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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탐방

정미소 .길 .현대인의 고독

정수미

(김선태전을 보고난 후 · · ·)

[사진] 필자 정수미

황금빛 가을을 느낄 수 있는 전시장의 분위기는 좋았다. 또 한편으로는 고개숙인 벼처럼 진지하게 가라앉은 무거움도 느낄 수 있었지만 전시회를 찾은 여러 대학생들의 자유로움이 실내 분위기를 밝게 해 주었다. 이전시회는 예원학교 김선태 선생님의 2번째 개인전이였다. 중학교 건물에서 선생님을 몇번 뵈었지만 그림을 그리는 미술 선생님인 줄은 몰랐다. 큰 키에 체격이 좋아서 체육선생님 정도 되나보다 했는데, 개인전 팜플렛을 보게 되었고 그림이 한 눈에 들어올 정도로 좋아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바쁜 시간에 쫓겨 전시회 갈 시간이 부족했지만 꼭 보고 싶었던 전시회라 어렵게 전시회를 찾아가 보았다.

그림을 감상하는 동안 정미소만 나오는 그림이 반 이상이었다. 전라도 각기 다른곳의 정미소였지만 모두 쓸쓸하고 외로운 모습들이었다. 곧 수몰 되어질 운명에 담담하면서도 서러운 심정을 느낄수 있었던 효자 정미소는 가까운 효자동에 위치해 있다는 생각 때문인지 더욱 애착을 느끼게 했다. 진안 용담댐 수몰지역의 진안 정미소나 도심속에 갇혀버린 효자정미소는 호남 곡창지대로 유명한 전라도 농촌사회의 모습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겠다. 새벽녘 이슬맺힌 풀을 밟으며 하루를 시작하고 노을이 져 해가 넘어가면 뿌듯하게 하루를 마무리 했을 순박한 농민들. 이들과 함께 생과 사를 같이 했던 정미소였지만 이제는 그 추억과 흔적을 남겨둔 채 사라지려고 한다. 그런 안타까움에 그림으로나마 그 모습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으신 선생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근대화, 산업화로 인해 농촌사회가 붕괴되고 서민들이 서로 믿고 의지했던 따뜻한 사회도 무너진지 오래이다. 사람들간에는 불신과 이기심으로 가득하게 되었다. 또 획일적이고 무미건조한 생활에 자아를 상실한 의욕없고 초점없는 얼굴들, 바로 현대인의 초상일 것이다. 소외된 인간의 모습 속에서 옛 것을 그리워하며 스스로 어루만져 치유하고 싶은 마음도 생긴다. 웃음 뒤에 감춰진 슬픔을 간직한 광대, 그 삐에로의 얼굴은 우리들의 자화상일 수도 있고 삶의 진정한 의미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모습일 수도 있다. 관념적이고 획일적인 교육과 사회제도에 저항하고 바로 잡을 수 있는 진정한 지식인이 되어서 맑은 눈망울로 밝은 내일을 바라볼 수 있다면 좋겠다.

선생님은 영화를 좋아하신다. 서편제에 등장하는 청산도 당재 언덕의 인상깊은 장면을 그림으로 옮겨 놓았다. 애절한 한과 혼이

[도판] 평촌 정미소 / 장지에 유채 / 1998

[도판] 진안 정천 망덕정미소 / 장지에 유채 / 1998

담긴 소리가 들리는 듯한 서늘한 그림이 영화속의 장면을 다시 생각나게 한다. 서양의 아름답다는 그 어느 풍경도 우리 정서에 맞는 흙내음 물씬 풍기는 맛깔스런 풍경에 비길 수 없을 것이다. 아름다운 풍경으로, 그림의 한 요소로 존재하기 이전에 흙에서 나고 흙으로 인생을 살아간, 또 흙으로 돌아간 농민의 삶을 생각나게 하는 “고향가는 길’ 따사로운 햇살을 받아먹고 붉은 황토흙 속에서 끈질긴 생명력을 탄생시키기 위해 부지런히 무언가가 움직이고 있는 것만 같다.

현대인의 초상이라는 그림을 보면서 나를 한번 생각해 보았다. 자아상실의 문제에 직면한 현실속에서 내 생활을 돌이켜 보았다. 나 또한 그들처럼 따분하게 살고 있지는 않았는지 정해진 길로 가다보면 나를 점점 잃어가고 남이 정해주는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때가 있다. 이런 생각으로 답답해지면 고향가는 길을 따라 흙내음을 맡으면서 농촌으로 가는 상상을 할 것이다. 정미소가 있고 물들지 않은 순수로 가득한 곳을 생각해 볼 것이다. 그래서 그 순수함으로 선생님과 같이 아름다운 옛 흔적들을 그려보고 싶다. 입시의 무거움 속에 허덕이다 보면 힘들어 포기하고 싶을 때가 많다. 기계적으로 생각없이 그림을 그리다보면 슬럼프에 빠져 헤어나지 못할것 같은 때도 있다. 그렇지만 훗날 내 그림을 그리게 되었을때 지금 배운 그림의 밑바탕을 고마워 할 것이다. 내 그림의 완성을 위해 기초를 닦는 과정이라 생각하고 준비하는 배움의 자세를 계속해서 지켜야겠다.

-전주 예술고 미술과 3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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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 1지면 2

원 게재: 미술탐방 / 회화지 6호(1998) 30–31쪽 · 원본 PDF 32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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