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회화회→회화지 아카이브→7호→어머니와 신작로
전시장을 찾아서

어머니와 신작로

이경태

어머니께서는 내 유년의 끝무렵에 한많은 생을 마감하셨다. 정확히 6년이라는 세월을 병마와 싸우다 결국 아무런 감정도 남겨놓지 않고 당신은 떠나가셨다. 암세포는 당신의 연약한 몸에 전선줄처럼 퍼져 있었고 수술만이 유일한 희망인냥 어머니께서는 G병원에 입원하셨다. 아무런 주관이 성립되지 않았던 유년의 길목에서 어머니의 실체만큼이나 뚜렷한 형상으로 남아있는 하나의 길이 나의 의식을 지배했다. G병원으로 이어지는 그 길은 다른 세상으로 나를 인도하는 듯했고, 신작로를 따라 어머니를 만나러 갔을 땐 언제나 어머니와 신작로는 같은 빛깔이 되어 낯설은 존재로 내게 다가왔다.

세월이 많이 지난 후에 바라본 그 길의 존재는 세월만큼 변해있었는데 그 변함의 진실은 어디에서부터 시작된 것일까?

어머니께서 퇴원하던날, 당신과 함께 되돌아 나오던 멀기만 했던 그 길의 기억, 길가에 피어 있는 코스모스를 보고 가을을 느꼈던 것일까?

한없이 코스모스와 G병원의 뒷산을 응시하시던 어머니. 왼쪽 유방을 도려낸 창백한 어머니의 모습은 흔들리는 코스모스와 맞닿아 있었고, 어머니와 마지막으로 걸었던 하얀 신작로의 기억은 나의 홀로서기로 향한 시작을 의미했던 것 같다.

그 후 당신은 의식만 남겨둔 채 일어나질 못하셨고 운명처럼 나는 어머니의 따뜻한 가슴을 내 유년의 기억과 함께 마음 깊은 곳에 묻어버렸다. 많은 세월이 지났고, 생각해보면 어머니의 초상은 내 의식속에 아련한 안개로 다가왔다가 백지를 남길 뿐이었고 내 스스로 어머니를 불러들였을땐 이미 아내와 동일한 모습으로 나타나곤 했다. 아내가 아들 수함에게 주는 애틋함을 볼 때마다 나는 어머니 생각을 한다. 그렇게 하겠다고 의도되었던 것은 아니지만 기억 속의 어머니는 실체처럼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창을 통해 볼 수 있는 곳에 침묵으로 계셨다.

잠이 오지 않는 밤이면 습관처럼 묘지를 응시하면서 삶과 예술에 대한 깊은 사고를 하곤 했는데 안식으로 존재하던 어머니의 묘도 시간과 제도 앞에 무력하게 자리옮김을 하게 되었고 23년 만에 만난 어머니는 오랜 세월 마음 깊은 곳에 묻어두었던 그 멀고 멀었던 신작로를 생각나게 했다.

인간은 흙에서부터 태어나 결국 흙으로 돌아간다는 자연의 섭리 앞에 아련한 기억 저편으로부터 다가온 하얀 신작로는 어머니와 동일한 의미로써 내게 한가지 무채색 교훈을 열어주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정직한 실천주의자로 살다가 떠나 가자고……

당신의 한 많았던 생 만큼 붉디 붉은 흙으로 돌아간 어머니.

그리 길지 않은 시간속에 윤회의 바퀴는 돌아가고 있었고 어머니께서는 내게 완전한 삶을 살다가 오라고 애잔하게 속삭여 주신 것이다.

당신의 흙을 담아 납골당에 모시고 되돌아오는 길에 시리게 피어 있는 코스모스를 보면서 나는 소리없이 울었다.

내 유년에 이미 묻어버렸던 어머니, 코스모스, 그리고 끝이 없어 보였던 하얀 신작로

그 길을 생각하면서…..

[도판] (작품명 미표기 / 크기·재료 미표기, 44쪽 우측 하단) — (이경태님의 "글로 쓰는 그림" 中에서)

지면 보기 · 원본 1쪽PDF에서 열기 ↗
지면 1

원 게재: 전시장을 찾아서 / 회화지 7호(1999) 44쪽 · 원본 PDF 46쪽 ↗

같은 호의 글

7호 목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