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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의 젊은 작가들에게

감성 표상의 미학

조각가 황순례

사람은 누구나 감성을 가진 존재로 태어나서 살아간다. 가을철 누런 들녘 벼 이삭의 잔잔한 일렁임을 보고 풍요의 포만감과 더불어 결실의 고마움을 새삼 느끼는가 하면, 붉은 덩어리가 되어서 서쪽 산허리에 걸쳐져 있는 해를 보면서 벅찬 감동으로 가슴이 메어져 오는 것 같은 감상에 빠지기도 한다. 또 바다 냄새가 물씬 한 고즈넉한 찻집에 앉아 먼 바닷가 파도 소리, 갈매기 소리를 들으면서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는 아련한 방랑의 향수를 맛보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산책길 바람결에 묻어온 들꽃의 소담한 향기나 무심결에 지나치는 사람에게서 배여나온 땀내 젖은 채취가 추억 속의 인물이나 일들을 연상시킴으로서 우리의 마음속에 회상의 감상이나 새로운 감정을 불러 일으키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일상 생활속에서 만지거나 접촉하면서 느끼는 부드럽다, 딱딱하다, 또는 차다, 뜨겁다. 등 촉감과 맛으로 느끼는 달다, 쓰다, 짜다, 시다 등 미각의 감각들도 의식, 잠재의식 또는 무의식 속의 대상에 대한 연상작용과 감정을 유발한다는 것을 누구나 경험한다.

지각되는 모든 대상에 대해서 이와 같이 느끼는 바 대로의 변화무상한 다양한 감정을 갖는다는 것이야말로 바로 생명 그 자체의 가장 확실한 증거일 뿐만 아니라, 인간이 누리는 가장 큰 특권이며 축복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가 인간의 본질적 속성으로서의 감성이 상황조건과 사람에 따라서 각양각색의 감흥과 감정으로 각색되어서 삶 속에 현재화되어 나타나는 현상 속에 우리가 산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즉 감성이라는 질료에 부가되어지는 사람마다의 주관적 의미와 가치의 촉매작용이 어떻게 이루어지느냐에 따라서 때로는 아름답게도, 추하게도, 또는 기쁘게도, 슬프게도, 또 즐겁게도, 불쾌하게도, 그리고 또 때로는 행복하게도, 불행하게도 느껴지는 것이다.

현실의 삶 속에서 느끼는 이러한 감정들을 추스리고 다듬어서 체계적으로 정리해 놓은 작업이 바로 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행위는 말과 글, 소리, 동작, 그림, 조형 등의 다양한 표현기법을 통해서 때로는 단일양식, 또는 복합적 혼합방식을 활용하여 이루어진다. 이 때 자기의 소질과 적성에 맞는다고 생각되는 영역에서 능력을 키우고 기법을 익히며 다듬으면서 자기 나름의 수행방법을 습득하여 창작의 일을 계속한다면, 그 사람은 이미 예술가의 길에 들어선 것이라 할 수 있겠다.

(1) 예술의 특정분야를 전공하고자 하는 사람은 우선 무엇보다도 먼저 자기가 전공하고자 하는 분야에 관한 예술적 특성과 기법은 물론이고 창작 모티브의 전개과정에 대한 미학적 기초를 확실하게 다져 둘 필요가 있다. 예컨데, 조각예술의 경우, 점토를 다루고 정리하여 완성하는 과정을 익혀야 하고, 나무의 질감과 돌의 강도와 결을 알아야 한다. 또 철재의 다양한 특성도 익혀서 거기에 맞는 각기 다른 공구의 사용법도 배워야 한다. 이러한 것들에 대한 학습은 말이나 책보다는 수없이 반복되는 실제경험을 통해서만 효과적으로 이루어낼 수 있는 것들이다.

(2) 다른 예술영역의 특성과 기법, 그리고 영역들간의 상호 연계성 등도 숙지하여 자기 예술 세계와의 비교의 맥락에서 그들의 장·단점을 올바로 평가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도록 노력해야 한다. 인간 감성의 발현이라는 바탕을 공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각 예술영역들은 미학적 관점과 표현기법의 차이에 의해서 제각기 다른 감성 표상과 표현양식을 가질 뿐만 아니라, 그것들이 미학적 감성의 해석상 차이와 체계화에 따라서 끊임없이 변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차이와 변화를 이해할 수 있는 더 넓고 균형잡힌 원숙한 예술적 안목을 갖추도록 꾸준하게 힘쓸 것을 권고하고 싶다.

(3) 인간의 미적 감각이나 감지능력은 우열의 척도로 차별화할 수 없는 상대성의 특질을 갖는 가치로서 평가되어야 한다. 작품의 가치는 소재 또는 재료의 가치, 규모의 크기나 표현기법의 우열이 아니라. 인간 감성의 질료가 예술가의 주관적 의미 및 가치에 촉매되어서 어떻게 발현되느냐, 즉 얼마나 순수하게 잘 승화되어 나타나느냐에 의해서 결정되기 때문이다. 문화의 상대성과 개성의 존중이라는 토양 위에서만 예술의 꽃은 제대로 피고, 또 피어야 한다고 믿고 싶다.

객지 생활중 규칙적 산책의 회고담 하나, 다 허물어져 가고 있는 산 위 고성을 찾아가는 산책 길 옆에 있는 황토와 잡석으로 쌓아올린 담의 틈새에 피어난 보잘 것 없는 풀 꽃에서 발견한 경이 속의 아름다움에 감격했던 일을 나는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때의 그 감격은 나로 하여금 남의 다른 예술세계에만 매료되어 한없이 방황하던 나자신을 자성하는 계기가 되었고, 지금은 나의 생활과 세계 속에서 자주 가슴 뿌듯한 기쁨과 행복을 느끼는 평온을 찾게 되었다. 가장 가까이 있는 친근하고 익숙한 대상을 가장 편안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만 있다면, 거기에서 배여나오는 자연스런 행복감이 바로 예술의 경지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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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게재: 이 땅의 젊은 작가들에게 / 회화지 6호(1998) 3–4쪽 · 원본 PDF 5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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