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쑥 솟은 영험함이여 !
[도판] 穎山(영산) / 천에 수묵채색 / 1998
수업시간, 창문안으로 파고드는 한 낮의 가을볕은 깊고 그윽하다. 볕이 쬐이는 창쪽으로 등을 돌리면 귓볼 뒤로 따스한 볕이 얼굴에 드리워진다. 온몸이 나른해진다. 창으로 비추이는 깊은 가을볕에 가슴은 여지없이 뛴다. 산에 가고프다. 산으로 가고프다. 산속에 들어가 흙을 밟고 서서 나무냄새, 구름냄새, 물냄새를 맡으며 걸어가면, 어느새 성급한 낙엽이 한켠에 몰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면 더욱 신바람이 난다. 모든 것이 아름다워지고 나는 영화 속의 주인공이 된 듯 세상 한 가운데 서서 “인생은 요럴때 꿀맛이야”라고 감탄해 마지 않겠지.
2년전 이맘때쯤 진안 문화원에서 마이산을 다녀온 적이 있었다. 아침부터 내린 비는 산행하기에 그만이었다. 물기를 적당히 먹은 자연의 빛은 그야말로 생동감 넘치는 감동이었다. 오후엔 적당히 비가 개이고 무르익은 가을의 단풍 향연은 우리의 일행들을 사로잡기에 충분하였다. 마이산은 참으로 기이하게 생긴 명산이다. 모양은 말의 귀모양처럼 두개가 나란히 불쑥 솟아 있다. 그 모양을 놓고 많은 얘기들이 사람들 사이에 회자되지만 그 명산은 지층의 융기 현상으로 먼 역사 저편에 잠들어 있다가, 이 세상의 빛에 이끌려 솟아오른 강인한 힘을 소유한 명산이 아닌가 싶다.
마이산에 대한 자세한 소개는 ‘96년 ‘전북의 문화유산, 테마전에 실었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새삼 마이산의 여러 설명은 하지 않으려 한다.
나에게 마이산이 자리한 진안은 고향과도 같은 곳이며 깊은 애정과 그리움이 쌓여 있는 곳이다. 언제였던가. 아마 2월 대보름 달을 보기 위해 마이산 언덕에 올라가 커다란 보름달을 가슴에 안았던 그 밤은 내내 신선한 충격으로 잠을 이룰수가 없었다. 지금 생각해도 내 평생 그렇게 크고 선명한 달을 가깝게 만나본 기억이 없다. 지금도 그 달빛은 내게 크고 아름다움으로 남아있다.
정천에서 진안 여고가 있는 쪽으로 내려오다 보면 마이산의 두 봉우리가 힘차게 솟아 보이는데 그 언덕 마루에서 보는 마이산의 자태가 가장 빼어나고 아름다운 모습인 듯 싶다.
평평한 대지 위에 불쑥 솟아오른 마이산 봉우리는 기이하지 않을 수 없고. 마이산의 음푹한 기슭에 쌓아 올려진 돌탑은 영험함 마저 갖게 한다. 어떤 이치로보나 그처럼 크고 높은 돌탑이 천재지변에도 무너지지 않음은 마이산이 지닌 영험함을 온전히 보여주는 듯 하다.
전북의 산하는 모두 아름답고 진기하지만 마이산은 조형적인 기이함과 역사적인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특별한 영험함을 지닌 전북의 보물로 자리매김 하기에 충분하다.
이 가을이 가기전에 다시한번 마이산을 찾아야겠다. 나의 그리움을 묻어놓고 온 진안의 구석구석을 돌아보며 겨울을 맞이하면 조금 더 따뜻한 가슴을 지닐 수 있을것 같다.
원 게재: 테마전 - 나의 작업 노트 / 회화지 6호(1998) 25쪽 · 원본 PDF 27쪽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