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노래, 부활의 이야기 Ⅳ
작품

작업노트
섬진강 물줄기를 따라 하동 포구에 이르는 길에 시선이 멈춘다. 강물의 흐름처럼 내 삶도 고요하고 맑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절로 눈물나게 한다, 섬진강은 맑은 눈물의 강일 것이다. 병든 마음을 씻어내고 흩어진 삶을 추스르는 정화의 강이다.
마음이 허전하고 깊이와 높이와 넓이가 부족한 사람들은 가보라. 하동 포구에 이르는 섬진강으로.... 새악시 처럼 수줍음을 간직한 이 강이 당신의 마음에 향기가 나는 살구꽃과 샛노란 산국 담홍색 구절초 꽃들을 띄우고 옅은 자주빛 쑥부쟁이 꽃과 더불어 당신의 삶을 채워 줄 것이며 강바람에 흔들이는 흰갈대 숲사이로 뭇별보다 많은 미색의 모래가 당신의 발바닥과 접촉될 때, 손가락 사이로 주루루 주루루 흘러내릴 때 생명의 신비와 고요함이 당신을 시원케 할 것이다.
차창 사이로 덩시렇게 다가오는 가을 산의 오묘한 능선이 눈과 마음을 또 빼앗고 잠시 정신을 혼미케 한다. 흐르는 섬진강에게 물어본다, 너는 산의 깊이와 높이와 넓이를 아느냐고.... 산에게 물어본다. 너는 강의 침묵과 흐름과 순수함을 아느냐고. 서로 아무 말이 없다. 산과 물은 말없음으로 깊은 대화를 나눈다고, 당신은 말없는 깊은 대화속에 성숙해 가는 순수와 사랑을 아는가? 강변 사이에 갈대는 강바람에 흐느끼고 도로변의 성근 감은 겨울을 재촉하여 가을 섬진강의 맑은 물을 더 붉게 수놓았다.
물을 물답게 하고 산을 산답게 하고 강을 강답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아마도 흐르는 세월이겠지. 인생에 있어서 성숙케 됨은 무엇일까? 섬진강에게 물어본다, 지리산에게 물어본다. 섬진강이 대답하기를 끊임없이 쉬지않고 흐르는데 있다고, 지리산이 말하기를 어떠한 비바람과 눈보라에도 흔들리지 않고 변함없는데 있다고,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모든 욕심과 야심을 벗어버리고 가을 들국화처럼 아무 것도 아닌 들꽃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가을 하늘에게 물어본다. 당신은 아무 것도 아닌 사람으로 돌아가는 의미를 아는가?
당신이 사랑하는 그이가 말하기를 "세상 영광을 구하지 말라, 세상의 모든 부귀 영화를 누렸던 솔로몬의 영화가 들에 핀 들꽃보다 못하다고,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사랑하는 이가 기르신다"고... 돌아오는 발걸음에 지리산의 능선이, 섬진강의 물줄기가 마음 한 구석 하얀 화선지의 옅은 수묵화로 그려져 있다. 그리고 침묵의 강에서 염려하지 말라고 하는 그분의 말씀을 깊이 새긴다.
1999년 11월 3일 섬진강에서 기석
원 게재: 나의 작업 노트 / 회화지 7호(1999) 30쪽 · 원본 PDF 32쪽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