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도자의 제작과정과 문양의 특성
-동계 전북회화회 세미나-
1999. 1. 15 ▶ 백제예술대학 공예과
1)개념
도자기란 한 종류이상의 점토 또는 암석의 분말을 알맞게 혼합하여 물에 반죽하여 원하는 형태를 만들어 건조시킨 다음, 높은 온도로 구워서 냉각시켜 굳어지게 한 기물을 도자기라고 한다. 또한 물이나 그 밖의 액체가 기물 밖으로 스며나오지 않도록 하고 기물 표현을 아름답게 보이게 하기 위한 얇은 유리질의 피막을 유약이라고 한다. 또한 도자기는 흙을 빚어 구운 모든 기물을 말하며 구울때의 온도에 따라 태토의 굳기와 발색이 각각 다르다.
그릇의 굳기에 따라 일반적으로 토기, 도기, 석기, 자기로 구분한다.
토기는 점토질의 태토를 사용하여 섭씨 700~800도 정도내에 구운 것을 말하며, 유약을 씌우지 않았고, 표면색은 적갈색으로 우리나라 신석기시대 토기가 이에 속한다.
도기는 800~1000도 정도로 토기보다 약간 높은 온도에서 구워 물이 스며들기는 하나 몸이 비교적 단단하다. 대체로 우리나라 청동기 시대의 민무늬 토기가 이에 속한다.
석기는 섭씨 1100도 이상의 높은 온도에서 소성하기 때문에 태토속에 포함되어 있는 장석이 녹아서 유리질로 변해 태토 사이로 흘러들어가 그릇의 몸이 매우 단단하며 표면색은 희청색을 띤다. 그러므로 두드리면 쇠붙이 같은 금속성의 소리가 나며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의 경질 토기가 곧 그것이다. 자기는 섭씨 1250~1350도 정도의 높은 온도에서 구워 태토의 유리질화가 더욱 촉진 되어 강도가 매우 높은 그릇을 말하며, 태토로는 고령토를 사용한다.
우리나라에서 처음 토기를 만들기 시작한 것은 B.C 600~500년 경이었다. 이 때부터 한국 도자기의 시발점으로 하여 발전을 하면서 도기, 석기가 만들어졌다. 이후 고려시대 순청자와 상감청자의 완숙기를 거쳐 세계적으로 격조 높은 도자기를 만들었으며, 이 시대에 백자를 일반 평민이 순백자와 청백자를 실용화 하면서 도자발전은 절정에 이른다. 또한 시대적 전환기를 맞는데 고려시대에서 이조시대의 전환과정에서 정부관료 중심의 지배를 받던 도자문화가 정치불안으로 자유로운 시기를 맞아 분청사기를 제작하는 과정을 맞게 된다. 이때 표현양식은 지방에 따라 문양의 표현기법에 차이를 보여 주게 된다. 또한 도공들의 개인적 미적감흥과 사고를 철학 및 애환, 정부관료들의 비판을 작품에 표현하는 지혜로운 시기를 거쳐 오늘에 한국도자기로 자리매김하여 발전을 해왔다.
2)고려도자의 문양
고려도자의 특성은 형태에서나 기면에 나타나는 빛깔과 의장문양에서 한결같이 나타나고 있는 「정적감」또는 「유한」 등을 말할 수 있다. 그러한 특성은 비단 도자기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요소가 아니라 한국 미술 전반에서, 또는 생활상에서 나타나는 특징으로 사려된다. 한국 미술에서의 미적 특성에 대한 표현이 많은데, 그 가운데서도 「고요의 아름다움」 이라든지 「자연의 미」 또는 「애상의 미」 등 여러가지 표현이 있고, 또 한편으로는 「구수한 큰맛」 이란 표현도 있지만 이러한 여러가지의 표현을 집약하여 한마디로 말한다면 역시 「정적의 미」 또는 「적조 미」가 매우 적절한 표현이라 생각된다. 형태, 빛깔(색조), 무늬(문양)의 세가지 요소는 일반적으로 조형미술의 삼요소라 일컬어지는데, 고려도자는 이러한 세가지 구성요소가 조화를 이룸으로서 아름다움의 경지를 이루었다고 할 것이다. 이러한 요소는 고려인들의 생활감정을 그대로 반영시키고 있다. 고려도자의 특징적인 무늬는 국화, 모란, 보상화문, 그리고 구름과 학, 수양버들과 물새 등이다. 그 가운데에서도 가장 한국인의 생활 정감과 시취를 잘 나타내고 있는 것은 들판에 핀 야국, 한학, 포류수금 등이라 하겠다.
고려 도자무늬의 취재는 당시 귀족사회에서 유행되었던 회화의 화재에서 얻어진 것이 많았을 것으로 짐작되는데, 상감청자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 야국문이나 연화문, 그리고 매화와 대나무 모란등의 그림소재는 중국의 송, 원대에 유행을 보았던 사군자 화법의 유입에서 비롯된 것으로 사료된다.
3)분청사기의 문양
아무 문양이 없는 백자를 조선조 사람들은 가장 숭상하였고 가장 아름답게 보았으며, 분청사기는 고려청자에서 변모, 발전 하였으며 문양이 다종 다양하였으나 결국 표면이 백색으로 되어가는 과정이었다. 고려청자의 문양을 사실에서 출발하였으며 점차 양식화 하였으나 사실이 갖는 의미를 계속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본래의 의미와 형태를 알아보기 힘든 상태였다.
분청사기는 고려말 청자에서 발전하였지만 그 문양은 대단히 다양하고 사실적인 것이였으며, 처음부터 대담하게 생략 변형시킨 것이었다. 이처럼 처음부터 대담한 조형의 구성이 가능하였던 것은 마치 날로 상승하는 조선왕조의 초기의 국력이 고려말의 타락하고 치졸한 문양을 변형시켰던 것이라고 생각된다. 분청사기의 기형이 지니는 선은 대담하지만 변화가 많아서 고려 청자에서 변형된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문양은 너무 변화가 대담하고 격심하여 금방 알아보기 힘들다. 고려에서 조선왕조로 이행되는 시기는 세계적으로 청자에서 백자로 발전해 나가는 시기로 분청사기는 백분의 선택이 없었다. 그래서 그문양 자체가 소탈하면서 대담한 변형이 가능하였던 것이다. 또한 분청사기의 문양은 상감, 인화, 박지, 조화, 귀얄문 등이 모두 분청사기 제작과 일치하는 것으로 흙을 만지고 사기제작에 능숙치 못한 사람은 할 수 없는 특수성을 가졌기 때문에 도공과 생활을 같이 하는 장인의 솜씨로 이루어진 것이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분청사기는 그 지방마다 사문이나 문양방법의 전개에도 차이가 나타나게 된 것이라 생각된다.
4)조선백자의 특징과 문양
조선백자는 백자의 백색 자체와 여러 가지 무늬, 그리고 형태와 제작 기법 등에서 특징을 보인다. 백자의 표면색은 우유빛과 유백색, 겨울눈과 같은 설백색, 약간 푸른기가 도는 청백색 등 다양하다. 시대에 따라서 백자색은 특징있게 발색된다고 보겠으나 대체로 어느 지방의 백토인가에 의해 그색이 많이 좌우되며 유약, 소성 분위기 등에 의해서도 표면 백자색의 발색이 결정된다. 그러므로 백자의 백색은 한마디로 정의 하기는 어려우나 대체로 15세기 백자가 유백색 계통이며, 16세기가 되면 설백색, 17세기 회백색 18~19세기에는 푸른기가 도는 청백색으로 볼 수 있다.
조선백자에는 순백자, 상감백자, 청화백자, 철화백자, 진사백자, 조선청자, 기타 등의 종류가 있는데 이러한 분류는 전체를 백자라는 개념으로 묶고 그위에 어떤 안료로 그릇 표면에 그림을 그렸느냐에 따라 여러 가지 문양의 종류로 구분한 것이다.
● 순백자 또는 백자 : 순백자 또는 백자라고 하는 것은 청화백자니, 철화백자니 하는 것과 구별하여 그릇 표면에 아무런 무늬가 없는 순도 높은 백색의 태토와 잡물이 섞이지 않은 순수한 석회유를 씌워 고화도에서 구운 경질의 백자를 말한다.
● 상감백자 : 상감백자는 백자의 표면에 음각으로 무늬를 파고 여기에 자토를 넣어 검은색의 무늬를 나타낸 그릇을 말한다
● 청화백자 : 백자의 문양을 나타낼 때 코발트 안료인 회청을 써서 그림을 그린 것을 청화백자라 한다.
● 철화백자 : 철화백자는 철사로 무늬를 그려 다갈색으로 발색한 백자를 말한다.
● 진사백자 : 진사백자는 붉은색으로 발색하는 산화동으로 그림을 그린 백자를 말한다.
● 조선청자 : 조선청자는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청자를 말한다. 이것은 백자 태토에 철분이 함유된 유약을 시유한 것으로 녹색을 띤 청자이다. 그러므로 고려청자에 비해 형태, 색문양등 서로 다른점이 있으며 제작량은 소량이다.
원 게재: 체험활동 / 회화지 7호(1999) 21–22쪽 · 원본 PDF 23쪽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