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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여행기

금강산을 다녀와서

이철규

[사진] (캡션 없음 — 눈 덮인 금강산 계곡에 선 필자)

우석대학교 개교 20주년 기념행사의 일환으로 이루어진 금강산 스케치 여행에 작가 선생님들과 함께 동참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반세기 만에 열린 금강산 길을 가게 되었다. 가곡이나 화폭으로 아니면 TV로나 어렴풋이 접할 수 있었던 금강산,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꼭 한번 가보고 싶은 곳이리라!

특히 한국화를 전공하고 있는 나로서는 금강산이 주는 의미는 단순히 보고 느끼는 관광 차원 이상의 회화사적 이유가 더 한층 크다 할 수 있다. 금강산이 있었기에 조선후기 한국회화사에 가장 독창적인 한국적 화풍의 첫 등장을 알리는 실경화풍(겸재화풍)의 산수가 태동하였기 때문이다. 중국 산수화풍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우리의 산하를 직접 사생하여 그리는 실경산수의 등장은 바로 금강산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겸재가 있었기에 실경산수가 탄생된 것이 아니라 금강산이 있었기에 그 빼어난 자태로 인하여 겸재로 하여금 실경산수를 제작케 하였으리라! 이렇듯 금강산은 한국회화사에 실경산수의 등장이라는 결정적 매개체 역할을 한 名山이며 美山인 것이다.

4월의 봄바람과 함께 동해항에서 금강산 유람선(봉래호)에 몸을 실었다. 유람선의 시설은 아주 쾌적하고 온갖 편의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었다. 초저녁에 출발한 봉래호는 다음날 새벽에 비바람과 함께 장전항에 도착하였다. 장전항까지 이어진 금강산 자락은 금강산에 대한 설레임을 더 한층 돋구게 한다. 비바람 속에서 어설피 보이는 장전항의 첫 인상은 회색 빛 시멘트 색깔로 뒤덮여 있었다. 금강산 자락의 힘찬 바위산과는 대조적이었다. 우리나라 60년대의 항구를 보는 듯 회색톤 분위기는 북한의 경제사정을 한눈에 느낄 수 있었다. 어느덧 비바람은 진눈개비로 변해 있었다. 금강산은 철따라 고운 이름으로 갈아입는데- 새순이 돋고, 꽃봉우리 벙그는 봄은 금강(金剛)! 풀과 나무가 우거지는 여름은 봉래(蓬萊)! 단풍이 붉게 타는 가을은 풍악(楓嶽)! 하얀 눈이 온갖 바위 위에 내리는 겨울에는 개골(皆骨)! 등으로 불리워 왔다.

입국할 때에는 봉래호에서 바지선으로 갈아타고 들어가게 되어 있었다. 비바람에 몹시 흔들리는 바지선은 북한 땅에 첫발을 내딛게 된다는 흥분과 조바심으로 더 한층 갈증을 더하게 해준다. 간단한 입국 수속을 마치고 현대에서 제공하는 관광버스에 승차하였다.

조장의 간단한 금강산 소개가 있었다. "금강산은 주능선을 경계로 바다 쪽인 동쪽을 외금강, 서쪽을 내금강이라 하는데, 금강산의 큰 절경들은 대부분 외금강 쪽에 있다. 금강산의 동쪽은 가파르고 서쪽은 비교적 완만한 경동지괴(傾動地塊)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만물상, 관음연봉, 채하봉 등의 준봉들이 변화무쌍한 자태를 뽐내고 있으며, 골짜기들은 내금강에 비해 훨씬 가파르고 스케일이 큰 폭포들을 간직하게 되었고, 아슬아슬한 절벽 위에서 쉼없이 떨어지는 희고 시린 물줄기들이 골짜기마다 깊고 푸른 소(沼)와 담(潭)을 무수히 만들어 놓았다" 장전항에서 금강산으로 들어가는 관광코스는 구룡연, 만물상, 해금강 코스 세가지가 있는데 대부분 구룡연과 만물상으로 가게 되어 있었다. 첫날은 구룡연 코스로 일정이 잡혀 있었다. 장전항에서 온정리 휴게소로 가는 길은 양쪽 도로변에 외부인과의 접촉을 막기 위함인지 철조망이 쳐져 있었다. 100여 미터 간격으로 부동자세로 군인들이 경비를 서고 있었다. 실제 처음으로 본 북한군인 이었다. 추운 날씨 때문인지 손은 꺼칠었으며 얼굴은 붉은 홍조 빛을 띤 어린 모습이었다. 아주 인상적이었다. 눈이 계속해 내리고 있었다. 눈과 함께 버스를 타고 금강산으로 향하는 길은 온통 하얗게 변해 있었다. 4월에도 이렇게 눈이 많이 오다니.... 창밖으로 보이는 철책 너머의 온정리 마을은 장전항의 축소판이었다. 온통 회색빛 색의 똑같은 집들, 드문드문한 인적으로 삭막한 느낌이었다. 그래도 생기를 느낄 수 있었던 모습은 가끔 하교길의 목에 빨간 마후라를 걸친 어린 소년이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는 모습이었다. 관광 안내원의 멘트가 흘러나온다. "북한 주민을 만나면 반갑게 손을 흔들어 주세요" 북한 주민을 만나면 손을 흔들어도 되는지 안되는지 어색하기만 하였던 우리들은 이때부터 북한 주민을 만나면 손을 흔들어 주기 시작했다.

온정리 휴게소에 도착하였다. 현대에서 건설한 이 곳은 마치 북한 내에서 이국 땅에 온 느낌이다. 편의 시설이 아주 잘 되어 있었다. 눈은 함박눈으로 변해 있었다. 구룡연 관광이 제설작업으로 인하여 한두시간 정도 늦겠다는 방송이 있었다. 점심식사후 한시간 반정도 지난 후에야 구룡연으로 출발할 수 있었다.

[사진] (캡션 없음 — 눈 덮인 금강산 계곡)

금강산 입구에 도달했을 즈음 창터 솔밭을 지나게 되었다. 직선으로 하늘을 찌를 듯 솟아있는 온통 붉은 빛의 소나무들(일명 미인송으로 불리운다)이 몇백 미터에 걸쳐 계속되고 있었다. 붉은 장옷을 걸친 여인네랄까? 수줍은 듯 쭉쭉 뻗어있는 모습은 저절로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창터 솔밭을 지난 후 몇 분만에 주차장에 도착하였다. 눈은 계속해 내리고 있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남보다 빨리 금강산을 오르고 싶은 급한 마음에 선두로 나서기 시작했다. 온통 하얀 눈으로 뒤덮힌 금강산을 오르는 심정이란 이루 형용할 수가 없었다. 가쁜 숨은 더욱 더 가슴을 벅차게 한다. 등산로 곳곳에 비석이 서 있었다. 몇년 몇월 몇일에 김일성이 금강산에 와서 중간중간 쉬면서 교지를 내린 곳이라는 내용이었다. 그 비석 주위에는 항상 여성 안내원이 이인 일조로 지키고 있었는데 연신 내리는 눈을 맨손으로 비석에서 쓸어내리고 있었다. 조장의 설명으로는 특히 이 비석 주위를 신성한 곳으로 여기고 있기 때문에 일미터 이내도 접근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주의를 주었다. 곱슬 파마 머리에 붉은 홍조를 띤 북한 여성 안내원은 천진난만해 보였다. 화장기 없는 청순한 모습은 남남북녀라는 말이 거짓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수차례에 걸쳐 북한 안내원과의 대화에 대해서 교육을 받은 터라 약간은 겁이 났지만 말 한마디 걸고픈 심정에 '여기 금강산은 4월에도 눈이 이렇게 많이 옵니까?' '글쎄요, 4월에 종종 눈이 오긴 하는데 이렇게 많이 온 것은 몇 년만에 처음인 것 같습메다.' 청량한 목소리로 대답해 주었다. 뒤따라 올라오던 관광객들도 이 모습을 보고 용기가 났는지 질문을 해대었다. 몇 개의 조그마한 숲을 지나자 눈으로 뒤덮인 산 봉우리들이 설픈 운무에 휩싸인 채 모습을 나타내었다. 장관이었다. 숨이 콱콱 막힐 지경이었다.

등산로는 계곡 사이로 훤히 뚫려 있었다. 구름다리를 지나 다시 한 두 개의 계곡을 지나자 구룡연에 도착하였다. 길은 그 곳에서 눈으로 덮혀 보이지 않았다. 상팔담을 거쳐 구룡폭포까지 가게 되어 있었는데 제설작업이 되어있지 못했다. 여기서 돌아가야 하다니! 아쉬웠다! 허벅지까지 빠지는 눈 위에 벌렁 누웠다. 구룡연에 내 몸 도장이라도 찍어 놔야지! 다음에 새 파란 구룡연 물을 보기 위해 꼭 와야겠다는 마음으로.....

[사진] (캡션 없음 — 온정리 휴게소 앞에 선 필자)

그 다음날은 금강산의 대표적 경치라 할 수 있는 만물상(萬物相) 코스로 가게 되어 있었다. 어제와 같이 출입국 관리소를 거쳐 관광버스에 몸을 실었다. 외금강 만물상은 주상절리(柱狀節理)를 이룬 흑운모 화강암들이 창날같이 모여 서서 우리들의 삶 속에서 만날 수 있는 만상을 펼쳐 놓아 친근함과 동시에 감동을 더해 준다는 조장의 안내말이 있었다.

날씨는 화창하게 개어 있었다. 전날과 같이 온정리 휴게소에 도착하여 점심을 같이 한 후 곧바로 만물상으로 향하였다. 동양화 산수에 있어서 모든 준법이 존재하고 있다는 만물상으로....

꼬불꼬불 가파른 고갯길을 넘어가는 길은 구룡연 코스에 비해 훨씬 험하였다. 창가 옆으로 펼쳐진 암벽으로 뒤덮힌 금강산의 모습은 인간의 존재를 초라하게 할 뿐이다. 오죽했으면 조선조 화가 최북이 금강산에 와서 자기눈을 찔렀을까? 주차장에서 만물상으로 오르는 등산로는 제설작업이 이루어지지 않은 관계로 중턱부터 걸어 올라 가야 했다. 허벅지까지 쌓여 있는 눈사이로 겨우 한사람이 지나갈 수 있는 길이 나 있었다. 산행은 더디게 진행되었다. 만물상 코스는 옥류동 코스보다 험난하였다. 몇몇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은 중도에서 포기하곤 했다.

등산로를 따라 양옆으로 기괴한 모습의 바위산들이 병풍같이 쳐져 있었다. 거대한 암석 덩어리들이 하늘을 찌를 듯 중첩되어 있는 모습은 조금씩 올라가면서 볼 때마다 또 다른 모습으로 변하고 있었다. (금강산의 뼈대를 이루는 바위들은 대부분 흑운모(黑雲母) 화강암과 반상(斑狀) 화강암으로 빛의 방향에 따라 눈처럼 희게도 보이고, 금색이나 은색으로도 보이고, 푸르거나 보라빛으로 보이고 검게도 보인다고 한다.)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욕심 같으면 가지고 간 스케치 도구를 꺼내 그림을 그리고 싶었으나 시간이 허락치를 않았다. 폭설 때문에 시간이 계속 지연되고 있었다, 한 사람 지나 갈 정도의 좁은 눈길도 만물상 입구에서는 끊겨 있었다. 멀리서나마 만물상의 끝 부분을 볼 수 있었다. 옛 선조들의 그림에서 볼 수 있었던 삼선암, 귀면암, 칠층암, 절부암 등을 눈앞에 두고 가 볼 수가 없다니

날씨를 원망할 수 밖에 없었다. 하산하는 길! 마음은 만물상에 있는데 몸은 더욱 더 멀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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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게재: 나의 여행기 / 회화지 7호(1999) 47–49쪽 · 원본 PDF 49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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