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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노트

한국화와 나의 생각

이승훈

[도판] 백제기행 中에서 / 지본채묵 / 1998

현재 한국에는 한국화의 전통성이 부족하다고 본다. 한마디로 지필묵에 의존하는 회화정신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회화의 현대성, 세계성, 창의성, 독창성 등에 이유를 두고 양화의 재료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그 회화 이론까지도 받아들이는 경향이 없지 않다. 그것에 영향을 주는 것은 또 있다. 미술 교육 과정이 그렇고, 입시제도가 그렇다. 또한 공모전에서 더욱 그런 횡포를 자행한다고 보여진다.

한국화 전통은 무엇인가? 한국 회화사(繪畵史) 속에서 한국인에 의해 회화적으로 표현되었거나 이론화된 회화정신을 말한다.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독자적인 회화나 그 이론과 다른 문화에서 유입된 회화작품이나 그 이론에 대해 비판적으로 논의된 것까지 포함한다. 따라서 양단 모두 회화의 내용을 형성할 수 있다. 안휘준 교수의 '한국 회화의 전통'이라는 논문에서 "획일적이거나 단일적이 아니다. 즉, 전통은 복합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이 때문에 전통을 어느 한 각도로만 보는 것은 위험하다."라고 했다.그리고 예술창조의 건전한 발전은 선조로부터 정신적 유산을 전하는 힘이 유지되며, 국가의 미술에 있어서는 그 고유한 전통이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

고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한국 전통에 배려를 해준 것은 김종태 교수의 논문 동양 미학사상에서 보듯이 중국 교육 철학인 육예정신과 중용정신 도교의 자연주의 정신 그리고 불교의 초자연주의정신, 시서화 일체사상으로 볼 수 있다. "육예는 국민 교육을 실행하는 바탕이 되었음으로 권계적인 내용이 많이 숨어 있다.

육예 중에서 악(樂)은 인간의 모든 즐거움과 아름다움을 말한다. 아름다움이란 바로 예술이요, 눈으로 보아서 즐거움, 눈으로 읽고 가슴을 기쁘게 하는 즐거움 등이 있다."라고 하였다. 중국 춘추전국시대 이후부터 고사(故事) 인물도가 성행하였다. 권선징악의 내용이었다. 낙랑고분 채협총에서 출토된 효자 전도가 있다. 이 인물도는 역대의 효자충신 열녀 악인 등을 그렸다.

중용정신의 중용은 공자가 제창한 인간의 예의 범절의 행동 반경을 말한 것이다. 간단히 말하면 윗사람에게 너무 예의가 지나치면 간신이 되고 너무나 사양하면 거만하다는 소리를 듣게 된다. 그러므로 적당히 행동하게 하는데 그게 중용이라는 것이다. 그림에서도 너무나 사실적이면 포스터식 그림이요, 작가의 감정과 이성에 치우치면 난해하여 진다. 그림이라는 것은 그림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그림을 그리고 난 후에 나타난 본바탕이 중요하다는 것이다.이것이 회사후소(繪事後素)라고 일컬어진다. 질이 문보다 앞서면 야해지고 문이 질보다 앞서면 겉치레가 된다. 문과 질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이는 논어 옹야(雍也)편에 나오는 말이다. 여기서 질(質)은 그림에서 질을 말하고 문(文)은 문체를 말한다. 회화는 색채의 화려함이 아니고 서로 조화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것이 중용의 미라고 볼수 있다.자연주의 정신이 있다. 한나라 때 회남자를 쓴 유향은 무위자연에 대하여 말하기를 '무위란 것은 적적하고 고요하며 무성으로 아무리 움직여도 움직이지 않는 것이며 아무리 끌어도 오지 않고 밀어도 가지 않는 것'이라고 말하였다. 인간의 힘을 가하여서는 안되며 자연히 되는 것을 의미한다. 석도는 석도화론 일획론에서 "일획이란 만획의 근본이며 만가지 형상의 근원이 된다"라고 했다. 이는 작품에 임하여 먼저 사물의 가장 기본적인 본질을 파악하여야 하는데 이 기본적인 본질이 바로 노자가 말하는 일획(一)이라는 것이다. 이는 미의 감정을 파악하여 많은 것을 알면 결국 자기의 표현이 된다. 장자는 대종사편에서 "인간은 무심히 왔다가 무심히 갈 뿐이다. 주어진 삶을 즐기다가 죽을 때가 되면 일체를 망각하고 자연에 되돌아간다."라고 하였다. 참다운 화가란 작가 생활에 성심껏 다하고 회화에 대한 애착을 버리고 그 속에서 영(靈)을 취한다고 했다. 문학가 도연명 역시 귀거래사(歸去來辭) 도화원기를 출현시켰다. 이 사상에 의해 죽림칠현 같은 사람이 죽림에 숨어서 평생을 보내기도 했다. 장언원도 자연을 상품 중에 상품으로 보았고, 왕유는 "화도 중에는 수묵이 가장 으뜸인데 그것은 자연의 성격을 표현하여 조화의 공을 이루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선화정신은 불교의 초자연주의 정신을 말한다. 선화(禪畵)란 최고 경지에 있는 추상성을 말한다. 당의 손과정(648~733)은 서예를 평할 때 "상(相)을 흐르는 파도에 띄워서 장차 느리고 빠른 모양을 연주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선이란 마음의 뿌리요 마음은 천지간에 널려 있는 모든 사물마다 나타난 것이며 마음으로 인하여 사물마다의 형태를 깨달아 형을 창조하는 것이니 선화란 바로 그렇게 그려진 그림이다라고 할 수 있다. 고대 고승에서 작품을 찾아 볼수 있고 송대 목계, 명말 팔대산인, 석도, 근래의 오창석, 제백석, 조선 김명국, 김홍도 등은 그 원조를 선화법에 두고 있다. 현대 한국화의 발상도 바로 이 곳에서 발원한다.

시·서·화 일체 사상이 있다. 이는 양화와 가장 다른 점이다. 한국화 속에 여백이 많은 것도 예술 감정이 다르기 때문이다.

나의 작업은 한국화의 전통과 이질화에 부채질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 문화, 지방의 문화에 관심과 그 아름다움을 표출하기에는 새로운 형식이 필요하다. 그것이 전통과 거리를 두고 있지 않은가 생각도 했다. 이것이 올바른 것이다라는 해답은 없다. 있다면 그것이 하나의 구속일 따름이다. 다만 정신성에서 서구의 회화 체계에 깊숙이 빠지지 않고 우리의 혼백이 살아 있으면 되지 않겠는가 생각해 본다. 너무도 지리하게 한국화의 전통을 말해봤다. 또 하나의 전통을 향해 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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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게재: 작가노트 / 회화지 6호(1998) 8–9쪽 · 원본 PDF 10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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