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의 따뜻한 입김이 될까?
1999.9.30-10.6 ▶민촌 갤러리
이경태님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세월의 강을 거슬러 올라간다. 유년시절이 나타나고 저 고대의 신들을 만난다.
소재 면에서는 어머니와 어릴 적 세상을 읽을 수 있으며 음악을 전면 흑은 후면에 깔아 놓고 그 위를 사뿐히 즈려 밟고 세상을 꿰매고 있는 것이다.
재료 면에서는 오래된 문짝, 나무, 동판 조각, 헝겊에 바느질까지 해야 되고, 유화 물감은 기본이고 아크릴 칼라와 수채물감, 돌가루 등 복합재료가 동원된다.
화폭은 반드시 네모난 규격안에 그림을 채우지 않고 자유로운 재료에 의도되지 않은 듯한 틀에 의도된 화면을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되는 폐품 같은 문짝이나 틀을 사용한다. 의자가 사용되기도 한다.
화폭속에는 유년의 동경과 아롱지는 사연들이 그리스 신화에 쌓여 나오기도 하고 가족과 사랑, 영혼의 지고한 뜻이 묻어 나온다. 눈이 내리지도 않으면서 눈이 내릴 것 같은 샤갈의 [나와 마을]처럼 한 폭의 다큐가 하나씩 들어 있는 것이다. 김춘수 시인의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이라는 시는 샤갈의 [나와 마을]이라는 그림을 보고 시를 썼다고 한다.
~눈은 수천 수만의 날개를 달고 하늘에서 내려와 샤갈의 마을의 지붕과 굴뚝을 덮는다~
이경태님의 그림을 보면서 시로 읽었다. 그의 전시회에 책까지 펴낸 것으로 보아 그의 시적 경험은 그림에게도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아니 작가적 체험이 시와 그림에게로 전이(轉移)되었을 것이다. 또한 음악도 좋아한다. 그 이상이다. 영화도 좋아한다. 그렇게 느낀 것이다. 휴머니스트이며 낭만적이고, 예술을 뒤집어쓰고 생활하는 도인 같은 사람으로 여겨진다.
그의 작품 [희랍화병과 고양이 물루]는 그리스 도자기와 고양이, 해, 구름, 달, 꽃잎 문양이 그려지고, 도자기 안의 그림은 그의 글 [낭만주의자의 진실]에 잘 나타나 있다.
~견우별과 직녀별 사이를 유심히 관찰하면 목을 길게 빼고 금빛 날개를 펼치며 날아가는 백조좌를 볼수 있다. 신들의 제왕인 제우스는 스파르타의 왕비 레다의 아름다움에 빠져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고 아내 헤라의 질투를 피하기 위해 언제나 백조로 변해서 지상에 내려 왔다고 한다. 백조로 변한 제우스와 레다의 사랑으로 2개의 알을 낳았는데 그 중 하나의 알에서 트로이 전쟁의 원인이 되기도 했던 절세의 미인 헤레네와 폴리데우케스가 태어난 것이다. ~ 멘델스존의 '한 여름 밤의 꿈'이 들려 오는데 호반의 밤하늘과 멘델스존이 주는 아름다운 조화는 어쩌면 낭만주의자들의 진정한 페이소스이리라~
혼탁한 세상을 아름답게 살기 위한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는 모습이 떠오른다.
[도판] 과거로 가는 비상구 / (크기·재료 미표기) — 43쪽 좌측 상단
[과거로 가는 비상구]를 보고:
몰락의 시대에 숨가쁘게 사는 곳에서 탈출을 시도해봄직한 것을 느끼게 한다. 우린 언제나 혼미하고 탁한 세상에 있어도 맑은 한줄기 빛을 기억하게 한다. 평화를 기원하고 아름다운 선율을 감상하며 이상미를 추구하고 건전한 양식과 건강한 생활을 누리고자 한다. 이 그림에서 신비한 비상구가 생각난다. 어디 자연의 병원에 가서 긴급 수혈을 받고 풀리지 않은 기호를 자연스럽게 풀어나가는 것이다.
[도판] 겨울 별똥별 / (크기·재료 미표기) — 43쪽 좌측 하단(2점 도판)
[겨울 별똥별]을 보고:
고요하고 무심한 바람이 몰려 있다. 지상에 가까워 오면서 나뭇가지가 흔들리고 있다. 말뚝까지 으스스한 황량한 들판에 눈물로 얼룩져 흐르는 추억을 발하고 있다. 지금 별똥별은 100년 전에 부서져 내리는 것이라 한다. 우리의 사랑은 이미 약속된 과거의 오매불망 그리운 눈길이었던 것이다. 클로버 사랑이 이 계절 초입(初入)에 더욱 선명하다. 나는 누구의 따뜻한 입김이 될까 하고 별똥별이 기인 선을 긋고 너에게 다가선다.
[도판] 저장된 사랑 / (크기·재료 미표기) — 43쪽 우측 상단
[저장된 사랑] 을 보고:
차 한잔을 들면서 [저장된 사랑]을 하염없이 즐기니 몇 가지 단상이 떠오른다. 각기 살아온 세월을 밑천으로 새로운 만남을 계획하는 자들로 읽어진다. 지속된 아름다움의 향연이 될 수 있다는 것은 나의 마음에서 출발한다는 것이다. 그 실마리는 열쇠를 표현함으로써 더욱 그렇다. 문살 속에 들어박힌 조각 그림들은 유년과 학창시절의 친구, 되돌릴수 없는 아픔과 희열이 주마간산(走馬看山)처럼 지나가는 것이리라. 지나가고 없어진 것이 아니라 어디쯤 간직되어져 있을 뿐, 찾지 않은 것이다. 문만 열면 나의 마음 몸짓이 비밀을 알게 해주는 것이다. 깊이 '저장된 사랑'을 알 수 있게 된다.
이경태님의 "글로 쓰는 그림" 中에서 1편을 소개합니다.
원 게재: 전시장을 찾아서 / 회화지 7호(1999) 42–43쪽 · 원본 PDF 44쪽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