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귀순 개인전을 보며
-멋진 작가인생의 꿈을꾸며 만난 15년-
[도판] 동선,동판 / 1998
장귀순 작가와 나의 인연은 1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84년 어느 봄날, 장과 난 학과 야외스케치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송광사로 가는 버스편에서 나란히 앉았었는데 그것이 첫번째 만남이었던 것 같다. 그땐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대학 초년생임에도 불구하고 작업에 대한 기대와 열정을 가지고 있음을 서로 직감할 수 있었고 서로에게 미술에 대한 열정을 공유한데서 오는 강한 이끌림이 있었던 듯 싶다.
그후 몇달, 끊임없는 도전과 갈구의 열병을 앓고 있었던 장은 학교를 휴학했고, 다시 공부를 시작했던 것 같다. 그렇게 그는 1년이라는 시간을 잠적하고 말았다. 다음해 장은 복학을 하였고 우리의 만남은 다시 시작되었다. 장과 난 삶에 있어 남다른 세계를 추구하며 열정적인 토론 속에서 마냥 즐거웠고 서로의 신뢰를 확인하곤 하였다.
장과 난 개인 작업실을 가지기를 항상 갈망했었고 시간이 나는대로 변두리의 허름한 건물들을 찾아다니곤 하였다. 하지만 싼 값의 작업실을 구하기는 쉽지 않았었다. 왠만큼 허름하고 값싼 건물에는 어김없이 그림쟁이의 보금자리가 들어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화실 풍경과는 많이 달랐던 때였다. 그렇게 해서 얻은 옥상 건물 위의 10평 남짓되는 장의 화실 풍경은 진지하고 정겨웠다.
· · · 5년
졸업을 하고 집 근처에서 작업을 하던 그는 독일이라는 먼 이국 땅으로 유학의 길에 오른다. 그의 끝없는 도전과 정열은 또 한번의 헤어짐을 낳고, 장과의 우정을 그리움과 편지로 달래야만 하는 세월이었다.
· · · 또다시 5년
어느날, “”따르릉~”, “여보세요”, “나 장귀순”, “지금 어디야!”, “음- 전주”, “돌아온거야?”, “응”
몇년전 너무도 반가웠던 한통의 전화가 떠오른다. 왜 그리도 기쁘고 뿌듯했는지! 장은 20대를 자기의 세계와 놓여진 현실, 또다른 열정에 휩싸여 힘겨루기를 하며 많은 삶의 질곡 속에서 작업이라는 줄기를 부여잡고 끈질긴 인내와 노력으로 살아온 친구임에, 그런 그의 신화적 삶의 모습을 지켜보았기 때문이리라! 장은 언제나 또다른 선택에 두려움이 없었다. 지금도, 그리고 미래에도 자신의 삶에 도전할 것이다.
이제 장과 나와의 이야기는 이쯤 접어두고 그의 작업 얘기를 하고 싶다. 장이 독일로 떠나가기전 89년에 장과 함께 첫번째 개인전을 열었었다. 대학을 갖 졸업한 20대 젊은 초년 작가가 개인전을 여는 일은 전주에서 좀처럼 보기드문 일이었기에 많은 관심을 불러 일으켰던 기억이 난다.
그때의 장은 흙을 재료로 불과 생성에 대한 좀더 향토적인 절박한 느낌의 조형성을 추구하는 작업에 몰입해 있었다. 그리고 5년이 지나 독일에서 공부를 마치고 돌아와 두번째 개인전에 선보인 작품은 많은 변화를 보이고 있었다. 먼저 작업의 소재가 흙이 아닌 동과 철 등의 금속성이었고 투박한 덩어리가 아닌 선과 면의 회화적 입체 드로잉 기법을 보여 주었다.
장과 난 전공 분야는 달랐지만 장은 언제나 묵향과 여백, 그리고 선의 동양적 미학에 깊은 매력과 관심이 있었다. 그런 탓인지 오랜 외국 생활 속에서도 장은 동양적 심미감을 잃지 않았고 오히려 한국적 미학을 뚜렷히 이해하고 느끼는 듯 하였다. 이번 우진문화공간에서 가졌던 개인전을 통해 그의 동양적 자연주의 정서를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장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우리는 이 산의 능선들과 강, 저 파란 하늘 속에서 자란 것이다. 젊은 시절의 대부분을 먼 타국과 도시의 빌딩 숲에서 방황했던 나에게 이곳은 더이상 대한민국의 구석진 변방이 아니었다. 이 곳이 바로 내 삶과 온 세계의 중심이었던 것이다.
현대성이라는 괴물은 세계화라는 구호 아래 전방 위에서 우리의 삶을 조이고 있다. 이러한 상황 아래 내 작업의 정체성은 나의 삶이 우리의 자연과 역사와 함께 할때에만 비로소 드러날 수 있음을 절실히 느꼈다.”
이처럼 장의 작가 노트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그는 감성의 국적을 알고 있는 작가임에 틀림없다. 그는 오히려 외국 생활을 통해 더욱 절실히 감성의 뿌리를 느끼고 있는 것이다.
작가에게 있어서 민족적 정서에서 발현되어지는 미감이야말로 가장 세계적인 ‘미의 창출’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안다는 것은 그리 흔치 않은 일일 것이다.
장귀순의 이번 작품의 전반적 조형 성향은 예년의 작품과 크게 달라져 보이지 않았으나, 테마의 모티브가 좀더 자연과 친화적 감성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그의 작품의 주된 구성력은 2차원의 벽면과 3차원의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선과 면 그리고 빛과 그림자의 조형적인 드로잉 기법의 독특한 연출에서 느낄 수 있다. 평면 위에서 이루어지는 드로잉이 아닌 동과 동선이라는 재료의 반 입체적 조형을 통해 벽과 공간, 그리고 빛과 그림자의 어우러짐이 하나가 되어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산의 능선, 그리고 그 물빛 위로 쏟아지는 그림자 사이사이 어우러진 공간의 무한함을 그는 거칠고 강한 도심 속에다 가져다 놓는 대담함을 보인다. 어떻게보면 그의 삶의 모습이 아닌가 싶다. 그는 언제나 강한 정열의 소유자인 듯 싶다가도 본질 속엔 부드럽고 소박한 정서를 잃지 않았던 감성의 소유자였었다.
장은 앞으로도 이러한 작업을 통해서 시대적 착오에 혼돈되지 않은 작가의 모습을 보여주리라 믿는다.
지금도 장은 섬진강 줄기를 바라다 보며 땀과 혼을 다해 작품 세계에 몰입해 있을 것이다. 그의 장인정신과 그의 작업에 대한 끝없는 열정은 좋은 작품으로 그를 자리매김 할 것이다.
[도판] 동선,동판 / 1998
원 게재: 전시장을 찾아서 / 회화지 6호(1998) 28–29쪽 · 원본 PDF 30쪽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