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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작업 노트

상념(想念)

방정엽

작품

상념
상념

작업노트

아이들의 재잘거림도 한풀 꺾인 교실 창가에서 기린봉을 본다. 칼날같은 한풍(寒風)은 머리 속을 맑게 씻어준다. 싸라기같은 첫눈이 내린다. 가슴이 비는 것은 아직도 십대 사춘기의 감수성이 남아있기 때문일까.

불혹이 다 되어버린 세월.

유난히도 열병을 심하게 앓았던 학창시절이 아스라이 떠오른다. 고등학생이 되던 해 늦봄부터 방황은 시작되었다. 그림에의 열정을 외면하셨던 아버지. 순탄하지 않을 것 같은 예술의 길을 일부러 걷지 않게 하려는 속뜻을 갖고 계셨다.

자식 사랑의 심정이 그때의 내겐 반항심으로 옮겨갔다. 거기에 첫사랑의 열병, 신체장애의 컴플렉스까지 겹쳐 긴 시간을 방황했다. 입시학원도 못 다녀 선배들과 대가들의 작품을 묘사하며 붓만은 놓지 않았던 것은 다행스런 일이었다. 어렵게 미대 진학을 하게 되었지만 순수미대가 아닌 미술교육학과라는 커리큘럼에 적응이 안되어 고통스럽기도 했었다. 교통비를 다 써버리고 실기실에서 모포를 걸치고 새우잠을 자기도 했고, 밤새워 소주잔을 들며 나 자신을 학대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시절에 나를 지탱해 준 것은 그림에의 꿈과 열정이었다.

아버지의 눈물과 한숨을 본 것은 시집가는 누나를 떠나보내던 날 이후 두번째였다. 가출 끝에 며칠만에 붙잡혀온 나를 보고 한참이나 말없이 바라보시던 아버지의 눈물. 학교에까지 가셔서 자식 대신 용서를 빌어 겨우 졸업을 했다. 몸도 성치 못한 자식의 마음의 굴절을 바라보신 당신 심정은 얼마나 암담하셨을까.

흐르는 세월에 모든 것이 퇴색한 나이에 아버지의 얼굴이 자꾸만 떠오른다. 늦게나마 가정을 이루고 자식까지 두었지만 이제는 뵈올 수 없으니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랴. 이제 겨우 아버지의 눈물을 이해하게 되었지만 그것은 부질없는 후회일 뿐이다.

평소에 생선회에 소주 드시기를 즐겨하셨다, 내가 소주를 좋아하는 것도 아버지의 유전일지도 모른다. 차가운 이 계절, 한잔의 소주로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이 꼭 알콜 때문만은 아니다. 아버지가 물려주신 가슴에 술이 흘러 들어가는 길이 보인다. 그것은 아버지의 그리움이다.

추운 겨울날 너무도 허망하게 준비도 없이 가시던 날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다. 차가운 땅 속에 당신을 모시고 돌아설 때 다짐했었다. 열심히 사는 것이 산 자의 몫이라고.

이 한날 겨울의 건널목에 서서 한잔의 소주를 당신께 올린다. 옷깃을 여미어 차가운 들녘의 바람을 일부러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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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 1

원 게재: 나의 작업 노트 / 회화지 7호(1999) 27쪽 · 원본 PDF 29쪽 ↗

이 지면의 도판

(작품명·크기·재료 표기 없음) — 사각 문양이 반복된 수묵 화면상념(작품명·크기·재료 표기 없음) — 사각 문양이 반복된 수묵 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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