제 마악 떠오르려는 여명의 바다를.
그 동그라미 속으로 향하는 갈매기의 힘찬 날개짓이 전해져온다. 여기저기에 깃털들이 흩뿌려지고 그 중의 하나는 내 어깨에 떨어져 속삭인다.
'안일하지 말고 비상하라.'
그리고 하루가 시작된다.
남편의 출근, 아이 등교, 설겆이, 청소······
잡다한 일상의 수고로움에서 자유로워 지는 시각, 이번엔 바다가 나를 내려다 본다.
고요인 듯 풍랑인 듯, 가로진 켜켜의 하얀 불규칙 선상에 몇 마리의 오리들이 부대끼듯 기도하듯,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아무렇게나 파낸 듯한 음각 속에 우주가 있다. 번민, 욕심, 애증, 절망들 ······
물결에 밀리는 대로 몸을 맡기고 초연할 수만 있다면 나도 일상의 무게를 다 벗어던지고 바다에 푹 빠져들어 저렇듯 가볍게 떠있고 싶고, 영화 <그랑블루>의 주인공이 되어 누군가와 바닷속에 마주 앉아 캔맥주 한잔 나눠도 좋으리라.
<바다> 가 다시 일몰 채비에 분주해지면 나는 그 옆에 꽂혀있는 고호의 <해바라기>를 본다.
이 추운 겨울에도, 밤에도 시들지도 지지도 않고 살아서 움직일 것만 같다. 노랑에서 갈색으로 이어지는 중간 중간에 만나는 색들을 보면 나는 추워진다.
카타르시스란 이런 것일까?
커피를 한잔 마시려다 보니 그색과 향기가 서로 무척 닮아 있음을 느낀다.
새삼스럽게 안복(眼福)에 소유(所有)까지 갖추었으니 세상의 어떤 갑부가 부러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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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라곤 초등학교 시절 다가공원에서 직인 찍힌 도화지에 그린 풍경화가 전부인 내가 이런 글을 쓴다는 것이 열적고, 워낙 염치없는 일인 줄은 알지만 그나마 나같은 왕초보(?)를 위한 지면이라니 다행스럽다.
내가 처음 화랑 나들이를 한것은 나에게 이 글을 써 보라고 권해 온 이와 함께였다.
엄마 치마폭에 얼굴을 가리고 한눈으로만 조심스레 쳐다보는 어린애의 호기심과 경이, 두려움이 아마도 그러했으리라.
<흙과 도자기의 만남>이라는 친근한 주제로 화랑은 나를 맞이했고, 다기(茶器)와 몇 점의 생활자기도 구입할 수 있었다.
물론 화랑에 대한 선입관이나 이질감, 서먹서먹함도 그 곳의 쓰레기통에 보관하고서 말이다. 그 이가 나를 일깨워주지 않았다면 나에게 그림이란 영원한 <먼 그대> 내지는 <짝사랑> 이었을 것이고, 화랑이란 그야말로 영원한 <그집앞> 이 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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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바다>와 <해바라기>와 함께 산다.
원 게재: 전시장을 찾아서 / 회화지 4호(1996) 17쪽 · 원본 PDF 17쪽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