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절된 문화사 접목하는 전주국제영화제
영상문화의 정점을 향한 2000년 새로운 세기의 희망
'기억상실의 고리'로 차있는 한국영화사의 중요한 부분을 복원하는 축제
내년 4월 28일부터 5월 4일까지 전주에서는 전주국제영화제가 열린다. 우리나라에서는 부산과 부천에 이어 세번째로 만들어지는 국제영화제다.
한국영화의 푸른꿈. 전주국제영화제는 전주의 화려했던 영화사를 복원하는 작업의 화두로부터 이어진 결실이다.
사실 〈전주국제영화제〉는 때늦은 감이 있다. 문화상품이 그 지역의 문화적 전통이나 자산을 바탕으로 현대에 맞게 창출해내는 것이어야 한다면 영화제가 전주에서 열리는 것은 제격이다. 전주시가 새롭게 구상하고 있는 〈전주영화제〉는 이러한 문화적 배경과 전통에 관심을 갖고 그 역사를 다시 찾겠다는 문화전략에 다름아니다.
1950년대와 60년대, 서울의 충무로가 영화문화의 유일한 영화제작의 터전이었던 그 시절에 전주는 그 어느지역도 갖지 못한 독특한 문화적 환경을 갖고 있었다. 전주는 바로 그 시절, 서울 충무로와 함께 지방에서는 유일하게 영화문화를 꽃피웠던 지역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러한 문화사를 우리는 오랫동안 잊고 있었다.
당시 한국영화문화의 중심은 충무로, 지금도 그렇듯 이 영화인들은 충무로에 몰려있었다. 영화한편 제작하려면 엄청난 물적 인적 자산이 투자되어야 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았다. 따라서 영화제작의 독특한 문화적 환경이나 기반이 없는 곳에서 영화를 제작하는 일은 감히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바로 그때 그 시절, 충무로도 아닌, 그렇다고 모든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환경이 집중되어 있던 서울의 그 어느 곳도 아닌 지방의 한 도시에서 영화제작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면 그 문화적 배경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전주는 바로 50년대 한국영화의 또하나 중심지였던 것이다. 한국영화사에서 전쟁영화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피아골〉이나 한국영화의 컬러영화시대를 열었던 한국 최초의 컬러영화 〈선화공주〉가 이지역 출신 영화인들에 의해 이곳에서 만들어졌는가하면 〈아리랑〉〈애정산맥〉〈성벽을 뚫고〉〈애수의 남행열차〉〈붉은 깃발을 들어라〉를 비롯한 흥행작들이 전주를 중심으로 제작되었다. 전주의 영화인들은 우리나라 최초의 영화상인 제1회 전북영화상을 만들어 영화인들을 전주로 불러모으기도 했다. 한시대를 풍미했던 인기배우들도 뒤를 이어 전주를 찾았다. 전주에서 만든 영화들은 대부분 흥행에도 성공했으며 전주의 영화인들은 충무로에서도 화제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60년대 이후 전주의 영화열기는 사그러졌고, 이제는 50년대와 60년대 전주에서 적지 않은 영화가 제작됐고 또 전주출신의 영화인들이 충무로로 진출해 한국영화사에 굵은 족적을 남겼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서울의 충무로와 함께 한국영화의 꽃을 피웠던 전주의 영화사가 단절된지 40여년. 세월의 단절을 접목시키는 영화축제는 이제 전주 시민들에게 또하나의 문화적 체험으로 다가온다. 지난 11월 8일 전주국제영화제 조직위원회(위원장 최민)가 전주시 금암동 전북은행 빌딩 16층에 사무국을 마련, 문을 열었고 11월 16일에는 서울 인사동의 아트사이드넷에서 제 1회 전주국제영화제(2000년 4월 28일부터 5월 4일) 개최 발표회가 열렸다. 전주국제영화제 조직위는 '또 하나의 국제영화제가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해 "전주국제영화제는 문화가 '국가대표 선수'와 같은 대표성만 필요한 종목이 아니라는 것에서부터 성립 이유를 찾을 수 있다. 문화의 척도는 깊이와 폭이 있는 다양성의 구현이다. 이런 상황에서 오히려 제기되어야 할 질문은 국제영화제가 또 필요한가라는 질문이 아니라 새로운 영화제가 기존의 영화제와 얼마나 어떻게 다른가라는 것이어야 한다. 그 영화제의 취지와 프로그램이 충분히 새롭고, 영화제를 통해 영상문화의 세계를 관객의 눈 앞에 펼쳐 보여줄 수 있다면, 또 하나의 국제영화제는 존재 의미가 충분할 것이다."고 답했다.
전주국제영화제는 바로 이러한 문제 제기로부터 시작한다.
물론 다른 영화제와의 차별성을 지향하는 전주국제영화제는 그 성격부터가 명확하다. 그 첫번째 차별성은 대안영화(alternative cinema)의 지지에 있다. 무엇에 대한 대안인가. 전주국제영화제를 만들어가는 공동프로그래머 김소영(한국종합예술학교 영상원 교수) 정성일(월간 키노 편집장)씨는 그것을 '영화에 대해 상식적으로 알려진 것들에 대한 '대안'이라고 설명했다. 내용에서, 형식에서, 세계관에서, 배급구조의 측면에서, 주류영화의 흐름을 거스르는 역동적 생명력으로 가득찬 영화들을 만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디지털 영화에 대한 지지는 전주영화제의 또하나의 차별성이다. 미래의 영화산업 핵심이 될 디지털 영화에의 주목은 전주영화제의 가장 탄탄한 전략이기도 하다. 조직위는 그러나 디지털 영화에 대한 지지는 그것이 가장 새로운 기술이기때문만이 아니라 미래의 영화에서 디지털 영화가 가장 혁신적인 대안을 제시해 줄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는 점을 강조한다.
전주영화제가 내세운 또하나의 차별성은 아시아 독립영화에의 주목이다. 이 섹션은 한국영화의 정체성을 어디서 찾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으로부터 출발하는 작업이다. 전주국제영화제는 궁극적으로 '아시아를 횡단하는 비집단주의적 아시아'를 꿈꾸고 있는 것이다.
전주영화제가 기획한 상영프로그램은 이런 지지 기반으로부터 출발한다. 메인 프로그램은 '시네마스케이프-얼터너티브 영화의 새로운 흐름', '아시아 인디 영화 포럼', '더 새로운 한국영화를 위하여' 등. 그리고 섹션 2000이라는 타이틀로 기획된 새로운 영화들이 관객들을 자유롭고 다양한 통로로 만난다.
여기에 덧붙여진 것이 특별기획 프로그램. 전주시민들의 참여로 진행될 '전주 디지털 필름 워크샵'과 한국영화 제작의 대안을 제시하는 '트랜스내셔널 코리아 프로젝트(Transnational Korea Project)', 전주의 영상문화 전통을 찾는 다큐멘터리 '지역영화사 제작', 디지털 기술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장인 '디지털 삼인삼색' 그리고 '전주국제영화제 심포지움' 등이 다른 영화제에서는 만날 수 없었던 새로움과 즐거움을 전하게 된다.
이제 전주의 영화사는 '단절'로부터 '접목'의 시점에 놓였다. 전주에서 국제영화제가 왜 개최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은 이제 무의미하다. 영화계와 수많은 관객들이 '전주'의 독특한 문화적 전통과 전주가 만들어낼 또하나의 영화축제에 주목하고 있는 지금, 전주는 영상문화의 정점을 향한 2000년 새로운 세기의 새로운 희망이 되어야 한다. 그 희망은 한국영화사의 '기억상실의 고리'로 차있는 한국영화사의 중요한 부분을 복원하는 작업과 맞닿아 있다.
-김은정(전북일보 문화팀장)
원 게재: 문화 초대석 / 회화지 7호(1999) 17–18쪽 · 원본 PDF 19쪽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