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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리뷰

정미현전

이철량

1996.11.27 ▶12.3 (전주 얼 화랑)

[도판] 꿈 / 천에 수묵채색 1996.

일상에서 얻어낸 감상언어

화가는 꿈을 꾸는 사람이다. 그리고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누구나 꿈을 꾸면서 살아간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래에 대한 어떤 희망의 꿈을 갖는다. 편안한 삶과 행복 그리고 영원에 대해서 막연한 기대와 설계를 통해 꿈을 만든다. 이러한 꿈을 통해서 어쩌면 인간은 고독한 삶을 잠시 잊어 버리게 되는 지도 모른다. 그러나 화가는 매일 매일의 꿈을 꿈으로만 남겨 두지 않는다. 끝없이 꿈을 화면에 형상화 시킨다. 그렇게 함으로서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독특한 꿈을 전달하고 일상에 젖어 있는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흔들어 놓는다. 정미현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정미현은 그동안 주변의 일상들을 통해 자신의 세계를 투영해 왔었다. 그의 일상들은 아침에 일어나 거울을 통해 들여다 보는 자신의 얼굴에서 부터 가족들 그리고 출퇴근 길에 무심코 지나칠 수 없었던 산봉우리와 나무, 숲까지 모든 것이었다. 이러한 평범한 일상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이 그 자신에게는 거대한 가치로 혹은 은밀하고도 달콤한 꿈의 세계로 엮어져 있었다. 그의 화면에 등장했던 일상의 모습들은 하나같이 우리에게도 다가왔다. 사라져간 보편적인 모습이었다. 그러나 이번 정미현의 작업에서는 한층 더 두드러진 독자적 체험을 전개하고 있다. 정미현의 작품을 들여다 보면서 우리는 마치 그의 가슴속에 깊숙히 묻어 두었던 숨겨진 일기장을 꺼내 보는 즐거움을 갖는다. 그것은 그의 작품이 생활에서 얻어낸 여러가지 삶의 편리를 움켜쥐고 있는데서 그렇다. 작가의 일상적 생활에서 얻어낸 작품의 테마들은 한결같이 굵고 힘있는 먹선으로 이루어진 여러 형상들이 먹의 선염과 담채가 어우러지는 기묘한 감각속에서 은근하고도 뚜렷하게 보는 사람의 일상의 관념을 일깨운다. 그의 주제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독특한 삶의 체험으로 얻어낸 일기들이지만 사실은 오늘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이다. 더욱이 그와같이 가정을 꾸리는 주부이며, 어머니 그리고 사회에서는 교사로서의 분주한 삶을 살아가는 뭇 여성들의 웅변이기도 하다.

정미현은 그의 인생에서 또하나의 힘든 고개를 넘고 있는 듯이 보인다. 그리고 이 고개는 많은 여성작가들이 넘지 못한 고개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는 그의 작품을 통해서 그가 얼마나 훌륭하게 30대 중반에 들어서는 주부작가의 고통과 번민을 극복하고 있는지를 바라보게 된다. 그는 오히려 이러한 고통 그 자체를 작품의 테마로 끌어내는 용기와 노력을 보여 주고 있다. 사실 이것은 그가 한 작가로서 자신을 엮어내는 튼실한 과정에 들어서고 있음을 뜻한다.

이번에 보여지는 그의 작품들이 "꿈" "꿈을 꾸는 여자"등의 표제를 달고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그의 작업세계가 이전의 모습과 상당히 달라져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가 자신의 내면세계로 깊숙히 천작해 들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다. 어느덧 30대 중반으로 내려가는 인생의 성숙함이라고 보아야 할 듯하다. 그는 대학 졸업후 10여년간 대부분의 여성작가들과는 다르게 꾸준한 작업과정을 보여 주었다. 그의 남다른 작업에 대한 열정은 이제 또 한번의 고독한 독백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느껴진다. 그사이 그는 가정을 가진 주부로서 한 아이의 어머니로서 혹은 교사로서의 다양한 삶을 엮어내며 작업해 왔다. 이러한 그간의 그의 삶은 어쩌면 처절한 투쟁의 과정이었을지도 모른다. 그의 작품들을 읽어 보면서 편안함에서 오는 나른한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그는 무한히 현실을 일탈하고 싶은 그의 또다른 꿈의 세계를, 현실을 비판적으로 반추하는 방법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제 그는 어느덧 삶이 결코 편안하고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고뇌하고 극복해야 하는 피곤한 모습이라는 것을 들여다 보고 있는 나이에 와 있다는 자신을 깨닫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삶의 형태는 그의 개인적인 체험의 과정이면서 또한 우리 모든 이의 인생의 역정이라는 것을 일깨우고 있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제 그는 또하나의 마음의 눈을 활짝 열고 있다. 그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다. 그의 작품속에 무수히 들어나는 눈동자를 통해서 그리고 작품표제에서 볼 수 있는 듯이 "시선"을 통해서 우리는 그가 어떤 동경과 희망 그리고 불확실한 인생에 대해 냉철한 자신의 가슴을 들여다 보는 눈이라는 것을 알수 있다. 시선은 어느 곳으로 인가 들여다 보는 것을 뜻한다. 그의 작품을 들여다 보는 우리 모두의 가슴속을 향해 존재하는 우리 자신의 눈임을 일깨운다.

이번 그의 작품에서 보여지는 변화는 이전의 작품에서 보다 현상이 두드러지고 또한 메세지가 풍부해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마치 생활일기를 쓰고 있는 듯이 보여지는 이번 작품들이 형상의 표출이 뚜렷해지고 있는 것은 어느면에서 작품의 주제가 더욱 선명해 지고 있다는 반증이리라. 그러면서 그가 천위에서 유연하게 번져가는 먹의 선염을 통해 화면을 낭만적이며 어떤 독특한 환상의 세계를 일구어 내고 있는데 이는 그가 일상을 통해 꿈꾸고 있는 어떤 내밀한 자신의 세계로 우리를 유도하고 있다.

그의 화면은 줄곧 천과 먹의 만남을 통해 이루어져 왔었다. 우리는 전통적으로 먹은 화선지에서만 최선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믿어 왔다. 그러나 정미현은 대담하게 천을 선택하고 수묵을 통해 그의 삶을 기록하는데 성공해 왔다. 그가 천을 선택하고 또 먹을 버리지 않았던 것은 그 나름의 전통에 대한 확신과 믿음에서가 아닌가 한다. 그리고 천과 수묵에 대한 꾸준한 방법적 천착을 통해 본래 수묵이 갖고 있는 독특한 정신세계를 잃지 않고 있는 점에서 그가 전통에 대해 남다른 이해를 갖고 있음을 보여 주었다. 그의 화면에서 나타나고 있는 수묵은 선염이 주가 되고 있다. 자유자재로 운용되고 있는 선염의 화려한 번짐속에 형상은 자연스럽게 녹아 있는 모습이다. 어떻든 정미현의 그림은 이제 그동안 보는 그림에서 읽어내야 하는 그림으로 변해 왔다. 다시 말하면 그의 작품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그리고 이웃사람들의 삶에 대해 반추해야 하는 요구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정미현은 어쩌면 이점에 대해서 성공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를테면 그는 그의 순수한 개인적 체험을 통해서 오늘을 살아가는 모두에게 삶을 되새기게 하는 기회를 주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다시한번 깊숙히 묻어 버렸던 일상속의 자신을 주어 올리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이 철 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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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 1

원 게재: 전시리뷰 / 회화지 4호(1996) 6쪽 · 원본 PDF 6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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